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losions in the Sky [The Earth Is Not
별 볼일 없는 빛 공해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느 다른 하늘에서의 경험이 소중하다. 깨알 같은 별들이 그 하나하나의 사연을 간직한 듯한 시간, 검은 어둠을 마주할 수 있는 순간들 말이다. 누구나 지난 시절의 기억 어딘가 에서, 이국적인 여행에서 마주했던 검은 하늘을 기억한다. 감사하게도 그런 장소에서 한 시절을 지냈던 적이 있다. 조금씩 위치를 달리 하며 항상 별이 보였다. 계절에 따라서 별자리가 달라지는 것 또한 책이 아닌 실제 눈으로 배웠다. 기술과 감성은 이런 데 써먹는 거라고 Sky guide란 별자리 앱의 도움이 컸다. 홀연히 빛나는 별들의 무리로 폰을 돌리면 익숙하게 알려진 이름이랑, 완성된 작도를 함께 띄워 주었으니 말이다. 한 시린 겨울 밤하늘 Orion 오리온 별자리를 처음으로 인지하였을 때의 탄성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말 몽둥이를 들고 내려 칠 듯했거든. 우아하게 한껏 날개를 펼친 Cygnus 백조자리의 자태도 좋았다. Gemini 쌍둥이자리는 정말 둘이 친근하게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별이 아닌 행성이지만 Venus 금성의 그 쨍한 밝기도 재미있었고, Mars 화성은 자신의 누런색을 확연히 드러내어 신기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미친 듯이 명멸하던 Sirius 시리우스, 미스티 블루는 긴 잠의 터널에서 <너의 별 이름은 시리우스 B>를 부르며 어둠을 밝히고 싶었을까. Procyon 프로키온의 진한 향수, 고개를 조금 들어 Vega 베가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별멍 같은 마음이 도지곤 했다. 어찌 이렇게 반짝반짝할 수 있을까.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검은 우주는 조용하다. 그러면서도 까마득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기분이 끊임없이 대화를 건네는 듯하여 밤하늘을 지켜보는 것은 결코 지겹지가 않았다. 작은 미소가 동반된다.
그런 깜빡이는 별 같은 음악이 있을까?
뭐야, 이 거창한 제목이라니, Explosions in the Sky 익스플로전스 인 더 스카이. 너무 대놓고 유난을 떠는 건 아닐까 반신반의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그리고 첫 번째 앨범을 건네받았을 때 피식 웃고 말았다. 음악이 자꾸만 날아오르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끝없이 무언가를 풀어놓으며 전진하려고 했다. 필시 그 배경인 하늘은 밤이어야 어울릴 것이다. 그래야 환한 불꽃을 더욱 실감 나게 마주할 수 있을 테니. 그 첫인상은 음악을 타고 전체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대로 날아올라 반짝반짝 자기만의 빛을 투사하게 된다. Post rock 포스트 락, instrumental rock 인스트루멘탈 락 계보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양질의 앨범과 더불어 아직까지도 라이브를 돌며 굳건히 활동을 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누군가는 음악에도 유행을 적용하지만, 특별한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용할 것 같다.
이들의 음악은 밤하늘 같다. 기본적인 조도는 어스름녁이다. 고요하다. 그리고 그 속에 박힌 별들이 끊임없이 반짝인다. 때로는 나직하게, 때로는 매우 격렬하게 말이다. 가끔씩 초신성이 폭발하듯 토해내는 시간이 있겠지만, 다시 중력에 의해 압축되듯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도 한다. 이 상승과 하강의 시간들은 천천히 흘러간다. 흡사 밤하늘 같이 이야기를 건네는 듯하다. 기본적인 공기의 밀도는 따뜻하다. 언어가 없는 대화는 서두르지 않고 조바심을 내지도 않는다. ‘네가 그냥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마 넌 알 것 같아.’ 그런 뉘앙스일까. 나란히 앉은 곁에서 약간의 체온을 머금은 손 같은 것.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강요가 없다. 외부에서 감정의 상승 하강을 강요하려는 여느 포스트 락 음악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그런 면을 나 또한 좋아했을 것이다. 이들이 오랜 세월을 항해할 수 있었던 동력은 자신만이 가진 이런 별을 닮은 힘 때문이리라. 역시 밴드명만큼 표현이 너무 거창한가? 그렇지만 리버브와 딜레이를 조금 머금은 기타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때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밤하늘의 별이 빛나는 풍경이다. 찬란한 행진을 하는 별들의 무리.
여러 좋은 음악들이 있지만, 많은 이들이 애정하는 세 번째 앨범을 주목해 보는 것은 좋은 시작일 것이다. 언어가 없는 음악은 때론 제목으로 작은 암시를 곁들이기도 한다. 앨범은 하나의 이야기라는 듯 음악과 음악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 연결된 제목만큼의 이야기를 나름으로 상상해 보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다. 원하는 뭐든지 대입해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밴드는 그 모든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된 공간을 다시 앨범 제목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으로 귀결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듣고 제목을 따라가며 심심하게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만 이 시간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이미 코마 상태에서 영원한 잠을 자고 있었는데…. 깊은 잠 속에서도 불편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남겨놓은 무언가가 계속 발목을 잡는다. 뒤척이는 꿈이 이어지는 그 어느 순간 긴 호흡을 하며 다시 깨어난다. <First Breath after Coma>. 잘 나갔을 때에 모두가 다가왔지만,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는 곁에 남아있는 이 없다. 다시 살아났다는 기쁨도 없이 우두커니 앉아 창문 밖을 바라만 본다. 이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현실을 다시 마주한 시간. 무언가 깨지며 방안은 소음으로 가득 찬다. <The Only Moment We were Alone>. 둥지로 들어간다. 창문을 닫고, 커튼으로 빛을 차단하고 자기 자신의 가장 낮은 심연 속으로 들어간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지워간다. 어느 누구와도 엮이지 않은 '나'라는 존재를 바라보려 애쓴다. <Six Days at the bottom of the Ocean>. 내 가장 최초의 기억은 무엇으로 시작되는가. 낡은 사진의 할아버지, 긴 비탈길의 자전거, 코흘리개의 웃음, 푸르디 푸르른 강둑, 꽃 상여, 따뜻한 수제비, 죽음 같은 물. 그리고, …. <Memorial>. 떨리는 손을 들어 만진다. 내민 손은 따뜻하다.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온기가 피를 타고 가슴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장이 한층 강하게 뛸 때 자신의 표정이 여전히 일그러져 있는 것을 알아챈다. 살짝 찡그려 본다. 어색한 미소가 슬핏 보였다 사라진다. <Your Hand in Mine>.
뭐, 그런.
그리고 여기 앨범 자켓에는 누군가 써내려 간 한 문장만이 가득히 남아있게 되었다.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여기는 그곳일까. 믿고 싶은 바램일 뿐일까.
아마 음악만이 답을 알려 줄 것이다.
Explosions in the Sky [The Earth Is Not a Cold Dead Place] 2003년 <Your Hand in Mine>
https://youtu.be/4jqcVdEJkFM?si=mx1css8Ldj-YVQ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