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메이플 로드(Maple Road)

단풍로드(Maple Road)

by 코리디언


3박 4일 의 일정으로 토론토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을 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밀 추수를 마친 넓은 평원이 나오는 게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다. 고속도로 사이사이에 마을들이 보이고, 사과밭에서는 사과를 따러 오라는 광고 판과 할로윈에 쓰일 주황빛 호박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올해는 단풍이 늦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오색의 빛이 찬란하다.

10월 중순의 캐나다는 단풍국이라는 이름만큼 아름다운 단풍으로 수를 놓는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이런 단풍을 보러 따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는데, 이번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기회에 단풍구경도 할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은 셈이다.


캐나다에서는 가을(9~10월)에 단풍 명소를 따라가는 여행 코스를 흔히 “Maple Road” “Maple Route”라고 부른다.

특히 온타리오주(Ontario)와 퀘벡주(Quebec)를 연결하는 구간은 캐나다 최고의 단풍 여행 루트로 유명하다. 이 단풍로드 (Ontario → Quebec)는 거리가 약 600km 되는데, 토론토 → 킹스턴 → 오타와 → 몬트리올 루트이다.

개인 차로 이동할 경우 소요시간은 대략 약 6~7시간(운전 기준)이다.

출발점인 토론토(Toronto)는 대도시와 단풍이 어우러진 도시형 가을 풍경을 선사한다.

온타리오에서 가장 유명한 단풍 명소는 호수와 산, 숲이 어우러진 알곤퀸 주립공원(Algonquin Park)이다. Hwy 60(60번 하이웨이)을 따라 공원 안을 드라이브하면 “단풍로드”라는 이름에 걸맞은 풍경이 아름답다.

신들의 정원이라 불리는 1000 섬이 있는 킹스턴(Kingston)은 역사적인 도시와 온타리오호수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Ottawa)에 있는 국회의사당(Parliament Hill)과 리도운하(Rideau Canal) 주변의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몬트리올(Montréal) 은 프렌치 감성의 도시 풍경 속 단풍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도시 전체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어딜 가든 ‘아! 가을이구나’ 느낄 수 있다.

가을이면, 캐나다 다른 주(Province)나 심지어 미국에서 살고 있는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자주 온다. 단풍 구경을 오고 싶다고…

어제도 지인의 딸과 사위도 퀘벡의 단풍을 보러 우리를 찾아왔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최고의 단풍은 몬트리올 북쪽에 위치한 로렌시안 루트 (Laurentian Mountains, Quebec)이다.


하이라이트 지역으로는 한국의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퀘벡시티(Québec City), 생소버( Saint-Sauveur), 몽 트랑블랑(Mont-Tremblant ) 지역이다. 이 지역은 산악지대로 주변 전체가 붉은 단풍으로 물드는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몇 년 전에 딸아이가 의대 인턴시절, 매일 반복되는 삶에 지쳐있는 것 같아 자연 속에서 잠시라도 쉼을 누리게 하고 싶어 당직을 막 끝내고 돌아온 아이를 뒷 좌석에 태워서 운전해 갔던 곳이 퀘벡시티 입구에 위치한 오를레앙(Île d'Orléans)이라는 섬이었다.

이곳에서 우리 가족은 인생단풍을 보게 되었다.

프렌치풍의 가정집에서 프렌치식 아침을 먹으며 지낸 1박 2일의 시간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단풍 관광 명소인 만큼 여러 가지 액티비를 할 수 있는데 차로 단풍이 든 산길을 드라이브하거나, 케이블카, 하이킹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차로 드라이브를 하다가 풍경이 좋은 곳에서는 잠시 멈추어 걷기도 하고, 높은 망대에 올라 사진 찍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왔던 것 같다.



여름 내내 나무의 잎은 풍부한 엽록소(Chlorophyll) 덕분에 짙은 초록빛으로 반짝인다.

그러나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 기온이 낮아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나무는 더 이상 광합성을 이어가지 않는다.

엽록소는 서서히 분해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그동안 숨죽여 있던 색소들이 하나둘 얼굴을 내민다.

노랑, 주황, 붉음, 자줏빛—

자연이 마지막 힘을 다해 그려내는 계절의 수채화다.

나무는 잎 속의 양분을 줄기로 되돌려 보내며

긴 겨울을 견디기 위한 조용한 준비를 시작한다.

그리하여 색이 변한 잎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결국 땅으로 내려앉아 낙엽이 된다.

이것이 단풍의 생물학적 이야기다.


하지만 단풍은,

이런 과학의 언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스치는 바람 속에서, 사각거리는 낙엽길 위에서—

가을의 단풍은 한 해의 끝자락에 스며든 인생의 빛깔처럼 느껴진다.

다시 오지 않을 2025년의 가을,

그 짧은 순간의 낭만에 마음을 맡기고,

노랗게, 붉게 물든 세상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