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자본주의 시대, 하나의 대안이 된 OTT의 이야기 (4/6)
MUBI의 콘텐츠 전략은 한마디로 “엄선과 확장”으로 요약된다. 큐레이션 기준 측면에서 MUBI는 예술적 성취가 높거나 영화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작품들을 선호하며, 세계 각지의 독립·예술영화, 다큐멘터리, 클래식 걸작을 주로 서비스한다. 할리우드 상업영화나 블록버스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우며, 대신 칸·베를린·베니스 등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나 거장 감독의 작품들, 그리고 실험영화나 컬트영화 등 독특한 개성의 작품들로 라인업을 채워왔다.
MUBI는 “출발점은 데이터가 아니라 위대함이다(Nothing starts with looking at the data; it starts with greatness)”는 철학을 강조하는데, 이는 작품 선정 시 데이터보다 예술적 가치를 우선 고려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완전히 데이터 분석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어서, 내부적으로 회원들의 선호도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별 잠재 인기 작품을 가늠하고 적정 라이선스 가격을 책정하는 등 의사결정에 참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큐레이터들이 어떤 이탈리아 영화를 검토할 때, MUBI는 이미 전 세계 수백만 회원들의 시청 패턴과 관심사를 파악하고 있기에 그 감독의 작품이 어느 지역에서 호응을 얻을지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차카렐 CEO는 “우리는 직감을 무엇보다 중시한다”고 강조하며, 최종 선택은 큐레이터들의 안목과 열정에 따른다고 밝히고 있다.
콘텐츠 수급 방식은 크게 라이선싱과 직접 제작(오리지널)으로 나뉜다. 우선 라이선싱의 경우, MUBI는 매년 세계 주요 영화제에 투자·배급팀을 파견하여 수상작 및 화제작의 스트리밍 권리를 지역별로 구매한다. 초기에는 예산 한계로 극장 개봉이 끝난 이후의 구작 위주로 저렴하게 계약했으나, 최근에는 경쟁력을 갖추어 칸 영화제 화제작을 주요 국가에서 독점 스트리밍하거나, 아예 제작 단계에서 판권을 확보하는 일도 많아졌다.
2022년에는 독일의 유명 예술영화 세일즈사 The Match Factory를 인수하여, 유럽 및 세계 각국 신작들의 판권을 직접 다룰 수 있게 되었다. The Match Factory는 <천국보다 낯선> 등 수많은 예술영화의 국제 세일즈를 담당해 온 회사로, MUBI는 이를 인수함으로써 콘텐츠 파이프라인을 전방위로 확장했다. 또한 2024년에는 벨기에의 유서 깊은 배급사 Cinéart의 지분 과반을 인수하여 베네룩스 지역 극장배급 네트워크까지 편입시켰다.
이러한 인수 전략은 MUBI가 각 지역의 우수한 라이브러리를 수직 통합하고, 우선협상권을 통해 양질의 영화를 선점하는 효과를 낳았다. 라이선싱 면에서 MUBI는 전 세계 판권을 통째로 구매하거나 지역별 독점권을 획득하는 방식을 혼용한다.
