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문득. 아내의 패물함 구석에 처박혀 있던 오래된 나의 손목시계가 생각났다.
결혼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패물로 마련했던 손목시계의 행방은 생각나지 않지만, 십여 년 전 유행하던 범용형 시계를 새로 구매해 차고 다니다, 핸드폰에 노예화된 시점에 시계를 풀어 버렸다.
어느 사이. 그렇잖아도 기억력이 쇠퇴하여 사람 이름도, 전화번호도 잘 생각나지 않는데, 핸드폰으로 인해 머릿속 기억이 더 텅 비어버린 듯했다.
갑자기 제법 똘망했던 더 젊었던 과거가 그리워져, 아내의 조그마한 상자에 방치되어 있는 손목시계에 동병상련이 생겨, 예전의 시계를 슬며시 꺼내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먼지를 티슈로 털어내고 나니, 멈추어 있는 시곗바늘이 눈에 들어온다.
사라진 관심에 패물함에 갇혀있던 시계는 홀로 몇 달, 몇 년을 똑딱거리며 시곗바늘을 돌리다, 어느 순간인지 모르게 조용히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계를 보게 된 순간.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죽어있는 시계를 살려내고픈 시급한 마음에 사로잡혀 허겁지겁 금은방을 찾아갔다.
요즘시대에 시계수리도 겸하는 금은방을 찾기가 어려웠으나 주변을 샅샅이 뒤져 찾아내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이 드신 주인장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손목에 차고 있던 죽은 시계를 내밀자, 나이 드신 분이 돋보기를 끼고, 오래된 시계의 수명이 다한 배터리를 갈아 끼운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어르신의 대열에 끼어들 가짜 어르신이 새로운 심장을 이식받은 듯 다시금 뛰고 있는 시계를 소중히 두껍지 않은 손목에 찬다.
나의 얼굴의 주름살과 낮은 언덕처럼 튀어나온 뱃살을 보면 누구라도 나이 먹은 아저씨로 볼 텐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고 젊은 세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거렸던 지난 날 보다, 좀 더 자연스러운 감정에 동화되어 핸드폰 연동 시계보다 오래된 시계를 차고 다니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듯하다.
비가 잦은 요즘. '나스메 소세키'의 '산시로'와 '갱부'를 읽었다. 어두침침한 창밖 풍경에, 빗소리에, 흘러가는 시간에 사알짝 우울해졌으나 소설 속의 방황하는 젊음을 지나온 지금이 더욱 소중함을 느꼈다.
지금까지는 나의 아이들과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칠 나의 '꼰대스러움'을 극복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이제는 현재의 자연스러운 '나'를 사랑하고 흐르는 시간에 편하게 몸을 맡겨보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똑딱거리는 시곗바늘이 어두운 구름을 비집고 비치던 햇살을 끌어내고 있지만, 시곗바늘이 멈추는 어느 순간 '가구야 공주'처럼 세상 모든 기억을 잊고 햇살이 시작되는 하늘로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