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였다. 어제도 망설였고 오늘도 망설였다. 아마 내일도 망설일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살면서 하루도 망설이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그 유전자는 아이에게도 전해졌다. 아이는 오다가다 우연히 친구를 만나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가거나 내 뒤로 숨어버렸다. 가끔씩 친구가 먼저 말을 걸기라도 하면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땅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친구를 만나면 인사해야지 왜 그러는 거야?" 물으면
"인사해도 친구가 못 보고 지나쳐버릴까 봐"라고 말했다.
모든 게 두려운 아이는 학교 쉬는 시간에도 비슷했다. 친구가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또래들에게 가볍게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운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나는 다가오는 내일이 두려워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는 스스로 자신을 즐겁게 만드는 하루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창밖이 어둑 해지면 아빠와 함께 그네를 타러 나가는 것인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네를 타면 무척 신이 난다고 했다. 밤마다 놀이터에는 같은 루틴을 가진 아이들이 모였다. 창밖으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릴때마다 내 아이도 그 사이에서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평온해졌다.
아이와 남편이 그네를 타러 나간 사이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마치면 현관문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간식으로 제철과일을 준비해 두고 기다렸는데 편의점에서 사 온 젤리를 먹겠다며 봉지를 만지작 거리면, ‘아까낮에도 과자만 먹었는데' 하면서 나는 또 허락을 망설이게 되지만 환해진 아이 얼굴을 보면 과일은 어느새 남편과 나의 간식거리가 되어 버렸다. 쫠깃쫠깃 쫀득하게 씹어 삼키는 아이의 두 볼이 귀여웠다. 그깟 젤리가뭐라고, 별거 아닌 행복 앞에서 나는 매번 무엇을 그렇게 망설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망설임은 끝이 없었다. 오늘 낮에도 좋아하는 작가님의 책을 읽고 신이 나서 피드에 인증했지만, 작가님 태그를 썼다 지우며 몇 번을 망설였다. '알지도 못하는내가 태그 하면 부담스러워하시는 거 아니야?' 쓸데없는걱정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나를 태그하고 댓글까지 달아주면 그저 감사하고 기쁜 마음이 드는데 상대방은 왜 그런 마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꾸 의기소침하게 망설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망설임은 나를 수많은 실행과 도전 앞에서도 주저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게 될까?', ' 내가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부정적인 결과 값을 머릿속에 그리며 서둘러 포기를 부추겼다. 괜한 두려움 앞에서 나는 매일 서성이고 있었다.
매사가 당신 뜻대로 되기를 바라지 마라
일어나는 대로 일어나기를 바라라.
그러면 모든 게 괜찮을 것이다.
-에픽테로스-
사실 요즘 나는 혼란스러웠다. 원하는 것이 있지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아이를 두려움 없이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자신 있게 나를 소개할 수 있는 기세를 갖고 싶었다. 송길영 작가님은 말했다.
진짜 원하는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아직 실체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와 나를 그저 묵묵히 응원하며 나아가는 것뿐이다.
개리 비숍은 <시작의 기술>에서 '당신 삶에서 실망과원망, 후회, 원망, 분노, 무기력을 경험한 곳이라면, 김 빠지고 뭔가 억눌린 감정을 느낀 곳이라면 어디든 기대가 숨어있다' 라고 말했다. 그동안 나는 망설였던 모든 순간에 기대를 품고 있었고, 기대하고 있던 것들이 내 예상대로 되지 않을까 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기대를 버리고 고유한 자신을 믿으며 외치고 싶다.
망설이지 마. 뭘 그리 망설여!
북토크 매모장
24.10.11, 송길영 작가님, <시대예보 : 호명사회> 커피챗
- 사람들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 자신의 삶을 전시하는 것에 급급하다.
- 가치관은 의사 결정의 방향성 된다.
- 믿음이 커지면 투자가 늘어난다.
- 유동화 : 잘하는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
- 사업이 확장될 때마다 사람을 늘려야 하는 회사는 망한다.
- 일상이 모여 내가 되기 때문에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 의미 있었던 것을 사회 트렌드와 결합시킨다.
- '무엇'을 '줄' 것인가을 늘 고민해야 한다.
- 철저하게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과 연결되어야 하고 그들에게 발견되어야 한다. 선택의 연대가 중요한 시대다.
- 섣불리 타인에게 조언이나 동기부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서사에 방해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