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04' [/]전라남도

장흥에서 목포로

by DHeath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지면 떠났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았다고 말했던 곳이라면, 서랍에 잘 개켜놓았다가 그 사람이 떠오를 때 기억을 꺼내 그리로 향했다. 인터넷이나 텔레비전에서 소개되는 곳들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선택했다. 그리고 이따금 한 가지에 홀려 무작정 출발하기도 했다.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지만, 이번 여행의 기폭제는 다름 아닌 음식이었다. 장흥삼합과 꽃게살.


사실 소고기와 표고버섯, 키조개의 관자로 궁합을 맞춘 장흥삼합의 존재는 이미 알고 있던 터라, 재료를 준비해 집에서 직접 해 먹어 보기도 했었다. 잘 구워서 먹었지만, 그저 '맛있는 재료를 한 입에 먹는다'는 감흥 외엔 특별할 것이 없어 다소 실망을 했지만. 보통의 나였다면, 실패한 경험의 미련은 진즉 내다 버렸겠지만 최근 재시도를 하면서 감동을 받은 경험이 하나둘씩 생기면서 이번에도 다시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현지에서, 진짜를!

진짜 장흥삼합(만나 숯불갈비)과 소머리국밥(한라네 소머리국밥)

금요일 오후에 출발하여 저녁때에 도착한 장흥에서 만난 진짜 장흥삼합에 나는 와! 를 연발했다. 관자와 표고버섯은 육수(아마 조개 육수, 청양초와 마늘,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기름기도 함께 섞이면서 완성된다)에 담가 익혔고, 치맛살은 직화에 굽는다.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이 세 가지 재료를 후추가 들어간 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완성된다. 와! 내가 만들어먹었던 것이 가짜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반성했다. [진짜]는 달랐다. 게다가 같이 나오는 선지국까지…. 잎새주가 이파리 하나라면 나무 하나도 거뜬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후식으로 무려 냉면이라는 메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마치는 순간까지 그 맛을 잊고 싶지 않아 냉면 주문을 관뒀다.


[진짜]와 함께 멋진 밤을 보내곤 다음날 아침, 장흥토요시장에 나가 소머리국밥으로 해장까지 이뤄냈다. 이 경험만으로도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지.

다소 방치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서 조용하고 고즈넉한 보림사에 들러 산책했다. 대웅전 뒤편으로 비자나무 숲이 있었는데, 산책로까지 안내가 잘 되어있지 않아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이런 투박함마저 이 절이 가진 매력이라 생각하며 비자나무 숲을 걸었다. 제주도의 비자림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목포

그리고 도착한 목포. 배 타고 제주도 갈 때 한 번, 고모부를 따라 한 번, 친구와 낙지볶음 먹으러 한 번. 총 세 번 정도 스쳐 지나간 목포에 본격적으로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낯설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푸근하고 정감이 가는 동네였다. 내게는 아주 큰 매력이 되는 항구도시라는 지리적 특징도 있겠지만, 거리가 풍기는 분위기와 바이브가 모두 내 취향이었다. 나지막한 건물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아파트 발코니의 프레임까지 멋져 보였으니 말이다. 심지어 가을이라는 계절과 해질녘에 이르는 오후라는 시간이 있는데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었을까. 오래 걷고, 오래 보면서 거리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꽃게살. 양념장에 생꽃게살을 발라 넣어 밥과 비벼먹는 음식이었다. 게장과는 조금씩 친해지고 있는 터여서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그 걱정은 이내 불필요한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꽃게살을 비빈 밥에 김까지 더해지니 그것은 가히 밥도둑을 넘어 밥괴도루팡이 된 것이다. 다만 너무나도 부드러운 나머지 씹히는 뭔가가 더 있다면 참 좋겠다는 아쉬움이 식당을 나설 때쯤 들었다.


어쨌거나, 먹기 위해 떠난 여행길이 완벽하게 끝났다. 가을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고, 여행은 음식으로 완성된다. 제때, 제자리에서 빛을 내는 것들이 있다. 음식은 전라도가 최고인 것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