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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터치가 붓터치를 붓터치로

Andy Stott [Luxury Problems]

by Jeff Jung

어느 가족이나 아이가 생기게 되면 주말 시간을 고민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장소에서 다채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정보를 확인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건져낸다.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는 장소가 있는 반면, 다시금 발길을 인도하는 곳도 존재한다. 그러면서 각자 가족에게 맞는 어떤 아지트 같은 장소가 형성되곤 한다. 추억 바구니에 꽤 많은 시간을 담았던 공간으로 과천 서울대공원을 꼽을 수 있다. 과학관, 동물원, 산책 공간, 미술관, 놀이공원까지 패키지로 모여있으니 자연스러운 끌림이었기도 하겠다. 흔히들 북쪽의 놀이공원이라 하면 서울랜드와 에버랜드를 떠올릴 것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성향상 늘 서울랜드 쪽으로 방향이 갔고, 최첨단도 아니고 다이나믹은 덜하지만 아기자기한 즐길거리와 산책으로 가족이 즐기기에는 충분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로 아이와 일부러 비 오는 평일을 골라 서울랜드를 간 적이 있었다. 사람이 많이 없는 틈을 타 마음껏 장비를 타 보자는 취지였다. 오전 일찍 나선 비 오는 평일. 예상대로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청룡열차를 연속으로 스물한 번을 탔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아이의 마음으로 함께 즐길 때 마음도 젊어지는 듯하다.


서울랜드 쪽으로 발걸음을 한 주된 이유는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란 흔히 놀이공원 쪽으로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살살 꼬신 결과인지 제법 그 옆의 미술관 출입도 하게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 전시회도 하는 와중에, 신진 작가전, 해외 작가전, 새로운 시선에 대한 컨셉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너 달에 한 번씩 갈 때마다 새로운 볼거리가 있었다. 이런 양질의 프로그램을 국가의 지원으로 저렴하게 접할 수 있을 때마다 세금을 내는 맛이 났다. 가족에게 여러 가지를 체험시키고픈 마음으로 간 전시회였지만, 사실 그 속에서 내가 더 즐거웠다. 우선 극히 고요하고 넓은 내부는 가만히 거니는 것만으로도 평일의 때를 씻어 내어 주는 아우라가 있다.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가치라는 것은 미술관 내부를 걸을 때 항상 느끼게 된다. 미술 작품은 그냥 무심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선의 확장을 만들어 주었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고민들, 다른 관점들이 그 속에 있었다. 특히 순수 회화뿐 아니라 설치 미술, 미디어 아트, 건축 쪽도 강세이다 보니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미술을 접해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때로는 촉각, 후각 그리고 청각까지 감상에 동반되기도 한다. 최신 기술이 접목되어 트렌드를 읽어나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미술에서도 여러 요소가 함께 섞여 아이디어로 발전하는 현대작품들은 흥미로웠다.


어린아이와 함께 미술관에서 시간을 길게 보내기에는 아무래도 집중도에 한계가 있다. 개개의 작품에 시간을 들이지 못하고 흘러서 지나가게 마련이다. 대게 이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때로 밤샘으로 다음날 휴가가 생기는 행운의 경우, 피곤함을 무릅쓰고 미술관으로 달려가곤 했다. 혼자 돌아다니면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감상에 할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다가가게 된다. 우선 제목을 읽고 작품을 마주한다. 적어도 제목에서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함축되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멀리서 전체를 훑었다가 가까이서 디테일을 확인한다.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를 확인한 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내버려 둔다. 그런 과정으로 지나가다 보면 반드시 눈에 띄는 작품들이 꼭 있다. 그럴 경우 한 공간을 다 돌고 나서 다시 마주한다. 두 번째는 긴 호흡으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즐긴다. 이때에는 더 세밀한 곳까지 따라가게 되는데 이를 통해 새로운 느낌을 찾아내곤 한다. 특히 사용된 여러 궤적을 확인하고 이것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따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즉, 작품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요소와 그 구성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순수 유화 작품도 이렇게 즐길 거리가 많다. 사용된 색깔, 크고 작은 붓의 질감, 겹쳐 읽히는 붓터치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오다 보면 이야기가 더 많이 읽히곤 한다. 물론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짐작할 때도 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런 행위를 통해 시간을 들이면 반드시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희로애락의 감정일 수도 있고, 물음을 주는 질문일 수도 있고, 아무 생각이 없는 멍한 시간이기도 하다. 미술 작품을 마주할 때 겪게 되는 거창한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렇게 얻게 되는 새로운 감정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술관을 들락거린 시간들이 개인적인 음악 듣기에도 도움을 주었을까? 창작물이란 표현법이 다를 뿐 같은 선을 공유하고 있다면 그렇기도 하겠다. 요소와 구성에 집중하는 경향은 음악을 들을 때도 함께 한다. 우리가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 부분에 보다 집중하여 만들었을 음악들이 존재한다. 사실 대표적으로 고전 클래식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기본적으로 구성에 집중하는 음악에 대해 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분명한 성향 같은 것이리라. 그러하더라도 이런 류의 작품들이기 때문에 더욱 감흥을 느낀다는 지점은 없다. 후욱 따뜻한 바람이 얼굴을 감싸듯 좋은 느낌을 만나는 기회가 흔하겠는가. 그래서 많지 않은 순간을 마주했을 때를 소중히 여기게 된다. Andy Stott 앤디 스톳의 [Luxury Problems]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정신적 긴장감이 이완되고 서서히 밀려드는 행복감이 있었다. 평일 사람도 없는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거닐던 그런 느낌을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감정은 아님이 분명하다. 우선 성향에 따라 달라지며, 장르의 호불호에도 영향이 있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서도 갈라지기 때문이다.


