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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Nov 17. 2024

유레카

 물과 친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엉겁결에 물과 화해를 했던 몇 해 전의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수영을 배워보기로 했다. 비록 밧줄에 의지한 스쿠버다이빙이었지만 물속에 처음 들어갔던 날, 나는 의외로 물이 사납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두려워했던 대상이었는데 한없이 상냥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평화로운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바다 생물들과 어우러지는 나를 상상했다.


 그저 상상으로 끝나기 전에 행동으로 옮기고 싶었다. 벼르던 끝에 수영장 문을 두드렸다. 막상 시작하려 하니 물과 화해한 기억은 사라지고 그 전의 공포가 살아났다. 수영장 입구에 들어서는데도 몇 번의 심호흡이 필요했다. 잔뜩 긴장을 하고 있으니 몸에 힘을 빼라는 말을 강습 때마다 들었다. 물에 나를 맡겨야 한다는데 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살면서 힘을 뺀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몇 주가 지났다. 기특하게도 나는 물에 떴다.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는 것도 제법 잘 따라 했다. 어릴 때부터 개울가에서 다이빙을 하며 놀았다는 동기 수강생들을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물속에서 발차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대견했다. 무릎 위로만 물이 차도 온몸의 세포들이 곤두섰던 내가 턱 밑까지 찰랑거리는 물속에 들어와 있지 않은가. 내 자리는 늘 꼴찌에서 서너 번째였지만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 정도면 너무 훌륭했다. 


 물에 떠서 어느 정도 수영의 틀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도구의 도움 없이 연습하라며 강사님이 킥판을 가로채갔다. 떠 있던 몸이 중심을 잃으면서 뒤집어졌다. 아니 그렇게 느꼈다. 사실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죽음까지 떠올렸던 그 공황 상태에 빠졌다. 내 몸이 끝없이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간신히 일어서 가쁜 숨을 내쉬는데 강사와 수강생들이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늘 그랬다. 물가로 놀러 가면 나는 무서워서 쉽게 물속에 들어가지 못했다. 물 주변에서 맴도는 나를 누군가가 물속으로 이끌면 마지못해 정강이 언저리까지 들어가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 게 전부였다. 행여 허리 이상으로 들어가기라도 하면 중심을 잃어 넘어졌고, 그럴 때마다 나는 삶의 끝자락을 찍고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심정으로 물속을 벗어나곤 했다.


 이번엔 피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무섭다고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 물에 떴다가 일어서는 연습에 집중했다.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서 안전요원이 앉아있는 앞에서 연습을 했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안전요원은 불안한지 자꾸 나를 주시했다. 몇 날 며칠을 허우적대는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겸연쩍은 미소를 보냈다. ‘그게 그렇게 안 되나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의 미소를 나는 응원으로 받아들였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물에 서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는 없었다. 나만 모르는 비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수영을 먼저 시작한 남편에게, 친구에게, 또 수영강사에게 하소연하듯 물었다. 대답은 비슷했다. 두 다리를 모아 가슴 쪽으로 당기고 몸을 아래쪽으로 누르면서 일어나라는 조언들이었다. 그대로 따라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애초에 다리를 모으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어둡고 깊은 곳으로 빨려가는 듯한 공포가 먼저 나를 휘어잡았다.


 수영은 나와는 맞지 않나 보다, 몸이 물에 뜨는 것만 해도 어딘가, 이 정도면 됐다…. 갖가지 생각이 나를 유혹했다. 수영장을 향하는 발길이 천근만근이었다. 가지 않아도 될 핑곗거리가 산더미였다. 물속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한 수영 실력이 나아질 방도가 없었다. 


 그날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서 수영장에 도착했다. 발차기가 어떻다는 둥 팔 돌리기가 어떻다는 둥 동기 수강생들이 부지런히 의견을 나누는 동안 나는 말없이 물만 바라보았다. 뚫어지게 물을 응시하다 보니 물속이 훤히 보이면서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 물속에 서는 것이 아니라 바닥 위에 서는 것이었다. 그동안 물속에서 몸을 세울 때마다 두려움에 눈을 감아서 바닥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유레카!”


 용기를 내어 킥판 없이 물속에 몸을 던졌다. 몇 미터나 왔을까. 몸을 바로 세울 때가 되었다. 순간 머릿속에 그동안 들었던 조언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리를 모아 당겼다. 몸을 물 아래쪽으로 눌렀다. 그리고 바닥을 바라보았다. 내 발이 바닥에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전혀 두렵지 않았다. 곧 설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드디어…. 나는 물속에서 내 몸을 꼿꼿이 세울 수 있었다.


 이 기쁜 소식을 빨리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다. 수영 강습을 함께 받던 동기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내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릴 때보다도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수경을 썼는데 왜 눈을 감아?”

 “….”


 물속에서 다들 눈을 뜨고 있었다니…. 나만의 ‘유레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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