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는 것은 작가 은유가 이야기한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와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삶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깊이를 더하고 그 깊이만큼 마음을 쌓는 일은 고단한 일입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에 눈길을 주고 살펴야 하기 때문에 작은 마음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풀잎 하나가 바람에 흔들려도 저 풀잎은 아프지 않을까 하며 풀잎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저는 이 문장을 보고 마음이 뭉클해지고 설렙니다.
분홍색 네일 아트가 손톱에 칠해진 지 한 달이 훨씬 넘었습니다. 새 손톱이 자라나고 있어 기존의 네일 아트를 지우러 처음 가보는 네일샵으로 향했습니다. 들어가자마자 원장님은 저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끊임없는 입담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마주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을 쑥쓰러워하는 저는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대화에서의 반응도 "아~", "맞아요."에 한정되어 있어서 일방적인 대화가 되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한결같은 저의 반응에도 원장님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셨습니다. 이쯤 되니 불편한 느낌이 들기보다(워낙 이야기를 잘 하셔서 처음부터 불편한 느낌이 들진 않았습니다.) 전문적인(?) 이야기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야기를 들려주시지 않더라도 저는 어색할 수도 있는 대화의 여백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분의 입장에서는 저를 배려해서 그칠 줄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겠지요.
시원찮은 반응을 보이는 청자를 위해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하시는 원장님의 모습이 마치 제가 수업을 할 때의 모습 혹은 그동안 제가 살아온 모습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아름다움을 찾아보자고 말하기 위해 삶의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부단히 아름다움을 찾아온 모습, 작은 마음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아프더라도 면밀히 들여다보며 이 마음이 어떤 것일까 하고 탐구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모습. 멈추지 않는 그분의 몸부림이 저의 몸부림과 맞닿아 있어서 그분의 이야기에 그렇게도 눈물이 글썽거렸나봅니다.
이야기가 끝나니 분홍색 손톱은 벗겨지고 원래의 손톱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찮은 것(원장님의 이야기장)은 아니었지만 마주하는 순간에 깊이가 더할 자리를 마련해 주니 저의 존재를 발견하게 되었고, 제 삶을 더 옹호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분이 들려주셨던 이야기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면 또 오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