Chet Atkins 쳇 앳킨스 [Teensville]
20대 때의 친구들을 만났다. 얼굴 본 지 25년도 더 되었다. 그렇게 오랜만이라면 친구 아니다 하겠다만 마음으로 끈끈히 이어져 오고 있구나. 음악 동아리라는 공통 관심사로 미친 듯 함께했던 시간들은 각자에게 깊이 인이 박혀 있긴 한가 보다. 반갑고 마냥 기쁘기만 했던 시간들, 안 죽고 살아있네로 눙을 치고 시시덕 거리기 바쁘다. 음악 애호가들 아니랄까 봐 2차는 사운드 빵빵하게 틀어주는 LP 바에서 신청곡 들어가며 시계를 멈춰놓고 있었다. 바라본 얼굴들은 다들 똑같다. 옛 시간여행을 하다 보면 착시가 있긴 하겠지만 하는 짓거리도, 말투도, 노는 행태 또한 말이다. 분명 한 시간들이 얼굴에 다 드러나 있을 텐데, 다행인지 놀랄 정도로 변한 얼굴들은 없다. 그래, 이제 각자의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가 되긴 하였다. 늙는다는 말은 아직 이른 것 같으니 각자 잘 나이 들어 가자 라고 기원을 해 주고 싶었다. 잘 나이가 든다, 잘 나이가 든다. 그게 무얼까. 아마 간직해야 할 것은 간직하고, 깨뜨려야 할 것은 깨뜨리며 사는 것이겠지. 그 대상을 거꾸로 선택했을 때 나의 얼굴은 아마 고집스레 틀어지게 될 것이리라.
혹시 얼굴이 음악을 닮는다고 생각하는가? 음악이 얼굴을 담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Chet Atkins 쳇 엣킨스의 기타 사운드는 아저씨의 얼굴을 쏙 닮았다. 앨범 자켓에 담긴 사람 좋은 얼굴을 보고 있자면 그는 아마 이런 사운드를 보여 줄 것 같아 라고 상상하게 되고, 이는 어김없이 들어맞는다. 1940년대 후반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하여 1996년까지 앨범을 내었으니 그 안에 담긴 얼굴도 젊은 20대 청년에서 70대 노년으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어감은 평생에 걸쳐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그의 기타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 잘 나이 든 얼굴이라니, 음악까지 잘 나이가 든 표본이 아닌가 싶다.
Southern Hospitality란 말이 딱 어울리게 그는 인심 좋은 남부의 느긋한 아저씨를 닮았다. 핑거 스타일 기타의 개척자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괴물 같은 실력자이면서도 겸손을 겸비하였다. RCA 레코드 운영에 바쁜 와중에도 계속 자신의 음악을 하던 열정. 후배들과 아름다운 교류를 이어나가고, 죽기 전까지 기타를 놓지 않았던 애정은 단순한 호사가의 꾸민 얘기로 볼 수 없다. 그 간 발매했던 앨범에서 고스란히 결과물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존감과 겸손은 다시 그의 얼굴로 드러났을 것이다. 초기 컨트리 스타일을 시작으로, 50,60년대는 로커빌리, 스윙, 재즈, 팝을 더해 보다 다양하고 세련된 사운드를 보였다. 70년대는 좀 더 현대적인 사운드를 가져갔다면 마지막 후반기는 교류하는 음악인들과 다시 전통에 기반하되 젊은 감각을 유지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꽤 인기가 있는 [Sails] 앨범이나, Mark Knopfler 마크 노플러와의 협연 [Neck and Neck]이 유명한 것도 후반기 시간이 만들어 낸 원숙미와 젊음이 공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중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지점은 어디일까. 나는 그의 1950년, 60년대의 사운드를 특히 추천하고 싶다. 왠지 엄청 구닥다리가 나올 것 같지 않은가? Rock & Roll에 흥겨운 스윙댄스라도 출 것 같지만 그 흥취가 일면 고급지다. 이것은 복고 같은 맛과는 다르다. 알다시피 각 시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아름다운 단면이란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기타를 통해 이것이 정확히 발현되는데, 현대에 와서는 어느 누구도 다시는 만들어 내질 못할 음악 풍경이 거기에 있다. 그래서 귀하다. 이것은 복각으로 구현할 수 없는 진심 같은 거다. 기타 사운드를 얘기하자면, Gretsch 그레치 사의 할로우 바디 일렉기타가 주는 맑고 청초한 생톤과 살짝 흘려두는 잔상의 울림을 좋아한다. 이 흐름이 음악 전체에 기분 좋은 텐션으로 기능하는 것도 그 시대를 얘기하고 싶은 이유이다. 호강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1960년 작 [The other Chet Atkins]를 턴테이블에 걸어보자. 뭐라고? 반칙이다. 60년대라면 그의 로커빌리 창창한 흥겨움이 배가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쿠스틱 나일론 기타를 사용하고 라틴 계열 음악, 클래식한 연주 스타일은 분명 The other side가 아닌가. 뭐,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둘은 이란성쌍둥이 같은 걸. 브런치 후 오전의 햇살이 비치고 있으니 즐거운 티 타임을 가질 시간이다. 낮은 조도같이 흐르는 낭낭한 기타 소리와 함께 아내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손에 감기는 따뜻한 기운은 마음까지 스며든다. 그런데 웬걸 러닝타임이 고작 28분이다. 자세를 고쳐 앉으니 끝나는 형국이다. 그럼 아쉬운 마음에 같은 1960년 작 [Teensville]로 바꿔 걸어 본다. 단숨에 비슷한 듯 또 다른 이국적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젊은 남녀의 웃음꽃이 흘러넘치는 듯하다. 찰찰대는 심벌이 마음을 또렷하게 만들어 준다. 답을 주는 명쾌한 기타 소리 너머 언니의 허밍이 낮은 팔베개를 해 준다. 아름다운 시점에 대한 헌시 같은 것일까. 어느 순간 아내와의 수다가 조금 빨라지는 것도 같지만 이도 괜찮다.
어, 이것도 28분 밖에 안되어.
Chet Atkins [Teensville] 1960년 <Till There was you>
https://youtu.be/LM0OJR9bwd0?si=qFn8f99fGxVrSY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