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족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 p.331
제사를 지내러 큰집에 가면 모든 음식은 왜 할머니와 큰어머니, 우리 엄마, 사촌 오빠의 부인들이 도맡아 하면서, 제사가 끝나도 그 음식을 같은 상에서 먹을 수 없는지 어린 시절의 나는 궁금했다. 왜 여자들은 부억에서 상을 펴지도 않은 채, 스테인레스가 아무렇게나 벗겨진 양푼이에 담긴 부침개와 전의 끝부분을 먹는지, 그리고 나서 남자들은 청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동안에 왜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과일을 깎고, 음식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하는지 궁금했던 풍경들이 차츰 익숙해졌다.
엄마는 내가 바느질을 하는 것도 싫어했고, 요리를 하는 것도 싫어했다. 결혼하면 이런 일들로 고생할 것 뻔한데, 잘하면 더 많이 할 일들만 남아있을테니 집안일은 무조건 덮어놓고 몰라야 한다는 이상한 지론을 펼치며 제삿날 부엌에도 절대 못 들어오게 하셨다. 절을 해야한다는 남자 조카들이 나간 뒤, 작은 방에서 어린 여자 조카들에게 먼지 쌓인 그리스 로마 신화나 삼국지 같은 책을 꺼내 읽어주면서 조용히 숨죽이고 지켜보았던 제삿날 밤의 온도와 공기가 기억난다.
서글픈 지난 날들의 기억은 시선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 제사가 이렇게 유쾌하고 즐거울 수도 있구나. 살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심시선이 주는 메시지가 이렇게 강하고 따뜻할 수 있구나.
떠나버린 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러나 그 방법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 획일화된 관습과 그 속에 강요되는 부당한 일방적 노동이 끊어지길 바란다.
아빠는 제사 대신에 아메리카노 한잔이나 더치 커피를 마시면서 자신을 추억해달라고 하셨다.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생전에 좋아했던 꽃 한다발과 가족사진을 들고 우리 만의 방식으로 당신을 기억한다. 아직도 바뀌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은 세상이다. 끔찍한 사건과 외부의 크고 작은 충격이 나를 관통할 때, 언제쯤 무던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는 언제쯤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을까, 고민하는 쪽에 서고 싶다. 고민을 넘어서서 이왕이면 실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제사나 육아의 이유로 야간 근무에서 배제되는 여자 직원에게 책임감이 없다고 말하는 상사들에게 그 발언의 잘못을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싶다.
절망을 말하는 일보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 하는 쪽이 훨씬 더 힘들다. 그 속에서 끝끝내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선과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