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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라임 Oct 12. 2022

포르투갈 - 유럽행 우등석(feat. 에미레이츠)

타도시 기행 09

 비즈니스석(우등석)의 최대 단점은 금액이고, 그 외 모든 것들은 장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보고 경험해봐도 돈 빼고는 장점뿐이다.


 우선 편안한 좌석에서 늘어져서 이동하기 때문에 여독이 거의 없다. 보통 장거리 비행을 마치면 온몸이 뻐근하고, 잤는데도 잔 것 같지 않은 상태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 잠깐이라도 쉬었다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오래전 내 몸뚱아리가 파릇하던 시절에는 그런 것 따위 느끼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피로함이 크다. 이제는 비즈니스를 타야 여행지가 아름답다. 도착하면 짐 풀고 외출하는데 큰 부담이 없다.


 비행기에서 보통 "레드와인 한 잔이요." 하면 그냥 알아서 따라 주셨는데, 우등석에서는 와인 리스트를 보여주고 그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다.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거의 대부분 고급 레스토랑 마냥 병의 라벨을 확인시켜주고 잔에 따라 주신다. 또한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를 각각 선택 가능하다. 음식의 맛이야 땅에서 먹는 것에 비해 크게 훌륭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하늘 위 나름 넓은 공간에서 정식으로 식사를 하는 것처럼 서비스를 해주셔서 괜히 성공한 것 같은 착각을 할 수 있다.



 이번엔 나름 럭셔리 서비스로 유명한 에미레이트 항공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경험했다. 두바이를 경유하여 리스본을 다녀오는 왕복 코스였고, 비행시간은 대략 '9시간 비행 + 3시간 두바이 경유 + 8시간 비행'으로 총 20시간 가까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가장 놀라웠던 서비스는 집까지 기사님이 오시는 것이다. 정식 명칭으로는 'Chauffeur-drive service'이고, 한글로는 '전용 기사 서비스'라는 것이다. 탑승인원과 짐을 미리 파악해서 그에 맞는 차를 보내준다. 약속한 시간 전에 우리 집 앞까지 기사님이 오시고, 에미레이츠 체크인하는 곳 앞에 내려주셨다. 서울권은 무료이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추가금이 붙는데, 우리는 4만 4천 원을 결제했다. 왕복으로 총 8만 8천 원을 소비했지만, 자차를 이용하면 나갈 기름값, 톨비, 주차비 등을 계산하면 금액적으로도 훌륭했다. 그리고 도착해서도 이용할 수 있다. 리스본에 도착해서는 포르투까지 바로 가는 바람에 이용하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에어비앤비 숙소 바로 앞까지 기사님이 오셨다. 두 좌석이기 때문에 각각 다른 곳에서 이용 가능하고, 두바이에서 경유하게 되면 그때도 이용 가능하다.


 그리고 두바이의 비즈니스 클래스 라운지가 정말이지 끝내준다. 터미널 A, B에 큰 라운지가 있고, 그 외에도 자잘하게 공항 곳곳에 숨어있다. 우리는 오며 가며 터미널 B의 라운지를 이용했는데, 일단 엄청 크다. 술과 음식은 섹션별로 구분되어있고, 평소에 맛보기 힘든 모엣샹동이 지천에 널려서 무제한으로 마셔볼 수 있다. 이것은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에미레이츠는 본인들의 서비스 레벨을 보여주는 수단으로 모엣샹동을 내세우는 것 같았다.


 사실 그 무엇보다도 나 같은 흡연자들에게는 최고의 라운지일 수밖에 없는데. 라운지의 맨 끝에 흡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사방이 뚫려있는 라운지의 테이블에 재떨이가 놓여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음식과 술을 마시며 그냥 피우면 된다. 우리가 흔히 보던 공항의 흡연실은 유리벽에 막혀서 너구리들처럼 서둘러 피우고 나오는 구조인데, 두바이 라운지에서의 흡연은 그냥 이쪽으로는 세계 최고다. 어딜 가나 눈치 보며 사는 흡연자들은 감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



 다만 두바이를 경유하는 스케줄에는 단점도 있었다. 경유를 한 번 한다고 했을 때, 앞뒤 비행시간이 있을 텐데. 차라리 한 구간이 길면, 나머지 구간은 '이제 두 시간만 가면 된다!'며 정신승리가 가능하다. 그런데 두바이라는 허브공항의 위치 때문에 애매하게 8시간씩 두 번을 타니까 비행 내내 '아직 멀었구나.' 하게 된다. 다음에 혹시 유럽에 가게 된다면, 직항을 최우선으로 알아볼 것이고, 그게 안되면 차라리 유럽 대도시로 한 방에 가버리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우리는 이번 비행을 앞두고 야심 찬 계획들을 세웠다. 시험을 준비 중인 배우자는 두툼한 참고서를 챙겼고, 나는 브런치 글을 써보겠다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하나 장만해서 배낭에 찔러 넣었다. 역시나 우리는 준비해 간 것들을 본체만체했고, 그것들은 배낭에 콕 박혀서 여행 내내 우리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코노미로 갔으면 동태가 되고 말았을 몸뚱이들을 온전하게 보전해준 우등석이 나쁘진 않았다.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둘러맨 우리의 행색에 어울리진 않았지만, 좋은 서비스받으며 비행시간을 아예 지워버릴 수 있었다.


 앞으로도 돈 떨어지기 전에는 5시간 넘으면 우등석 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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