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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손발톱을 깎으며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by 소호

티슈 한 장 펼쳐놓고 손발톱을 깎는다.


톡, 톡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나의 몸에서 자라난 물질이 잘려 나간다.


날카로운 쇠붙이에 내 몸의 일부가 잘려나가는 비참한 현장인데도, '너의 몸에서 떠나 즐겁다'는 듯한 경쾌한 소리에 왠지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


신체와 인격이 어울려 인간이 되고 그 인간의 존엄성이 문화와 학문의 주요 주제로 논하여진다.


손발톱도 다른 중요 장기와 마찬가지로 인간 신체의 일부로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정기적으로 한 번씩 날카로운 손톱깎이에 무자비하게 잘려 나간다. 그 누구의 위로도 없이. 그 몸의 주인마저도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후련하게.


인생의 장엄함에 집중하다 보면, 소소한 주변의 삶이 묻히고 아무도 모르게 스러져간다. 그래도 거친 들판의 야생초처럼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사소한 삶들이 인생을 스멀스멀 장악한다.


그러면 또다시 날카로운 '세상의 판정'이라는 쇠붙이에 손발톱처럼 잘려나가고, 소박한 삶은 여기저기 파편처럼 튀어 오르다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그러나 아주 하찮아 보이는 손발톱도 비장함을 풍기며 나의 형태의 일부로서 세상에 남기도 한다. 전쟁에 나서기 전, 머리카락과 손발톱을 잘라 유서와 함께 세상에 존재했던 나의 자취로서 남겨 놓는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러하니 사알짝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아무리 사소한 삶들로 점철되어 있는 나의 인생이지만, 전쟁 같은 삶을 끝내고 나면 낡은 봉투 속의 손발톱처럼 나의 자취가 조금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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