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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기분

by 마이분더





마음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언젠가 북토크에서 김애란 작가님은 계절을 의미하는 언어를 자주 떠올린다고 말했다. 겨울을 표현할 때 ‘두꺼운 이불을 꺼내야겠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주, 또 오랫동안 고민하신다고 말했다. 작가님의 계절처럼 나는지금의 기분을 어떤 마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에 관해 자주 고민한다.


아이랑 종일 붙어있을 때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모습을 아이에게 계속해서 원하는 나를 볼 때마다 괴롭고 힘들다. 이 괴로움은 과연 어떤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책 좀 읽었으면 좋겠는데 태블릿만 바라보네“

“학원비 만큼 아웃풋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매번 뒤쳐지기나 하고”

“잘 먹고 잘 컷으면 좋겠는데 안 먹고 안 크니 뭘 해줄 맛이 안나”


언어를 모아 문장으로 표현하면 대략 이런 것들인데 이것만으로 내 기분을 충분히 표현하기에는 뭔가 빠진것 같고 개운치 않았다. 아이는 그 자체만으로 소중한 존재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너무 어렵다. 아이보다 내가 느끼는 육아효능감을 먼저 원하고 내 아이가 ‘옆집 아들’ 같기를 끊임없이 바란다. 분명 나도 아이가 원하는 모습 만큼의 엄마는 아닐텐데,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없는 축복은 도대체 누구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그 축복의 세례를 받고 싶다고 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축복의 세례는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 갑작스레 무서운 모습으로 찾아왔다. 엊그제 아이를 태우고 신호대기로 정차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 있던 트럭이 내 차를 박아버렸다. 아이 표현에 따르면 4D체험관처럼 갑자기 앞 뒤로 몸이 흔들려서 깜짝 놀랐다고 했고, 나는 운전대를 붙들고 뒷자석에 아이가 있다는 생각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차는 다쳤지만 다행히 아이와 나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저 무탈한 것에 감사한마음 뿐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축복속에서 우리 모자는 서로의 존재만으로 감사한 순간을 맞이했다.


하지만 서로에게 바라는 마음은 비단 모자지간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 전 지인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어 좋은 마음에 응원의 메세지를 보냈적이 있었다. 그런데 읽자 마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못 읽었으면 모를까, 읽고 나서 응답을 하지 않는 것은언어로 표현하기에는 곤란하지만 나쁜 기분이었다. ‘바쁜가보지, 무슨 사정이 있겠지‘ 라고 이해하기에는 묘하게 나쁜 기분이 지속되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정확한 이유를 모르고, 나만의 오해일 수도 있지만 계속해서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행동이 이어졌다. 그 기분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상대는 별 뜻이 없을 수도 있고, 나만의 오해일지도 모르지만 이 관계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동안 지인이 타인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도무지 그럴 사람이 아니었고,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늘 예의 바르고 겸손한 모습으로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를 서슴치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나에게만 유독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역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껴졌다. 내가 바라는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기를 바랐는지 나도 그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지만 적어도 이런 기분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차가워지는 마음과 쌀쌀한 기운이 길어지는 것을 보니이제 곧 입동이다. 입동에 대하여 김애란 작가님은 ‘그렇게 추운데 이제 겨우 첫 날이라니' 라고 표현하셨다.살얼음만으로 가둬두었던 온갖 기분이 와르르 흘러넘칠 것만 같은 겨울이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겨우 첫 날인 것 처럼 춥기만한 계절이 다가오지만 꽁꽁 얼어버린 기분을 표현하는 언어를 떠올리기보다 하얗고 가벼운 눈이 소복히 쌓여가는 아침과 해질 녘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저녁,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런 순간들의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언어들을 더 깊고 오랫동안 떠올리고 싶다. 그런 언어로 하루를 채워가는 내가 될 수록 누군가에게 바라는 마음은 작아질 것이다.



낮은 음이 높은 음보다
더 오래가는 것처럼
슬픔 한 가운데에서
노래하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다.
_김애란







2024.11.30,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작가님 북토크


작가님이 시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하셨다.

Q.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래사 나는 chatgpt 에게 물어보앆다.

Q.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참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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