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222' [.]존재에 관한 거창한 망상
전생1
셀 수 없는 방들로 가득 찬 대저택에서 매일 다른 방(제각각의 개성이 있는 방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을 전전하며 잠들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대저택(돈) 혹은 고성(돈)과 셀 수 없는 방만큼의 꿈들이 필요하겠지. 낯선 곳을 찾아 움직이는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로부터 시작한 거창한 망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내 몸속에는 유목민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 있다(고 믿는다). 한 곳에 머무르기를 지겨워하고 방황하는 것으로 활력이 생기며 어렵사리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는 것으로 나는 생동한다. 명리학에서는 이것을 역마살이라 부르고, 우리 엄마는 이런 나를 장돌뱅이/하숙인이라 명명한다.
최초의 여행은 무에서 유로의 이동이었다. 그리고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던 농담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유년. 그때에도 우리 집은 이사를 자주 다녔다. 유목의 목적은 목축을 위해서다. 유목민은 가축을 위한 물과 풀을 찾아 생애 전반을 이동한다. 반면 유목민의 피를 이어받은 지금의 나는 무엇을 위해 떠도는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부터 시작한 숱한 고민은 '유목민Nomad'이라는 단어에 가닿았다. 같은 음식을 연달아 먹지 않는 입이 짧은 습성은 곧 지겨움에 대한 반발일 것이고, 어떤 풍경과 상황의 반복을 거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싫은 것을 되풀이하다가는 제정신으로 살지 못하니까. 나는 미치지 않기 위해No-mad 유랑한다.
그런데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이 싫은 내게 허락된 몇 가지의 예외들이 있다. 그중에는 술(과음시 얼마간은 거부)과 면 여행 같은 것들이 있다. 면, 그중에서도 냉면.
냉면 사진을 못 찾아서 막국수 사진으로 대체사실 나는 냉면은 삼시 세끼도 가능한 희한한 인간이다. 그도 그럴 것이 냉면은 늘 맛있고 짜릿하다(구운 고기와 함께라면 그 맛은 제곱 배로 향상된다). 망상은 이런 예외에까지 미치는데, 냉면의 주원료인 메밀은 기온이 서늘한 강원도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강원도는 과거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그들은 기백이 늠름해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쐈다고 한다. 땅이 척박해 농사는 생업이 되지 못했고(그래도 메밀은 잘 자라니까, 냉면이란 것을 만들어 먹지 않았을까) 이에 근처 지역들을 수탈해…. 그렇다. 내 전생은 고구려의 유목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냉면에 환장하는 것이다! 물론 냉면이 으뜸이긴 하지만, 비슷한 막국수나 밀면도 좋다.
서른이 되기까지 걸작은 쓰지 못했으니, 요절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고 이토록 면을 찬미하는 나는 아무래도 장수할 팔자인 것 같다. 누구나 죽기 전까지 이뤄야 할 목표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싶은데, 그중에는 평양 옥류관의 랭면을 맛보는 것이 하나 있다. 언젠간 될 거라던 통일은 이제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국제평화를 지지한다.
존재에 관한 거창한 망상의 끝은 내가 <전생에 내가 고구려 유목민 냉면꾼이었던 건에 대하여>였으며, 이 글을 쓰기 위해 카테고리도 '점·선·면'으로 나눴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에 부친다. 고깃집에 후식으로 냉면이 없으면 서운한 나는 오늘도 냉면을 꿈꾼다. 아, 오늘은 '2'가 많은 날이니 냉면을 먹어야겠다(무지성 의미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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