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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썰 98] 私, 그리고 和

자유와 평등, 소유와 나눔 그리고 경쟁과 평화

by 우공지마

私(사사 사) : 禾(벼 화) + 厶(사사 사, 아무 모)


전국시대 초기, '私(사사 사)는 단지 '厶'로 쓰였어요. 그 모양처럼, 안으로 굽힌 팔을 형상화한 글자였는데요. '나'를 가리키는 손짓 또는 내 쪽으로 무언가를 끌어안는 제스처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는 그저 '나‘를 가리키던 글자였어요. ( 【 그림 1 】 1 )

【 그림 1 】私의 자형변천

그런데, 사람들은 그 팔 안에 무언가를 당기고 가두어, 남을 배제하여 차지하게 되죠. 그렇다 보니 '厶'는 '나' 이외에도 점차 '사사(私事), 즉 개인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데에도 쓰이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점차 그 뜻이 '厶'의 사용에 더 고착되면서, 그 차이를 좀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마침내 禾를 더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禾였을까요? 禾는 벼와 곡식, 즉 인류 최초의 사회적 잉여생산물이자 사적 소유물의 대표적인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私는 곧,

- '나(厶)'와

- '소유물(禾)'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즉,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과 그가 차지한 생산물, 그 둘이 결합한 상태, 그것이 바로 私 자인 것입니다. 私는 그렇게, 초기 농경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소유의 형태가 공유에서 사유로 변해가는 경제사회적 변화를 보여 줍니다. 시대 전환의 흔적을 품은, 화석과 같은 글자라고나 할까요! 哈哈。

【 그림 2 】龢의 자형변천

상(商) 나라, 갑골문 和는 특별한 피리를 부는 장면이었습니다. 길이가 다른 대나무를 엮어 만들었는데, 마치 팬플룻을 닮았지요. 한숨에 여럿을 불면 화성을 이루고, 순서와 장단에 정해서 교대로 불어 주면 곡이 되었지요. 지금은 상용한자가 아니지만 龢(화할 화) 자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금문부터는 龠(피리 약)이 口로 생략되면서 지금의 和가 되었지요. ( 【 그림 2 】 1~5 )


그러니까, 和는 음식(禾)과 음악(龠)이 공존하는 상황, 곧 잔치 자리였던 것이죠. 음식을 나누어 먹기(口)도 하고요. 그런데, 그 음악은 질서와 조화를 기본으로 하지요. 그래서,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화목 그리고 일체감을 조성합니다. 그렇게, '和', 곧 '조화롭다'는 근본적으로 공유(또는 나눔)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 【 그림 3 】 1~6 ) 주1)

【 그림 3 】和의 자형변천

그렇게 만들어진 和는 곧,

- 생존의 기반이자, 공유 가능한 잉여생산물인 '벼(禾)'와

- 질서와 조화의 상징인 음악, 龠(피리)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和’는 정말 매력적인 글자입니다. 음식을 함께 나누고, 음악을 함께 즐기는 잔치자리. 그 자리에선 누군가를 배제할 수도, 모두가 불편해할 소음을 낼 수도 없습니다. 글자 ‘和’를 통해서, 우리는 조화롭기 위한 구조적 조건과 사회적 맥락을 깨닫게 됩니다. 잉여(禾)를 사회 경제적 협업의 산물(龠)로 보는 것, 그것을 일정한 질서 하에 평화롭게 베풀고 향유(口)하는 것...! 자세히 보시면 龠에는 口가 세 개입니다. 哈哈。


사족, ‘私’와 ‘和’는 비슷한 자형을 가지고 있지만, 뜻은 전혀 다릅니다. ‘사사로움’과 ‘조화로움’—그 두 개념을 한 자리에 두기는 힘들 듯해 보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두 글자 모두 ‘禾(벼 화)’를 공유합니다. 같은 자소(字素)를 갖는 한자들은 보통 의미상 연관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은데, 이처럼 뜻이 상반되는 글자에 동일한 자소가 들어간 것은 그래야 하는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생각해 보면, 私와 和의 갈등은 인류사 전체를 꿰뚫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私는 사적 소유와 경쟁, 효율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적 원리를 상징하고, 和는 공적 소유와 배려, 조화와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적 혹은 사회주의적 이상을 상징합니다. 실제로 인류는 지난 19~20세기 동안 이 두 원리가 충돌하는 장면을 숱하게 경험해 왔고,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립의 중심에는 언제나 禾가 있었습니다. 바로 '물질'입니다. 국가 간 전쟁, 이념 갈등, 빈부 격차 등 수많은 갈등의 뿌리에는 물질의 소유와 분배 문제가 자리합니다. 私와 和의 차이 또한, ‘禾’를 어떻게 다루는 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 점에서 ‘禾’를 사이에 두고 ‘나(厶)’와 ‘우리(龠+口)’가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구조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의 상(象) 일지 모릅니다. 어떤 체제도 私만으로는, 또는 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 두 글자의 구조가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지요.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공통된 기반을 공유하는 이 두 글자처럼, 인류는 결국 개인의 권리와 공동체의 조화를 균형 있게 함께 추구해야만 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私와 和의 출현 시기입니다. 私는 전국시대 이후인데 반해, 和는 상대(商代)입니다. 최소 몇 백년에서 1, 2천 년을 앞서지요. 칼 마르크스의 원시공산사회가 다른 후속 체제에 비해 시대적으로 앞서는 것과 잘 비견되는군요. 哈哈。


주) 1. 진(秦) 무렵에, 和의 禾가 좌편으로 자리를 바꾼 것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진의 통일시대에 이르러 중국경제는 농경은 물론 상업이 급격하게 발달합니다.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물화'가 성숙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이죠. 따라서의 조화의 중심 개념이 화합이 아니라 물질으로 옮겨 간 것이죠.(물론, 뇌피셜입니다) ( 【 그림 3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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