글로벌 서비스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전 세계 동시 제공을 추구하지만, 판권 구조상 지역별로 쪼개져 있을 때는 중요 시장 위주로 선별 라이선스를 맺는다. 예를 들어 2019년 영화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경우, 대부분 국가에서는 이미 넷플릭스나 현지 배급사가 권리를 가져갔지만 인도 지역 판권이 남아있자 MUBI가 이를 확보, 인도에서 독점 스트리밍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틈새 지역에 대한 라이선스 투자로 콘텐츠 라인업을 풍성히 하는 한편, 어떤 경우에는 전 세계 모든 권리(all-rights)를 사들여 MUBI 독점 공개하기도 한다. 독점 공개작은 주로 저예산 독립영화나 신인 감독 작품이 많지만, 이를 통해 MUBI는 해당 작품의 실질적 해외 배급사로 기능하며, 극장 개봉과 연계할 경우 배급 수익도 얻는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은 MUBI가 최근 힘을 쏟는 분야다. 2020년대 들어 OTT 경쟁이 심화되면서, MUBI 역시 차별화된 MUBI 오리지널 작품을 통해 회원을 유치하려는 전략을 강화했다. 2019년 칸 영화제 출품작인 다니엘 레소비츠의 <진실과 거짓사이 Port Authority>에 제작 투자한 것을 시작으로, 무니아 메부르의 <파피차 Papicha> 등의 작품에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고, 2021년에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란의 거장 자파르 파나히의 <심플 액시던트 It Was Just an Accident>의 배급권을 확보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2년 이후로는 자체 기획 영화에도 나서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캘리 라카이트가 연출한 스릴러 <The Mastermind>에 약 2천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단독 제작에 나섰다. 이는 MUBI 사상 최대 규모의 제작 프로젝트로 2025년 개봉이 목표다. 오리지널 제작 편수도 늘어나는 추세인데, 기사에 따르면 MUBI는 향후 매년 최대 20편까지 자체 극장 개봉작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연간 몇 편에 불과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공격적인 목표로, MUBI가 배급사에서 스튜디오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023년부터 MUBI는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직접 투자·제작한 영화들을 4편이나 진출시키며, 독립 스튜디오 A24나 Neon에 필적하는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는 평을 들었다.
지역별 콘텐츠 소싱 전략을 보면, MUBI는 진출한 국가의 영화에 관심을 기울인다. 터키, 브라질 등에서는 저예산 신인감독 작품을 발굴해 국제 배급하는 등의 역수출 역할도 수행한다. 이런 지역 전략은 현지 콘텐츠와 글로벌 콘텐츠를 교차 공급함으로써, MUBI를 통해 한 국가의 이용자가 다른 나라 영화를 접하고 동시에 자국 영화가 타국에 알려지는 문화 교류의 허브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MUBI는 콘텐츠 포맷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확장을 모색 중이다. 2022년 덴마크의 거장 라스 폰 트리에의 TV시리즈 <킹덤> 신작을 독점 방영하며 처음으로 시리즈물에 진출했고, 이후에도 다큐멘터리 연작 등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다만 회사 측은 “MUBI는 영화에 특화된 브랜드”임을 강조하며, 영화 중심 정체성은 유지할 것임을 여러 번 표명했다. 이는 이용자층도 동의하는 부분으로, MUBI의 충성 고객들은 플랫폼이 영화 예술에 집중하는 전문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정리하면 MUBI의 콘텐츠 전략은 우수한 작품을 엄선하여 다각도(라이선스, 배급, 제작)로 확보하고, 이를 글로벌-로컬 교차배급을 통해 최대한 많은 문화권의 관객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MUBI는 단순 스트리밍 서비스를 넘어 글로벌 예술영화 유통망이자 제작 스튜디오로 거듭나고 있다. 동시에 품질 제일주의 큐레이션 원칙을 지키고 있어, 상업성과 예술성의 균형을 찾는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MUBI의 주 사용자층은 자타가 공인하는 시네필 집단이다. 연령대로 보면 20~40대의 젊은 성인 비중이 높고, 학력 수준이나 문화적 자본이 비교적 높은 계층이 주류를 이룬다. 장르 영화 팬덤이나 마니아 층뿐 아니라, 영화과 학생이나 영화산업 종사자, 예술계 인사 등 영화를 전문적으로 향유하는 그룹이 즐겨 찾는 플랫폼이다. 일반 OTT와 달리 가족 단위 시청보다는 개인적·능동적 감상 성향이 강하며, 이용자 상당수가 Letterboxd 등 영화 평가 소셜 미디어나 온라인 영화동호회 활동 경력이 있는 활동적 팬들이다.
