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 사태’ 논란에 대한 어느 전임 대한의사협회 이사의 생각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대한민국 의료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책임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는 듯합니다. 의사 집단은 주야장천, 2000명 의대 증원을 주장한 정부 책임이랍니다. 속칭 ‘조중동’ 역시 요즘 들어 이 주장에 동조하는 듯합니다.
분노합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기껏해야 400명에 불과한 공공의대 신설을 추진하자 코비드 19 와중에도 파업했던 게 의사 집단입니다.
의사와 대화하라고요? 역대 정부가 의대 증원에 실패했던 게 죄다 정부의 대화 노력 부족 때문이었다고 보십니까? ‘의료 행위 독점’을 무기로 의사들은 ‘수틀릴 때마다’ 파업해 왔습니다.
의사 집단과 대화하자고요? 의사 집단과 대화가 된다고 보세요?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아마 2020년 파업 때의 기억조차 죄다 잊은 분들일 겁니다. 그때도 의사 집단은 “단 1명의 의대생 증원도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결국 굴복했고요.
솔직히 동네 의원 파업은 두려울 것이 하나 없습니다. 감기 등 대부분 경증 치료에 국한되니까요.
무서운 것은 대부분의 수술을 전담하는 대형 병원의 파업이지요. 그런 약점을 잘 알기에, 대형 병원 의사 업무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전공의들은 파업을 해서 대형 병원 업무를 마비시켰고, 그럴 때마다 정부는 의료 개혁에서 물러났던 겁니다.
그 짓거리를 또 보자는 건가요? 이번에도 의료 개혁이 실패하면 앞으로 의료 개혁은 영영 불가능할 겁니다.
저는 그 어떤 사고를 할 때, 서구 지성계의 오랜 전통인 ‘오캄의 면도날’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모를 때는 ‘예외나 변명이 적은 편’이 옳을 확률이 높다는 사고 원칙입니다.
이번 의료 파업에서 정부가 우선 잘못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다음 질문이나 주장에 명쾌히 반박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대한민국 의사들이 저수가로 희생당하고 있다고 의사 집단은 주장합니다. 묻습니다. 의사들이 희생당하는데 왜 의대 커트라인은 다락같이 높아졌나요? 서울대 법대 커트라인이 서울대 사학과 커트라인보다 높았던 것은 법대 출신에 대한 사회적 대접이 사학과 출신보다 높았기 때문입니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자기 자식 희생시키려고 부모들이 눈에 불 켜고 자식을 의대 보내려는 것인가요? 의사들이 자기 자식 공부 잘 하면 “그래 나처럼 의사하면서 희생당하지 말고, 공대나 자연대 가라”라고 이야기하나요? 의사들조차 자기 자식이 공부 잘 하면 의대 보냅니다. 이유? 이 사회에서 의사가 가장 편하게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2. 정말로 대한민국 의료가 저수가인가요? 묻습니다. 삼성전자가 직원들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보험료의 12.87% 부과. 이하 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는 ‘건강 관련 보험료’로 통칭)로 ‘강제로 다달이 내는’ 총액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삼성전자의 순수익 대비, 직원을 위해 강제로 다달이 내는 건강 관련 보험료가 어느 정도 비중인지 살피신 적이 있나요? 세계적인 대기업인 애플이나 구글 등과 비교해 보면 어떨까요? 이 비용, 모두 제품 가격에 전가돼서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입니다.
3. 유럽이나 미국. 일본 그 어느 나라도 좋습니다. 은퇴한 사람들의 소득의 없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건강 관련 보험료를 강제로 이렇게 높은 비율로 부과하는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세상 어디에 있나요? 심지어 영국은 건강 관련 보험료라는 명목으로 다달이 국민이나 기업에게서 받는 ‘돈’이 없습니다. 일반 세금에서 국민 건강 관련 예산을 책정합니다.
요즘 수도권에서 은퇴한 분들의 가장 큰 고민이 뭔지 아시나요? 소득은 없는데, 강제로 건강 관련 보험료를 ‘재산 상태에 따라’ 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아는 어느 퇴직 관료는 잠실에 집 한 채 가지고 있는데, 월 60여만 원의 건강 관련 보험료가 나오는 통에, 어느 소기업에 취직한 것처럼 꾸며서 건강 관련 보험료를 줄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우파 대통령 박정희가 ‘복지’ 차원에서 도입한 제도입니다. 저소득층에게 건강보험제도는 복지이지만, 가진 자에게 건강보험제도는 가혹한 세금입니다.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는 의사의 희생이 아니라, 가진 자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겁니다.
4. 한국 의료비는 수술의 경우, 저수가인 것은 맞습니다. 이것은 고쳐야 합니다. 하지만 감기 등 일반 경증 환자의 수가 역시 의사의 희생이 따르는 저수가인가요?
만약 그리 생각하신다면, 귀하는 이 나라의 사회경제문화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입니다. 예를 듭니다.