영국의 일렉트로닉 음악인인 Andy Stott의 앨범들은 기본적으로 구성적인 음악이 주를 이룬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자면 미술 작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얘기한 미술관에서 작품을 본다는 느낌과 다르지 않으리라. 음악을 구성하는 재료로 많은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미니멀함을 좋아하는 이들이 호감을 표하기도 하겠지만, 창작자에게는 그만큼 고민의 시간이 크기도 하리라. 때로는 소리의 형태뿐만 아니라 질감이 주는 지점을 간과할 수 없다. BPM 또한 머리를 적당히 헹구어 줄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리를 새로운 곳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기성품 소리가 아니라 직접 녹음한, 혹은 자신이 재가공한 소리, 흔한 생활 소음을 활용하는 것을 즐긴다. 소리는 좀 더 낡고 어둡고 유니크한 특성이 있다. 이것들이 한데 버무려져서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인가가 그에게 숙제일 것이다.


[Luxury Problems]을 준비하며 그는 새로운 재료를 고민한다. 본 앨범에는 독특한 콜라보레이션이 사용되었는데 바로 어느 여성의 목소리이다. Andy Stott는 10대 때 자신을 가르쳤던 피아노 선생님 Alison Skidmore에게 연락을 하였으며, 그녀의 목소리로 앨범을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무언가 잘못된 어떤 것을 만드는 것. (‘How do you feel about making something wrong?’) 작업 방식 또한 동시성이 배제된 이메일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즉, 메트로놈 만으로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후 보내면, Andy는 보컬을 중심으로 트랙을 이어 붙이고, 비트를 추가하여 분위기를 형성한 후 그녀에게 첨부 파일로 다시 보낸다.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해 흥분하며 또 다른 아이디어가 추가된다. 단절된 작업 방식은 그 한계성도 있겠지만, 우연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새로움도 추가된다. 오페라를 전공하기도 했다는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일반적이지는 않다.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파편화 후 샘플링된 목소리는 앨범 곳곳에서 하나의 악기와 같이 사용된다. 무겁고 심장을 둔탁하게 두드리는 듯한 기저의 소리와 분절된 그녀의 목소리가 서로 부딧치고 어우러지고 소멸된다. 이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내가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주하며 즐기는 방식과 유사하다. 무심히 각 재료들이 흐르는 시간들을 따라가고, 긁히고, 헝클어지고 덧칠로 사라진 흔적을 좇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올라오는 감정, 작은 것에서 큰 시야로의 흐름, 지나간 구성물과 필름을 이어 붙여가며 만들어 내는 전체 그림의 완성.


쫓겨날 것 같아 아내가 있을 때는 틀지 않지만, 아이와 둘이 있을 때는 곧잘 볼륨을 높여서 즐기곤 했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내게는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앨범이다. 왜?라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우리는 모든 작품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그런 행위가 필요 없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금번 작품은 그 소리를 따라가는 행위에 대해서 미술관 관람을 예로 묘사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감흥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내게 미술관의 그림 같은 앨범이다.


Andy Stott [Luxury Problems] 2012년 <Numb>

https://youtu.be/uTOsBk-V9uA?si=GBbdMRhhNL8zs3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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