MUBI는 이러한 이용자들의 커뮤니티 형성을 적극 장려한다. 앞서 언급한 Notebook 기사 댓글을 비롯해, 플랫폼 내 이용자 평가 시스템이 존재하여 회원들이 본 영화에 별점과 리뷰를 남길 수 있다. MUBI 홈페이지나 앱 메인에는 다른 회원들의 감상평이 노출되고, 작품별 토론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한 회원 프로필을 통해 다른 이용자의 시청 목록과 선호 영화를 볼 수 있고, 서로 팔로우하여 업데이트를 받아볼 수도 있다. 비록 페이스북처럼 친교를 맺는 소셜 네트워크는 아니지만, “영화를 매개로 한 느슨한 연결”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MUBI는 종종 이벤트성으로 회원 큐레이션 기획전을 열기도 하는데, 설문조사 등을 통해 회원들이 뽑은 영화를 특별 상영하거나, 회원들이 자체 제작한 영상 에세이를 소개하는 등 사용자 참여형 콘텐츠를 선보여 커뮤니티 활성화를 도모한다. 또한 MUBI는 오프라인 커뮤니티 활동도 지원한다. 각종 영화제나 시네마테크 행사에서 MUBI 회원들을 위한 모임이나 상영회를 개최하고, 감독과의 대화를 MUBI 후원으로 열기도 한다. 2023년에 시작된 MUBI Fest는 MUBI가 자체 기획한 세계 순회 영화제로서, 칠레·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주요 도시에서 시작해 유럽, 북미로 확대되었다.
이 행사는 MUBI가 큐레이션한 신작 영화들을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하고 영화인과 관객이 만나는 자리로, MUBI 회원들에게 특별 초대권을 제공하여 회원 혜택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온라인 플랫폼의 충성 고객들을 오프라인 영화문화 공간으로 끌어내어 결속력을 높이고, 동시에 신규 이용자 유입을 홍보하는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타깃층 확대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예술영화에 문외한인 대중에게도 MUBI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종종 유명 인사를 활용한 큐레이션을 선보인다. 예를 들어 유명 배우 틸다 스윈튼이 추천하는 작품전을 편성하거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고른 클래식 영화 리스트를 공개하는 식이다. 또 힙합뮤지션, 패션디자이너 등 영화 밖 문화계 셀렙들을 게스트 큐레이터로 초빙하여 젊은 세대의 흥미를 유발한다. 인도에서는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MUBI 홍보대사로 참여하여 자신의 추천 영화를 소개하는 캠페인을 벌여, 플랫폼 인지도를 높였다. 이렇듯 대중문화와 교차하는 마케팅을 통해 MUBI는 전통 예술영화 마니아뿐 아니라 새로운 잠재 관객층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
MUBI 이용자 커뮤니티의 또 다른 특징은 토론 문화의 성숙도다. Notebook의 진지한 비평 글에 대한 댓글 토론이나, 작품 페이지에서 벌어지는 이용자 간 해석 교류는 대체로 수준 높은 담론을 형성한다. 스포일러 방지 등 기본 매너가 잘 지켜지며, 건설적인 비평적 대화가 이루어진다. 이는 MUBI가 지향하는 “품격 있는 영화 커뮤니티” 이미지와 부합하며, 이용자들도 그러한 문화에 자부심을 갖는다.
일부 이용자는 MUBI를 “온라인 예술영화 커뮤니티”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발적 커뮤니티 강화는 별도의 비용 없이 플랫폼 충성도를 높이는 강력한 무기다. 실제로 많은 이용자들이 “MUBI를 구독하면 전 세계에 영화 친구가 생긴 것 같다”고 평가하며, 구독을 유지하는 주요 이유로 커뮤니티 분위기를 들고 있다. 이는 거대 플랫폼들의 익명화되고 파편화된 시청 경험과 대조적이며, MUBI의 비물질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MUBI의 사용자 기반 전략은 “작지만 끈끈한” 핵심 팬덤을 중심으로, 이를 점차 외연 확장시키되 커뮤니티 정체성을 희석하지 않도록 조율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MUBI는 단순한 OTT를 넘어, 전 세계 영화 애호가들의 문화 공동체로 기능하고 있다.
원승환
서울 홍대입구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영화시장과 독립․예술영화, 글로벌 영화시장에 대해 질문하고 글을 씁니다. 일반적인 관점과 다른 관점의 글을 쓰고자 합니다. 과거 글들은 블로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