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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 체력이면 뭐 어때

by 마이분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묻는다. “체력이 원래 그렇게 좋아요?” 사십 평생 저질 체력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정말이지 생소하고 민망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오늘도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연신 “피곤해! 피곤해! 피곤해!”를 외치며 대자로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겨우 신발은 신고 나와 받은 질문이었다.


실제로 좋았으면 좋겠는 그 체력을 위해 나름 노력도 했었다. 비타민을 마법의 가루처럼 삼키며 헬스에 도전했는데 운동 후 돌려받은 건 근육통과 좀 더 강해진 접착력으로 180도로 땅에 붙어버린 육신이었다. 슬프게도 나에게 주어진 체력이란 최소한의 움직임 안에서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진짜 즐거운 시간에만 쏟아야 하는 500ml 작은 페트병에 담긴 생수 같은 것이었다.

고작 그런 체력을 가진 나에게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사각 프레임 속에 등장하는 활기찬 모습 때문이었다.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인스타그램 속의 나는 언제나 북토크 현장이었다. 오늘 체력 좋다는 민망한 안부인사를 건네받은 곳도 역시나 북토크 자리였다. 더욱이 그 지인에게 나는 지난주에 다녀온 또 다른 북토크 후기를 건네고 있었다. 그야말로 나는 북토크 덕후였다.


지인에게 건넨 이야기는 얼마 전 열린 오은 시인님의 <뭐 어때> 북토크였다. 사실 오은 시인님을 처음 만난 건 2025년 11월, 북촌에 있는 <희녹>에서였다. 편백수 에디켓 제품을 판매하는 <희녹>과 리추얼 프로그램 <밑미>에서 일시적으로 진행한 아침 기록 모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시인’이라는 명사 앞에 왠지 모를 숙연함과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오은 시인님을 뵙자마자 나의 선입견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2017년 11월 23일 <책읽아웃>에서 오은 시인님도 말씀하신 것처럼 모름지기 시인이란 뭔가 시크하고 다가가기 곤란한 폐병환자일 것만 같은 그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것이 있는데 오은 시인님은 그런 이미지와 정확히 오백프로 반대였다. 말씀하는 것마다 너무 웃겨서 배꼽을 부여잡다가 잠시 딴생각을 할라치면, 갑자기 귀를 쫑긋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을 쏟아내 정신없이 펜과 노트를 붙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 <뭐 어때> 북토 크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기록한 노트의 흔들리는 필체만 봐도 내가 그날 얼마나 웃었는지 알 수 있었다. 유독 진해진 검은색 마침표의 필압은 웃음을 참느라 정신 수양이 필요했던 내 노력의 흔적이다. 그렇게 겨우 붙잡아 둔 소중한 기록들은 이런 것이다.



- ‘그냥’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을 대체할 만한 가장 적합하고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려고 늘 애쓰며 살아간다.

- 글쓰기를 할 때 첫 문장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땐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를 써보라.

- 글쓰기는 원래 어려운 것이라서 헤매고 또 헤매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헤매는 과정 때문에 열심히 살게 되고, 대충 살 수 없게 된다.

- 고치고 싶은 말버릇이 있는데 서두에 자꾸만 ‘재밌는 게’라고 말하게 되어 고민이다.

- 타인의 발자국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 글을 다 쓰고 난 뒤에 마침표보다는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르는 글들을 좋아한다.

- 기록이 기억이 메운다.

- 문학이란 같은 것을 다르게 대답하는 것이다.

- 시인님이 기억하는 방식은 글로 기록해 두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감정들의 이름을 찾고 쓰기를 반복한다.

- 새로운 단어

•물덤벙술덤벙 : 오지랖과 비슷한 뜻

•공비인비 : 상대방의 상태에 따라 적절히 공략을 세우라는 것



기록들을 옮겨 적다 보니 나도 고치고 싶은 말버릇이 떠올랐다. 아이와 남편이 무슨 말만 하면 퉁명스러운 말투로 당연하지!라고 말하며 속으로는 늘 ’ 당연한 걸왜 물어 ‘라고 짜증 섞인 복화술을 한다는 것이다. 실수를 하고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한번 더 확인하려는 남편의 마음을 알지만 말버릇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저 자신의 나이만큼 작은 세상을 유영하고 있는 아이에게 조금 먼저 경험했다고 그깟 유세를 떠는 이 말버릇은 다시 생각해 봐도 볼 품 없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이 어딨다고 자꾸만 튀어나오는 말버릇을 방금도 하고야 말았지만 입술을 아주 세게 움켜쥐고 말했다. ‘뭐 어때! 이제라도 연습하면 그만이지!’


천근만근 가라앉던 몸이 둥실둥실 떠오른다. 북토크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가볍고 경쾌하다. 북토크는 내게 언제나 그런 것이다. 큰 몸집에 작은 생수병 만한 체력을 가지고도 그 체력을 한 번에 쏟아부을 만큼 아깝지 않은 곳, 굳게 다문 입술을 활짝 열리게 하는 곳,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좀 더 나은 내일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


#나는나에게북토크를선물한다




25.06.24.

<뭐 어때> 오은 시인 북토크

25.06.24, 천안 ‘가문비나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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