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책임감은 약한 인간을 만든다
결정장애 혹은 의존성 성격장애
혼자서는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옆에 의지할만한 누군가가 있어야 하며 충고나 확신 없이는 일상적인 판단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이들은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까지 자신보다는 남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긴다. 혼자서는 제대로 결정할 수도, 살아갈 수도 없다고 믿는다.
이러한 성향이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흔히들 결정장애라고 부르고 웃으며 넘어갈 것이다. 나아가 삶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인생에 대한 무의미와 허무감에 빠질 것이다. 이를 넘어 도와줄 누군가가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면 정신과에서는 의존성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내린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스스로 결정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
자기 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지나치게 과보호하는 환경에서 자랐을 가능성이 높은데 대부분의 결정을 부모가 대신 내려왔고 자신은 그 결정을 따랐을 뿐이다. 반대로 사사건건 비난받는 환경에서 자라나는 경우도 있다. 무슨 선택을 해도 비난을 받으니 나는 위축되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부모가 점유하여 그들의 입맛대로 선택을 내린다. 무엇이 되었건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은 박탈당하고,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희미하게 만든다. 결국 나는 내 선택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이처럼 아이의 양육에서 과보호와 과비난은 결과적으로 동의어가 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본 많은 사람들은 어떤 것을 선호하고, 무엇에 자신 있고, 가치 있게 생각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어떠한 선택을 할 때는 반드시 나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하는데 자기 자신을 모르니 선택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삶이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을 때 삶이 어려운 것 또한 당연했다. 그래서 의지하는 다른 사람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고 따랐다.
강한 책임감은 약한 인간을 만든다
과도하게 자책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책임감의 무게여 짓눌려 앞으로 한 발 내딛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예컨대 내가 만난 어떤 사람은 친구들과 간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시킬지 짬뽕을 시킬지조차 선택하기 힘들어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따라 메뉴를 선택했다가 맛이 없다고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이들의 어린 시절은 권위적이고 완벽주의적인 환경에 놓여있었다. 조금이라도 올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크게 꾸짖던 부모의 목소리가 내면에 자리 잡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부모 대신 스스로가 자신의 선택 하나하나를 평가하고 나무랐다.
이들은 매사에 스스로를 질책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상황도, 타인도 아닌 온전히 내가 지는 것이며, 그 책임은 내 삶 전체를 무너뜨릴 정도로 거대하다고 느낀다. 무거운 책임감은 홀로 짊어지기에 버겁고 고통스럽기에 책임감을 분산해줄 누군가가 필요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요한 선택을 할 때 타인의 조언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아예 결정을 맡겨버리게 된다.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내 책임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토록 강한 책임감은 역설적으로 사소한 것 하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유약한 인간을 초래한다.
모든 결정에는 내가 포함되어 있다.
선택이 곤란할 때 우리는 선택지를 더 꼼꼼히 비교하려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주어진 선택지 중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기 위한 실용적인 스킬들을 적용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선택하는 방법에 집중하다 보면 선택을 내리는 나라는 존재를 잊을 때가 있다. 'A와 B 중 무엇을 선택할까?'라는 문장에는 선택의 주체인 나, 말하자면 'C'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니 선택이 어려워 곤란을 겪어왔다면 A와 B를 비교하는 것은 일단 멈추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자.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지 않는가? 혹은 자신을 질책하며 과도한 책임을 지려는 것은 아닌가? 모든 결정하는 행위에는 내가 포함되어있고, 어쩌면 해답은 선택지가 아니라 선택하는 나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