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유유상종.
나는 어려서부터 새로운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지도, 그것에 능력이 있지도 않았다.
친구끼리 어울리면 '삼총사'라 명명하기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 기억으로 미루어보건대, 나는 친구 2~3명 정도의 어울림을 좋아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면, 뛰노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모여 앉아 장기를 두거나 이야기 나누기를 즐겼다.
그러하니 한참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소년시절엔 활발히 움직이지 않고 조용했던 친구가 많지는 않았을 거고, 나의 성향에 맞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늘 '삼총사'였지 않았을까?
대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삼총사'가 아닌 7~8명의 친구가 생겨났다.
자주 시끌벅적 어울려 다녔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유유상종'의 기준은 적용되었고, 친구 중 더 정이 가는 친구는 역시 2~3명 정도였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이른바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친구만을 만나며 살 수는 없고, 업무의 효율성과 승진을 위해서라도 많은 사람을 알고 만나야만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천생의 성격은 어찌할 수 없어, 나는 상대적으로 '유유상종'의 기준에 더 충실한 사람이었다.
나름 노력하며 살고 있다 생각했지만, 가끔 주변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라고 충고해 주었던 것을 상기해 보면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유유상종'의 울타리 안에서 허덕이고 있던 것이 분명하다.
이제 드디어 직장을 떠날 때가 다 되었으니, 그간 나의 자발적인 기쁨으로 만나지 못하고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외면할 수 있게 되었다.
핸드폰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메신저도 정리한다.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계속 전화를 주고받고 만나기도 하는 사람들은 양손가락 정도 꼽을 수 있겠으나, 혹시 전화가 왔을 때 누구인지 모르면 미안해지지 않을까 싶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도 남기다 보니 아주 가벼워지지는 못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든 모임도 하나 둘 빠져나오고, 노년에도 계속 만나고 싶은 모임만 남기다 보니 이 역시도 '삼총사'가 되었다.
'외면하기'도 의외로 '친구 사귀기'같은 기쁨을 가져다준다.
이율배반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비만해진 몸을 털어내고 홀쭉해진 사람처럼 홀가분해지며, 오랫동안 꽉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진다.
상대방과 만나려면 기쁨이 없고 의무감만 가득했던 관계는 너무 무겁고 힘들었다. 이제는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과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으니, 이러한 것만으로도 삶의 기쁨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물론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축의금과 부의금을 했던 돈들이 미래의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가벼운 고민도 있긴 하지만...
앞으로의 인생에서도 가끔씩 '친구 사귀기'를 하고, 그보단 자주 '외면하기'를 실행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홀쭉해지고, 겉장식은 없어지고 속알맹이만 남을 것이다.
너무 홀쭉해져 허전해질 수도 있지만, 늙어 갈수록 인간 본연의 '홀로서기'로 돌아갈 것이다. 조금 쓸쓸하지만 더 풍족한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