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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참 바쁘다

by 대전은하수 고승민

가을은 참 바쁘다

사계절이 모두 나름대로 맛도 있고 멋도 있지

그런데 나는 가을만 되면 바쁘더라고

왜 바쁠까? 생각해 봤지


신록의 계절과는 작별 인사를 해야잖아

여름내 푸르름으로 나를 덮어 줬던

푸른 숲과 도심의 가로수 나뭇잎

그 잎들 사이로 작열했던 여름의 태양

아직은 아쉬운 듯 푸르름이 버티고는 있지만

익년의 만남을 기약하며 안녕~

몇 달을 뒤돌아 보면

사실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여름이었고

짜증도 나게 하는 끈적끈적 친한 척 해대던 여름

예의를 갖춰야 다음 해도 다시 나를 찾아 줄 테니까


가을이 오면

두 달 정도는 정신없이 바쁘더라고

바닷 빛깔 파란 하늘도 올려다봐야지

그 아래 낮게 떠 있는 구름과자도 따먹어야지

뺨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에 손가락도 쫙 펴봐야지

바람과 냄새와 느낌을 제외하면 가을의 첫 전령은 코스모스야

도심을 살짝 벗어나면 코스모스가 반겨주잖아

조금씩 제 색을 찾아가는 가로수 잎들을 관찰하는 것도

하루 일과 중 하나야, 하루하루 변해가는 색


점점 깊어가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면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이 허전함을 느끼거든

나는 우리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라고나 할까?

인생의 고독한 외로움도

지나간 삶의 환희와 회환도 느껴보고

우연한 만남과 필연적인 만남은 누가 있을까?

그리워도 하게 되는 게 가을이거든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차이코프스키의 악토버(10월)

만추엔 이브 몽땅의 "고엽"

가을엔 샹송이 제대로 더라고

깊어가는 가을밤에 쇼팽의 "녹턴" 피아노 선율에

취하면 무아지경이지

와인이 곁들여지면 거의 죽음이야

은행나무 단풍나무 가로수에 가을빛이 쏟아지면

반짝반짝 가을빛의 매력에 발걸음이 멈춰지지


가을 복판이 되면 그냥 못 있지

어디론가 멀리멀리 가고 싶어

속리산에 가면 법주사 앞의 은행나무길

와 ~ 은행나무 떨어진 잎이 침대가 되니 눕고 싶어

울긋불긋 찐한 단풍에 사진 한 장 남기느라 정신없지

속리산이든 설악산이든 명산을 찾는 건

우리나라 산하에 대한 예의라 할 수 있지

가을바람에 오서산 중턱의 들어 눕는 억새밭에서

서해 바다의 눈부신 은빛 반짝임을 보면 황홀경이야

가을 호수 물안개가 걷히면 잔잔한 추파를 나에게 던지지


근데 말이야, 멀리 가지 않아도 가을은 가까이 있어

휘영찬 밝은 달에 구름이 흘러가는 순간에

귀 기울이면 귀뚜라미 소리가

가을밤의 참 맛을 느끼게 해 주잖아

오랫동안 끄적였던 일기나 순간순간 취해뒀던

사진을 보며 추억에 젖는 것도 가을에 느끼는 진미 건든


황금 들녘이 점점 지워져 가며 쌓여가는 짚단을 보면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의 장면 생각나잖아

긴 장대로 높은 감나무의 감을 따는 재미

밤나무 밭의 널브러진 밤을 줍는 손길

주렁주렁 달린 사과 배 대추

그런데 가을 전어의 맛엔 모두 기가 죽지

굽는 냄새와 회로 먹는 식감

와 ~ 가을이니까

승민,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를.


아 가을이 오면

머리가 복잡해 뭐부터 가을을 느낄까?

정신 차리자 정신 차려

방법은 시간 가는 대로 날짜 가는 대로 차근차근

그런데 그게 맘대로 되냐고

이런 날 이거하고 저런 날 저기 가고

닥치는 대로 느끼는 거지 가을을

휴~ 생각만 해도 바쁘네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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