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엄마일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 모성에 대한 신화와 돌봄 노동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과 교육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나의 엄마역할에 도움이 되었던 이론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게 된 그 이론들의 허점들. 우리가 엄마로 살아가며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사회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 큰 목소리로 외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탓을 그만하고 서로를 위로하고 북돋워주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자꾸 '엄마라는 일'에 대한 제 애정과 고민들을 적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도, 대화를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늘 '엄마'로 귀결되는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 순간 세 자녀의 엄마인 제가 과연 엄마라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했습니다. 일 하기로 정해놓은 6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을 오롯이 엄마로 살면서, -엄마들은 밤에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자지 않나요?- 왜 난 내 육아와 양육에 대해 이야기할 용기를 내지 못할까!
제가 현실엄마라 더 말하기가 힘들었어요. 모든 엄마는 불안하거든요. 내 선택이 옳은지, 적절한지, 맞는지 늘 불안하거든요. 육아 ing인 제 마음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데, 글로 남기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돌아보면 생의 반을 '부모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말하는데 썼어요. 그리고 그렇게 저를 이끈 동인은 제 안에 있었습니다. 좋은 부모를 그리고, 좋은 부모가 되기를 꿈꾸고, 좋은 부모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번도 제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제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전 '엄마'라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그림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음악을 사랑하듯이 전 엄마라는 일을 사랑합니다.
스피노자는 정치학 논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제껏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해 온 까닭은
인간의 행동을 비웃기 위해서도,
그것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도,
그것을 미워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을 뿐.
바뤼흐 스피노자, 정치학 논고(1676)
엄마를 바라보고 산 세월과 엄마가 된 세월을 합치면 곧 반백년이 됩니다. 엄마에 대한 제 공부는 제가 특별한 엄마가 되길 바라서가 아니라 그저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이유에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상가나 이론가들의 이야기만이 진실이자 진리이고, 현현하게 존재하는 제 삶은 부끄러워하던 시절을 이제 그만 흘려보내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가 엄마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과 엄마가 될 사람들과 엄마인 사람들을 위한 다정한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