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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과 사회

by 마이분더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영혼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 이사 가신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얼마전 둘째가 태어나 집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웃음끼가신 수척한 얼굴로 유모차에는 둘째가, 밖에는 유치원에서 하원하는 첫째가 기다린다고 했다.수척한 얼굴은 나도 마찬가지 였다. 동네에는나와 비슷한 얼굴이 많다. 대게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수척해질 수 밖에 없는 일과가 무한대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아이를 양육하고 있는 엄마들이 많은 동네에 안타깝게도 지역명을언급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십년넘게 이곳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앞으로 십년 더, 아니 평생살고 싶을만큼 살기 좋은곳인데 어쩌다 그런 이미지가 되버린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에 나름에 연유를 해명해보려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고단하다. 특히 말이 안통하는 학령기 이전의 아이를 돌보는 일은충만한 기쁨 만큼이나 고달프고, 체력은 갈수록 저질이 되어간다. 게다가 부모 역할을 처음 경험하는 부부 사이는 서로 처음보는 사람처럼 돌변하여 날이 서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들도 고양이 눈을 뜨고 신경을 곤두 세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때문에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많은 동네 특성상 확률적으로 예민한 시기에 놓여있는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어 오해가 쌓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올바른 사회는 기분이 만들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의미에서 우리는 기분이 좋아지는 일들에 무조건 진심이어야만 한다.


나 역시 양육자이고 그 중에서도 화가 아주 많은 성격 파탄자에 가깝기 때문에 올바른 사회를 위해서는 온 힘을 다해 나를 기분 좋은 곳으로 데려다 놓아야 한다.다행히 나의 오랜 습관, '기록'이 언제든 기분을 정돈시켜 주지만 기질적으로 작은 행복보다 작은 불행에 크게 반응하는 고질병은 일상을 자주 지치게 만든다.


그런데 어느날 김신지 작가님을 알게 되었고 나는 좀 더 행복해졌다.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였는데 그후로 하루의작은 행복을 모으고 기록하는 리추얼 모임을 함께하게되었다. 그리고 <제철행복>을 출간 하신 이후부터는 여러차례 작가님의 북토크에 참석하게 되면서 작은 행복을 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계절을 깊게 누리고, 매일 작은 기쁨이나 감사를 찾아내는 초능력이 생겨나기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을에는 계수나무 잎에서 초콜릿 향기를 맡고, 제 각기 다른 모양의 도토리를아이와 함께 수집한다. 스스로 행복을 발견하는 기쁨을 알게된 것이다.


최근에도 N번째 <제철행복> 북토크에 다녀왔는데 작가님이 여행지에서 예민해지지 않고 행복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는 지금 답사 중' 이라는 마인드가필요하다고 했다. 초행길은 헤매기 쉽고 실수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괜히 예민해져서 여행의 기분을 망치게 될 때가 많다고. 그 때마다 '나는 지금 답사 중' 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지금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기게 된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답사라는 것은 모름지기 처음 도착한현장을 직접 보고 느끼며 다음을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니까 오늘의 경험을 잘 기록해 두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언제가 또 다시 그곳에 도착할 내가 처음보다 완벽하게 누릴 행복을 상상한다면 지금의 여행을 좀 더 알차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인생을 여행처럼!’ 산다는 것은 ‘오늘도 답사 중!’ 이라고 되내이는 마음가짐 같다. 모든것은 연습일 뿐, 오늘도 나는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답사‘ 중이다.








북토크 메모장
25.09.27, <제철행복> 북토크, 김신지 작가님


- 첫 여행지는 ‘답사’와 같다.

- 24절기를 누리는 것은 일년에 스물네 번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 친구 혹은 가족과 제철마다 고정적으로 할 수 있는 미션을 약속해보자.

- 계절마다 가까운 곳에서 ’나의 나무‘를 정해 매일 사진을 찍고 변화를 관찰해보자.

- 전국의 계절 스팟을 수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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