인구 밀도가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음식점을 내면 음식값을 싸게 받을 수가 없습니다. 임대료도 쌀 터인데 왜 가격을 못 내리나고요? 최저 임금 때문입니다. 하루 손님이 많아야 50명 미만인 곳에서 자장면 가격을 5000원 받았다가는 바로 망합니다. 매출액 자체가 하루 25만 원입니다. 주방 근무, 홀 서빙, 전화를 받거나 계산대 근무 등 잔무 처리 등 무조건 3명은 중국집에서 고용해야 하는데 하루 8시간 근무만 시켜도 하루 인건비만 24만 원 가까이 나갑니다.
하지만 대도심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자장면 가격을 5000원에 판매할 수 있습니다. 박리다매 전략으로요. 종종 서울이나 서울 근교 재래시장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여전히 4000원 이하로 팔 수 있는 것은 그런 까닭입니다.
의료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대한민국의 인구밀도(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1 제곱킬로미터 기준)가 얼마인지, 그리고 세계 평균이 얼마인지 아시나요?
세계은행에서 이에 대한 통계를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530명입니다. 세계 평균은 60명 정도이고요. 그 인구 많다는 중국이 150명, 일본이 345명, 미국은 36명입니다. 통계는 여기를 보시면 됩니다.
이러니 박리다매 의료가 가능한 겁니다. 세계에 비해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거든요.
의사들이 희생하기에 저수가가 가능하다고요? 만약 의사들이 저수가로 희생하는 직업이었다면, 의대 커트라인은 애저녁에 추락했을 겁니다.
5. 의사들의 수입을 미국과 비교하면서, ‘미국에 비해 의사들이 이렇게 희생하는데 의사 수입은 너무 적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럼 묻습니다.
전방을 지키는 대한민국 군인들의 근무 시간과 근무 강도, 복지, 여기에 보수를 미군과 낱낱이 비교해 볼까요? 화마와 싸우는 소방대원들은요?
미국은 음식점 홀 서빙을 할 경우, 음식 가격의 10%를 팁으로 받습니다. 음식 가격도 우리에 비해 훨씬 비싸지요. 서울에서는 여전히 1만 5000원이면 서민적인 한끼 식사가 가능합니다. 뉴욕은요? 팁까지 포함한다면 3만 원(22달러 정도) 가지고는 정말로 힘들 걸요? 뭐 패스트푸드 햄버거라면 모를까. 의사 슨상님들, 요즘 뉴욕 가 보셨죠? 식대가 얼마던가요?
의사들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에서 군인 소방대원 요식업 종사자 모두 낮은 보수로 희생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들 보수 확 높여야 합니다.
철부지 생떼쟁이들도 이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헬조선에 의사들만 사나요? 귀하들만 힘들어요? 의대 커트라인이 이리 오른 것은 그래도 의사들 살기가 대한민국에서는 가장 좋기 때문인데?
6. 대한민국에서 의사의 의료 독점 영역은 정말로 넓습니다. 한데요, 레이저로 점 빼는 것을 정말로 의사만 할 수 있는 걸까요? 문신은요? 미국은 타투이스트가 문신 새기기를 합니다. 이 모든 행위를 과연 의사만 독점하는 게 맞는 걸까요? 만약 문신 새기기나 점 빼기를 피부미용 전공자들에게도 연다고 정부가 발표하면 의사 집단은 어찌 행동할까요? 파업한다고 협박할 걸요?
7. ‘변호사 자격증 증원에 따른 변호사 가치의 하락’을 경험했던 이 사회에서, 전공의들은 의사도 변호사 증원으로 인한 전철을 따를까 봐 파업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2020년 때도 그랬습니다.
전공의 착취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1960년대나 70년대, 80년대는 더했으면 더했지, 요즘보다 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이 참았던 것은, ‘이 수련 시간이 끝나면 나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열린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의대 증원으로 이는 분명히 깨질 것입니다. 그러니 젊은 의사들, 즉 전공의들은 기를 쓰고 파업하는 것이지요. 거기에 무슨 거창한 ‘국민 건강 증진’ 같은 명분을 내세우지 마세요. 추해 보입니다.
8. 의사 수 증원과 관계없이, 외과나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그리고 경제적 낙후 지역에 의사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이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 ‘의사 직역-지역 간 수가 조정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의사 수가 늘더라도, 현행 제도 아래서라면 외과나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같은 과에는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 과에 간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자칫 의료 사고로 고통받을 수 있는데 그런 과를 왜 지원하나요? 그저, 감기 환자나 보고, 얼굴에 점이나 빼면서 돈이나 왕창 벌지.
그렇다고, 건강 관련 보험료를 확 높일 수 있나요? 지금도 가혹한 세금처럼 작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건강 관련 보험료를 확 늘리면, 삼성전자 같은 데서는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강화될 수 없죠.
더 큰 문제는 소기업 소상공인의 경우입니다. 안 그래도 경영이 힘든데, 확 높아진 건강 관련 보험료에 국민연금 등을 부담할 수 있을까요? 소기업이든 소상공인이든 정규직으로 고용한 이의 건강 관련 보험료와 국민연금 납부액의 절반을 내야 하는 건 잘 아시죠? 세금을 늘린다는 건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이나 중산층 이상의 건강 관련 보험료 부담액이 세계적으로 볼 때 낮은 수준도 절대로 아니고요.
