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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갱 Jan 14. 2022

내 생에 한 번뿐인 '결혼 준비'

나는 힘들고 귀찮은 걸 좋아합니다.


작가 소개란에도 써두었듯 나는 힘들고 귀찮은 걸 꽤나 즐기며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하다 결혼 준비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대부분의 내 주변 지인들은 자신의 결혼식 준비를 상당히 귀찮아했다. 어차피 부모님 잔치, 천편일률적인 행사,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분 등등 저마다의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코 그 이유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며 극복해보고자 하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그들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계기로 내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으니까. 결국에 내 손이 닿아야 하는 '나의 일'을 귀찮아하는 것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귀찮고 힘들어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이면 상관이 없겠지만, 보통은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귀찮음을 애초에 내 마음에 심어두지 않는다.

나한테 있어서 허용되는 귀찮음은 '아 나 오늘 귀찮아서 머리 안 감았어!' 이 정도뿐이다. 어쩌면 나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요란스러운 결혼 준비의 여정은 인생의 한 번뿐인 결혼식,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는 말은 잘들 하면서 그 과정을 왜 귀찮아하는 거지? 에서 시작했고 투쟁 아닌 투쟁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우선 남편이 군 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소통이 제한적이라 내가 더 알아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웨딩플래너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 도움을 받는 순간 남편과의 소통보다 플래너에게 의지할 것 같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기보다는 그들이 추려준 것 중에 예산을 맞춰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준비 기간을 1년 반으로 넉넉히 잡고 차근차근 스스로 플래너를 자처해 기획을 해나갔다. 우리의 기준은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감정이 상하고 싶지 않았고, 취향이 잘 맞는 업체를 찾길 원했으며 너무 과도하게 바빠서 대표가 아닌 다른 직원들이 일을 더 많이 하는 회사는 제외하고자 했다.


나 또한 일반적인 예식장에서 하는 찍어내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합리적인 가격 선에서 한옥 예식, 야외예식을 알아보던 중에 양재 시민의 숲에서 하는 결혼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청 후 당첨이 되어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 날짜를 선택할 수 있었다. 작은 결혼식을 추구하는 곳이어서 하객 수도 정해져 있고 하루에 한 팀만 예식을 진행하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하객들과 충분히 인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도 작은 추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또 음향업체 외에는 꼭 해야 하는 업체가 정해져 있지 않았고 결혼식의 전반적인 가이드 정도만 잡아주시는 디렉팅 업체가 있어서 식 당일에 무리 없이 진행을 도와주신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식의 큰 틀을 정한 뒤, 사진작가님, 드레스샵, 테일러샵, 한복집, 메이크업샵을 개별적으로 알아보고 이렇게 개별 선택할 경우 예산이 자연스레 스드메 패키지보다 비싸질 것을 대비해서 투자할 것과 포기할 것을 명확히 나눴다.

폐백은 하지 않을 것, 한복 사진은 찍지 않을 것, 양가 어머니의 한복은 빌릴 것, 스튜디오 촬영은 흰 배경에서 심플하게 하고 원본 및 수정본은 받되 앨범은 만들지 않을 것, 본식 사진과 꽃장식에 투자할 것, 예복은 미국에 가져갈 수 있도록 구매할 것 등등 큰 것에서부터 작은 것까지 끊임없이 생각했다.

물론 나도 여자이기에 청담동의 드레스 샵을 안 가본 것은 아니다. 돈을 내고 드레스를 세벌을 입어보는 동안의 그 불편함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플래너님 성함이? 플래너가 없으시다고요? 그럼 촬영이랑 본식은 어디서 하시는대요? 저희랑 연계된 곳이 아니면 좀...' 대략적인 드레스 대여 가격도 알려주지 않았고 상담 자체도 불친절했다. 그 말투는 마치 유명 웨딩업체에서 나온 플래너랑 얘기하고 싶지 너랑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럴 거면 애초에 신부 이름으로 한 예약은 왜 받았는지 의문이었다.

그들의 태도가 우습기까지 했지만, 어차피 내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미련 없이 나왔고 야외예식에 어울리면서도 미국에 가져가서 결혼기념일마다 입을 수 있는 심플한 드레스를 판매하는 곳을 찾았다.

'내가 드레스를 구매한다니 맙소사'

드레스를 입어보고 가봉을 하고 다시 찾기까지 오고 가는 수고로움을 제외하고는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가봉 비용까지 총 70만 원 정도(구두와 코르사주 미포함)의 금액이었는데, 알아본 바로는 스튜디오 촬영과 본식 드레스를 대여할 경우 더한 금액도 나오기 때문에 저 금액이 전혀 아깝지 않았고, 실제로 매년 남편과 촬영을 한다. 

'보통의 드레스는 두세 번 입으면 유행이 지나 버려진다던데, 나중에 딸이 있다면 나도 물려줄 수 있을까?'


매년 여름 이렇게 셀프 촬영을 하며 결혼기념일을 보낸다.


다시금 나는 출퇴근 길이면 항상 결혼 준비에 관련된 글을 보고 사진들을 보며 내가 꿈꾸는 결혼식을 상상했고, 수많은 결혼사진들을 고르고 골라 사진작가님을 찾아냈다. 대표님이 촬영부터 수정까지 손수 하고 계셨고 개인 블로그에 쓰신 글을 꼼꼼히 읽어보니 자신의 일을 진짜로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 와닿아 스튜디오 촬영과 본식 촬영 모두 같은 분에게 부탁드렸다. 아직도 종종 연락이 닿여서 나중에 가족사진도 찍어볼 생각이다.

이런 패턴으로 평일을 보내고 주말에 남편의 군대 면회를 가면, 9시간가량 대화를 하며 미국 이민 준비와 결혼 준비를 병행했다. 결혼식 날이 다가오면서 날씨가 너무 더워지자 하객들을 위한 식순지 부채도 손수 만들었고, 결혼식 중간에 할 게임도 준비했다. 꽃장식에 투자한 만큼 답례하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만들고, 커피 원두도 따로 준비해 더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도 생각해냈다.

실제 사용했던 식순부채

우리가 식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큐시트를 만들고, 게임 사회를 보고, 식 내내 플레이될 음악을 선택하고 꽃장식에 관여할 수 있었던 정말이지 '우리만의 결혼식'이었고. 그 누구보다 주인공인 내가 가장 힘들 수 있어서 기뻤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건만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100% 만족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대로 감정이 상한일은 없었고 하객들도 가족들도 재밌게 즐겼던 결혼식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다시 하라고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물론 힘들었지만 내 결혼식이기에 준비과정 또한 즐거웠다고 힘들었기에 더욱 즐거웠노라고.


결혼식을 끝내고 '너니까 한 거지'라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나는 정말이지 그놈의 귀차니즘만 없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귀찮아서, 힘들어서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반적인 결혼식에 대해 불평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불만이라면 투쟁해 볼 것을 추천한다! 안될 것 같은 일이 결국엔 가능해지고 못할 것 같은 일을 내가 하게 되는 그 성취감은 대단하니까. 누군가는 나를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치부할 수도, 시간이 남아돌아 저러지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소중하고 의미 있다 생각한다.

'힘들어? 귀찮아? 어차피 네 일이야. 즐겁게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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