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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전쟁이 가져온 火病

1부. 나의 유년 시절의 그림자

by 김혜정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집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콧노래 소리도, 티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끊기고 요란한 발자국 소리도 무음 모드로 바뀌었다. 고요하고 적막했다.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고요와 적막이 대신 채웠다.


시절 엄마와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버텼을지 나는 모른다.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사람도 없었고 엄마나 아빠도 당신의 마음 상태를 얘기한 적이 없었으니까. 지금 와서야 이 글을 쓰면서 부모님의 그 당시 심정이 궁금해질 뿐이다.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는 수입이 좋으셔서 우리는 풍족히 살 수 있었다. 라면도 박스로 사다 먹고, 반찬도 육해공 고루고루 배불리 먹었다. 옷도 신발도 반짝거렸고 손을 내밀기만 하면 용돈도 넉넉히 들어와 먹고 싶은 간식도 걱정 없이 사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떠나자 모든 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엄마아빠의 살림 바구니는 점점 축나고 있었다. 용히 얇아지는 살림살이, 줄어드는 용돈, 꺼내지 못한 요구들.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끝내 사달라고 말하지 못한 문제집. 친구가 시험 당일 아침, 문제 좀 내달라고 들이미는 문제집에서 본 문제가 시험에 똑같이 나온 걸 보고 적잖은 부러움을 느꼈다. 성문영어와 수학의 정석은 오빠의 손때 묻은 책을 그대로 물려 썼고, 파란 점무늬 내복조차 오빠의 것을 물려 입었다. 기억하자니 우습고, 되짚자니 서럽다.


그렇게 가세가 기울었던 탓에 엄마와 아빠의 사이에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큰 소리가 잦아졌고, 고래고래 소리 높여 싸우는 밤들이 많아졌다. 싸우는 소리는 대각선의 방문을 뚫고 내 작은 방 나의 두 귓구멍으로 흘러들어왔다. 삐그덕거리는 신경전의 전초전이었다.


할아버지의 막강했던 존재감과 굳건한 포스를 대신할 존재는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였다. 바로 아빠. 언제 어디서나 예의를 깍듯이 지키고, 사람들에게 사람 좋은 웃음을 건네던 아빠, 원리원칙을 중요시하되 착하고 성품 좋은 사람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졌던 아빠였다. 그러나, 아빠는 더 이상 예전의 아빠가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은 이제 나다. 다들 내 말을 따르고 복종해."


아빠는 권위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말대꾸는 용납되지 않았고, 어떤 반항도 눈의 흰자위를 부라리는 위협으로 눌러 버렸다. 집안에는 아빠의 강력한 법만이 존재했다. 강한 억압에는 부작용도 큰 법. 말없는 전쟁이 시작되었. 전쟁의 대척점엔 아빠와 엄마가 위태롭게 서 있었고, 어떤 무기도 없는 일개 병사인 나는 바짝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눈치만 보는 나약한 병사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런 어느 날, 아빠가 다급히 내 방문을 두드렸다.


"빨리 와서 엄마 좀 주물러."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허둥대며 아빠를 따라 안방으로 갔다. 엄마가 안방에 일자로 뻗어 있었다. 초점 없는 눈, 끊어질 듯한 숨.. 어둠 속에서 짐승이 숨이 막혀 울부짖는 것처럼 엄마는 컥컥거리며 헐떡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난 울컥 눈물부터 났다. 이 지경까지 되도록 아빤 뭘 한 건지, 원망스러웠다. 아빠가 엄마 다리를 주무르는 걸 보고 난 엄마의 양팔과 손을 교대로 주물렀다. 엄마 손가락이 자꾸만 안으로 굽어 갔다. 119를 불러야 되지 않겠냐고 아빠한테 재촉해 물었다. 아빠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30분 정도 주무르면 풀린다고 경질적으로 말했다.


"어떡해.. 엄마. 어떡해.."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왜 이렇게 된 건지는 수 없었지만, 딱하고 가여웠다. 손도 발도 차디차고 점점 더 꼬부라져갔다. 엄마는 숨을 더 크게 헐떡였다. 입이 마르고 침이 마르고 혀가 안으로 말려갔다. 아빠는 가제 손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와서 입가를 축여 주었다. 엄마는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입에 들어오는 가제 수건을 쭉쭉 빨아 먹었다. 나는 엄마의 팔다리를 쉬지 않고 주물렀고, 엄마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게 계속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 푸. 어. 푸. 숨 고르는 데 집중하는 듯했다. 아빠 말대로 30분 정도가 지나자 엄마의 손에 온기가 느껴졌다. 발도 따뜻해졌고 숨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휴... 기진맥진했다. 엄마는 살아났고 발작은 멈추었다. 안도의 숨을 쉬려는 순간, 무겁고 딱딱한 목소리로 아빠가 말했다.

"이제 니 방으로 가."


이 모든 뒤엉킨 혼란과 공포를 안은 채, 나는 방문을 닫고 몇 시간을 울었다. 누구에게도 묻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혼자 버틸 수밖에 없었던 어린 내가 있었다. 설명해 줄 사람도, 위로해 줄 사람도, 나의 공포를 헤아려 줄 부모도 없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전쟁 속에서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엄마 아빠는 겨우 마흔 초반이었다. 경제적으로 휘청거리고, 대화는 없고, 서로의 마음을 닫아버린 채 견디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돈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의 문제였다. 존중 없는 말투, 이해 없는 갈등, 그리고 화병. 몸이 먼저 무너지고, 마음은 그 뒤를 따랐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처음엔 놀랐고, 나중에는 가슴이 문드러졌고, 더 시간이 지나자 지겨워졌다.

그게 상처인지도 모르고, 나는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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