결국 ‘의사 직역-지역 간 수가 조정’을 최우선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감기로 병의원에 가면 우리가 내는 진찰료(혹은 초진료) 외에 병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으로부터 지급금을 받습니다. 이 지급금은 국민과 기업이 건강관련보험료로 다달이 강제로 낸 돈을 모았다가 지급하는 것이지요.
만약 귀하가 가벼운 감기로 동네 의원을 갔다면 귀하는 총 진료비의 30%만 부담합니다. 나머지 70%는 공단이 지급하는 것이지요. 만약 경증 진료에 공단 지급금이 많이 나가면, 중증 진료에 쓸 돈이 적게 되는 것이지요.
지역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권에서 병의원에 가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골이나 낙도 등에서 병의원을 가는 건 쉽지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의사 연봉 평균이 4억 원이 약간 안 된다는데, 누가 연봉 1억 원쯤 더 준다고 낙후 지역에 가겠습니까? 하다못해 자녀 교육은 어찌 하고요? 어느 부인이 낙도에서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살고 싶겠습니까?
연봉 5000만 원 ~ 연봉 1억 원을 받는 사람에게 연봉 1억 원을 더 준다고 하면 “할렐루야”를 외치겠지만, 연봉 4억 원 정도를 받는 이는 연봉 1억 원을 더 받는 것을 ‘본질적인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연봉 3~4억 원을 더 준다면 모를까.
때문에 외과나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혹은 기피 지역 의원 등에 공단 지급금을 많이 주고, 감기 등 경증 환자를 주로 치료하거나 수도권 지역에 있는 의원에 주는 지급금을 낮춰서, 기피 학과나 기피 지역 문제를 우선 해결하자는 겁니다. 특정 직역이나 지역 간 연봉이 비슷하다면, 누구나 의료 사고 가능성이 적거나 혹은 대도시에서 근무하기를 원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일부에서는, 기피 직역이나 기피 지역의 수가를 우선 올리자고 하는데, 그리되면 기업이나 중산층 이상의 건강 관련 보험료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교사들 담임 수당이 월 20만 원입니다. 월 20만 원 받고 그 힘든 담임을 하려는 이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계약직 교사들이 담임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담임 수당을 월 100만 원쯤으로 올리자고요? 그 돈, 누가 댑니까? 교육비를 더 걷자고요?
그보다는, 담임을 맡지 않은 교사의 월급을 줄여서 담임 수당을 올려야 합니다. 그런 조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담임 교사 수당 인상은 말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내부적인 조정을 먼저 한 뒤 세금을 올리든 해야지, 내부 조정도 않고 무조건 세금만 올리면 뭘 어쩌자는 건가요?
기피 직역과 기피 지역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조정도 없이, 무조건 건강 관련 보험료를 올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봉으로 보는 것입니다.
정규직 봉급쟁이 평균 연봉이 5000만 원이 안 되는 나라에서, 연봉이 4억 원에 가까운 의사들의 연봉을 걱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의사들의 직역 간 지역 간 연봉부터 조정해서, 기피 지역과 기피 직역 의사를 양성해야 합니다.
거친 말로 한다면, 수도권에서 감기 환자 등을 주로 보는 의원급 의사들의 평균 연봉은 1억 5000만 원 정도로 만들고, 외과나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의사들, 그리고 낙후 지역 의사들의 연봉은 5억 원으로 만들도록 제도 개선을 한다면? 예, 기피 직역과 기피 지역 의사 양성 문제는 지금보다는 쉽게 풀릴 겁니다.
우리 솔직합시다. 문제는 돈, 그리고 근무 조건입니다. 지금과 같은 제도 아래서는, 의대생을 아무리 늘려도 수도권에서 점이나 빼고 감기 환자나 보는 의사만 양산할 뿐입니다.
9. 마지막으로.
일부 의사들은 “국민과 언론, 그리고 정부가 의사 집단을 악마로 매도했다. 이에 대해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웃음만 나옵니다. 본인은 2018~2020년 의협에서 홍보 및 공보 이사, 그리고 홍보 및 공보 자문위원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때, 의사 집단의 추악한 민낯을 보았습니다.
국민과 언론, 정부가 의사 집단을 악마화 했다고요? 귀하들이 먼저 국민을 개 돼지로 본 게 아니라?
걸핏하면 ‘국민 민도가 낮다“ ’환자들이 죽어 나가야 의사들 귀중함을 안다‘고 떠들던 사람들이 의사 집단 아닌가요?
MRI 진료비를 보험대상으로 삼겠다는 정책(문재인 정부가 2018년에 추진)에 반대할 수는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 정책에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고요. 하지만, ’베네수엘라처럼 퍼주기로 망해봐야 정신 차린다‘ ’개 돼지 같은 국민들은 싼값이면 무조건 좋아한다‘고 국민과 정부를 먼저 개 돼지 취급하며 비아냥거린 게 의사 집단 아니었나요?
도대체 누가 누구 탓을 하는 건가요? 이해불가입니다.
사과는 의사 집단이 먼저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