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말을 듣지 마

by 마이분더




호르몬이 기승을 부리고 이제는 제발 갔으면 좋겠는 여름날씨의 기세도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다. 괜히 예민해져 있던 백로 무렵, 기어코 나는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하필이면 호르몬이 날 뛰고 있는 악마의 주간에 아이는 시험지를 내밀었고 새빨간 소나기가 내리는 종잇장을 선보이며 해맑게 싸인을 요구했다. 한 주만 늦게 내밀었더라면 그깟 소나기쯤이었겠지만 그날의 소나기는 그야말로 빨갛게 나의 분노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그리고 나는 해맑은 얼굴 위로 독한 말을 쏟아붓고 있었다.


“같은 문제를 2시간 넘도록 풀었는데 또 틀렸다고?”

“그냥 포기해! 해도 안 되잖아!“

“도대체 너는 좋아하는게 뭐냐?”


고작 초등학생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저런 말들을 내뱉는 사이 아이는 대답했다.


“포기 안 해! 틀린 게 나쁜 거야?”

“될 때까지 하면 되는거지!“

“그만 화내면 안 돼? 엄마가 계속 화내니까 내가 아프잖아.”


아이는 울면서도 꿋꿋하게 대답했다. 어디를 때린 것도 아닌데 아프다고 말했다. 그 말에 호르몬이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독설을 내뱉으며 차갑고 모질게 내 감정을 아이에게 던지고 있었다. 아이는 보이지 않는 무거운 공을 가속도와 함께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상대를 위한답시고 내뱉는 독설에 상대를 위한 마음은없다. 나의 욕망과 분노, 그리고 아무 잘못도 없는 누군가를 향한 원망만 담겨있을 뿐이다. 살면서 내가 받은 독설이 약이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경험하고 느끼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에게 독설가가 되어 있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테투리 안에서 통제하고 다그치면서 ‘너를 위한 일이야’라고 무마했다. 그 안에 자제력은 없었다. 통제의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언제나 나였어야 했다.


<의젓한 사람들> 김지수 기자님의 말처럼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의젓해져야 한다. 생각해 보면 의젓한 사람 중에 독설가는 없었다. 때때로 무례한 사람들에게 독설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애정을 가진 대상에게 독설이 필요한 순간은 없다. 설령 타인을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말 일지라도 독설은 결국자신을 위한 것이다. 내 말이 맞다는 주장, 혹은 내 뜻대로 타인이 바뀌길 바라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정한 엄마가 될 줄 알았던 나는 독하고 모진 엄마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내가 바라던 엄마의 모습도 지금 내 얼굴은 아니었다. 아이를 따뜻하게 책임지고 싶다. 아이를 위해서,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노력하고 싶다.


다정함에는 타인을 향한 굳센 믿음이 담겨 있다. 당장 눈앞의 모습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싶다. 하지만 어떤 믿음도 인내심만으로는 생기지 않는다. 타인보다 먼저 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에 대한 믿음은 독기 눈을 뜨고 달려드는 무조건적인 ‘열심’과 ‘성실’에 있지 않다. 자신만을 향한 ‘열심’과 ‘성실’에는 반드시 독이 생기고 그것은 결국 남을 향한 독설로 변질된다.


무엇이든 독기 없이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고싶다. 그것은 매일 아침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 작은기쁨과 타인을 향한 작은 이해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 소소한 기쁨과 작은 이해들이 내일의 기적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결국 호르몬 핑계를 대 보지만 앞으로는 절대로 아이 앞에서 내 감정에 무너지고 싶지 않다. 학습이 반복으로부터 완성되는 것처럼 기억도 반복적으로 선택한 기억만 남길 수 있다고 믿는다. 나쁜 기억보다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반복할 수 있도록 오늘부터라도 열심히 의젓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아이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엄마 말을 듣지 마.

다른 사람의 말을 거역할 수 있는 용기가

너를 구원할 거야.”







북토크 메모장
25.07.22, 김지수 기자님 북토크, 최인아 책방, 사회 손정은 아나운서


- 가장 잘하던 것에서 출발해라.

- 인터스텔라 뜻 : 깊게 진입해서 탐사하다.

- 이번 시대의 키워드는 <의젓함>인 것 같다. 의젓함은 시선의 높이 차이다.

- 시대가 원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시대의 키워드를 잡는다. 시대의 요구는, 성실 → 자기다움 → 일잘러 → 문장수집의 붐 → 회복과 다정함 → 의젓함 즉다정함을 넘어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 존재로 발전했다

-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떠올릴 때 나를 찾을 수 있다.

- 의젓한 사람은 힘든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 의젓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태도를 볼 때 즉각 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 탐색<봄>, 분투<여름>, 멈춤<가을>, 창조적 파괴, 전환<겨울> 의 흐름으로 사계절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도 관계도 모든 것이 그렇다.

- 좋아하는 것을 찾으면 몰입하고, 몰입을 하다 보면 시간을 견디는 힘이 생기고 결국 시간을 잊게 된다. 그리고 몰입 이후에는 성취가 따른다.

- 행복을 가치로 삼지 않는다

- 진정한 기쁨은 ‘나의 성장’에서 나온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사람, 타인에 대한 기여도, 누군가에게 의젓한사람이 되는 것이 곧 성장이다.

- 의미와 보람은 타인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느껴진다.

- 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에게 운이 따른다.

- 통제력이 아닌 자제력을 높여야 한다. 자제력이란 자족이 가능한 영역이다

- 완벽함은 없다. 그럭저럭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 만족하는 삶이다

- 타인을 믿고 그냥 해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 ‘기적’은 느끼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우연한 곳에서 난데없이 찾아온다.

- 은인이 다가오는 조용한 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 ‘미래에 고전을 쓴다’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알고 보면 인생은 전체가 슬럼프다. 내가 나를 다독이면서 가는 것이다.

- 자신의 이야기는 자신이 기록하라.

- 나는 나의 부고문을 정해두었다. <아름답고 눈물겹게 살다가다>

- 일관되게 쓰려는 마음을 버리고 모순 그 자체로 써라. 보이는 모습보다 나만 아는 진짜 내 모습이 있다.

- 조직에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늘 의젓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인터뷰는 질문보다, 지면에서 볼 때 좋은 배치가 어디일지 편집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리고 질문보다는 경청에 집중한다.

- 인터뷰어는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이다.

- 나의 용기는 아이를 낳는 순간이었다.


keyword
이전 02화내가 나인채로, 타인이 타인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