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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좋아서] 당신을 좋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by Cho

"영화가 좋아서요."


영화를 포함해서 모든 예술은 돈 많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특히 적게는 몇 백부터 시작해 많게는 억 단위의 금액이 투자될 수 있는 영화는 더욱 그런 오해를 많이 받는다. 물론 돈 걱정 없이,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반응에 상관없이, 본인이 하고픈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있기는 하더라. 하지만 그런 운 좋은 예술가는 많지 않다. 실상은 만들고자 하는 영화 한 편을 위해 제작비를 구하고자 고군분투하는 영화감독이 더 많으며, 영화 제작 중에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버는 감독들도 있다. 또한 그렇게 발표한 작품의 실적에 일확천금을 버는 사람보다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는 배우와 제작진에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작비 이상의 노력이 들어간다. 그런 그들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결코 사치가 아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이 가득한 영화계에서 감독들을 만나면 종종 안타까운 얘기를 듣게 된다.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영화는 잠시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들의 뛰어난 작품을 보고 감탄하던 차에 이런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려온다. 이렇게 영화를 사랑하고 잘 만드는 사람도 현실에 치여 영화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니. 영화 비평가들도 비슷한 얘기를 자주 한다. "이 판은 누구든 스타가 되지 않는 이상, 돈은 많이 못 버는데 고생은 많이 해요."


그들에게 그럼에도 영화계에 있는 이유를 묻는다. 그러면 현실에 찌든 어른의 얼굴을 한 채 푸념을 늘어놓던 그들에게 갑자기 생기가 돈다. 이윽고 수줍은 말투로 조심스레 입을 연 그들은 말한다. "영화가 좋아서요."



당신을 좋아하는 멋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까지 당신을 좋아해도 될지 모르겠다. 당신이 좋아 나보다 훨씬 당신을 잘 알고, 훨씬 그 마음을 잘 표현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인데, 내가 뭐라고 이 잘난 사람들 안에 낄 수나 있을까 싶다. 때로는 나도 그저 당신이 좋다는 많고 많은 관중들 중 하나에 불과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런데 어쩌겠나, 당신이 좋은데.


그런 마음에 과연 계속 좋아해도 될지, 내가 감히 탐을 내는건 아닌지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좋아한다'는 건 뭔지 혼란스러워졌다. 좋아하는 마음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때 '좋아하는 걸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을 때, 사람은 가장 슬프다'라는 말을 보게 되었다. 아린 마음을 감싼 채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려 했다. 다른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기도, 그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를 해석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바보 같은 나는 '그냥... 왜인지 모르겠지만 좋아'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알게 됐다. '아, 나는 내가 좋아하던 당신이 싫어진 게 아니야. 이 마음이 나에게만 어여쁠까 하는 걱정에 슬플 뿐이야.'


이제는 안다. 당신을 좋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나는 당신이 좋다. 그저 수많은 대중의 하나가 되더라도 괜찮다. 그래도 나는 애정 어린 눈으로 당신의 장점을 보고 얘기하며, 당신으로부터 힘을 받고 웃음을 얻을 사람들의 모습을 기대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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