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의 이름으로 진실을 가두는 사람들”
풍자 정치극 / 3인 대화극
등장인물
* 최권자 : 권력의 정점에 선 인물
* 대표 : 당의 실세이자 전략가
* 법장 : 법사위원장, 사법 권력의 관리자
< 1막. “권력의 철학” >
* 최권자
이제 다 왔소. 권력의 꼭대기.
하지만 그 자리를 지키려면… 그대들의 도움이 절실하오.
당신들도 언젠가 그 자리에 서야 하지 않겠소?
* 대표
물론입니다. 우리가 아직 못 끝낸 일이 많지요.
입법부, 행정부는 완전 장악 했으니
사법부만 남았어요
그깟 삼권분립이 뭔 문제겠습니까? 우리가 다 해 먹으면 되지요.
‘정의’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법장
호호, 걱정 마세요.
법은 이미 제 손안에 있습니다.
사법부만 단단히 묶으면 세상은 우리 질서 아래에 놓일 겁니다.
* 최권자
좋소.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건 ‘선동의 기술’을 잘 쓴 덕이었지요.
이제 마지막은 거짓의 불꽃으로 마무리합시다.
이보오 대표!
당신 선동의 막말은 좀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소
그러니 조심하시오. 다 된 밥에 코 빠트리지 말고..
* 대표
네 걱정 마십시오. 막말의 선동은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아요
어리석은 국민들이 내 말을 더 좋아한다니까요.
민심은 바람입니다.
우리가 불면 흔들리지요.
언론이 도와줄 것이고, 광장엔 또다시 “분노한 시민들”이 모일 겁니다.
* 법장
그때 제가 칼을 듭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상대를 베되,
그 칼끝은 언제나 우리를 피해가게 하죠.
보세요, 판사들 모두 허수아비입니다.
아무도 앞에 나서 바른말하는 사람 하나도 없잖아요.
* 최권자
이보시오 법장!
당신은 먼저도 보수의 어머니로 불렸잖소
당신 때문에 잠시 권력을 뺏겼잖소.
이제 또 그런 조짐이 보이니 특히 조심하시오.
좋소. 감방에 있는 그 ‘옛 주인’은 이제 그림자조차 남지 않겠지.
내가 감방에 갈 걱정도 없어질 것이고,
우리가 새 시대의 주인이 되는 거요.
나도 그래야만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것이오
* 대표
그럼 이제 외쳐야죠. “국민을 위해!”
(비웃으며) — 언제나 그 말이 제일 강력한 주문이니까요.
(웃음소리.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 2막. “터트려야 산다” >
* 최권자
아니 도대체 특검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아직도 적폐 하나 제대로 엮지 못했단 말이오?
* 대표
그게 말입니다, 캐고 또 캐도 이제는 더 나올 게 없습니다.
특검들이 “이건 안 된다”라고 버티고 있습니다.
* 법장
맞습니다. 그들도 이제 정치적 조작이라며 선을 긋더군요.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정치는 진실보다 강하다”라고.
* 최권자
(책상을 치며)
무슨 소리요!
터트려야 수습이 쉬운 법이오.
언론이 달려들고, 여론이 끓어야 우리가 움직이기 편할 것 아니오!
내가 요즘 개인 사생활까지 모두 털리게 생겼는데..
숨겨놓은 나의 치부, 그게 문제가 아니오
우리의 배후 세력까지 모조리 드러나게 생겼단 말이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아냔 말이오
우리는 그동안 쌓아 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거요
* 대표
하하, 국민은 내용보다 분위기에 흔들립니다.
자극적인 한 줄만 흘리면, 진실은 묻히고 감정만 남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법장
그럼 이렇게 합시다.
없는 증거라도 ‘정황’으로 포장합시다.
언론 몇 곳은 이미 준비돼 있습니다.
그들이 “단독”이라 붙여주면, 그게 곧 사실이 됩니다.
* 최권자
좋소. 이번에도 그 시나리오로 갑시다.
“정의를 위한 수사”라 외치면 누가 우리 속을 의심하겠소?
* 대표
결국 ‘정의’란 말이 제일 무서운 무기죠.
우리가 휘두를 땐 성검이지만, 남이 들면 흉기가 되니까요.
* 법장
하하, 세상은 언제나 힘센 자의 정의로 돌아갑니다.
이번에도 그렇게 쓰면 됩니다.
* 최권자
좋소. 그럼 끝까지 밀어붙입시다.
진실은 나중에 써도 늦지 않소.
* 세 사람 동시에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위하여!"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조명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