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Jun 04. 2023

백숙을 먹는다는 건, 여름이 왔다는 것

오늘은 미술관에 가기로 한 주말 , 비가 아침부터 쉬지도 않고 하루종일 내린다.

비 오는 날에 미술관이라, 내가 생각해도 너무 낭만적이란 말이지.

미술에 '미'자도 모르지만 나는지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감상해봤다.

내가 있는 공간이 너무 멋져 기분이 좋았는데 

미술관 안에 에어컨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같이 간 우리 딸은 입술이 파랗게 변했고

나도 오들오들 떨면서 그림을 감상했다. 

그림으로 마음의 양식은 채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사람은 배가 든든해야 한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근처에 있는 닭백숙 집이 생각나 누룽지죽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닭백숙집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날아갈 듯이 가벼운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방문한 닭백숙집은 비가 와도 사람이 많았다. 

백숙 집도 에어컨 바람이 어찌나 세던지. 

'5월부터 이렇게 에어컨을 세게 틀 이유가 있는 거야!

백숙은 오래 걸리는 음식인데. 나 지금 무지 배고픈데. 

음식 늦게 나오면 나 짜증 나는데.'

라고 씩씩 대던 중에 


밑반찬이 착착 나왔다. 

이 반찬들이 어찌나 깔끔하던지, 

식기구들도 반짝반짝 


'맞아, 내가 이래서 이 집을 좋아했지.'

새콤한 오이절임을 입안에 넣고 아삭 씹어본다. 

'음~이 맛은 백숙이 나오는 억겁의 시간을 참아낼 수 있는 맛이다. '

개인적으로 나는 김치보다 피클을 좋아하는 편인데 

여기 반찬들이 샐러드, 피클 같은 맛의 찬들이 많이 나온다.


드디어 닭백숙이 입장했다.

보름달 같은 노란 누룽지 죽도 함께 나왔다. 


사실 나는,

닭백숙보다는 죽이 먹고 싶어서 백숙집을 찾는다. 


어릴 때 땡볕에서 친구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던 때 

일명 '더위 먹는다'고 하는데 

그 더위를 먹어 밥도 먹기 싫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 그맘때쯤 삼복이 있는 여름철이었을 것이다. 


"뭘 먹어야지 안 먹으면 죽어!" 하면서 엄마는 뽀얀 닭살을 소금과 후추를 찍어서 내 입에 넣어 준다.

입에 넣어줬으니 우물우물하며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데 

그런 내 모습을 본 엄마는 

닭 안먹을거면 이거라도 먹어야 한다며 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것을 떠주셨다.

닭죽이 등장한것이다.

한입먹는 순간

'어머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단 말이야!' 라고 속으로 외쳤다.

닭죽 한그릇을 먹고 기운을 차렸는지 그 이후로 그렇게 먹기 싫던 밥도 잘 먹으면서 더위를 이겨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닭보다는 죽이 먹고 싶어 엄마에게 닭죽 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삼계탕이 레트로트 제품들로도 많이 나와 편하게 먹을수 있었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여서 특별한 삼복에만 먹었던 것이다. 


지금도 죽을 보면 

땡볕에서 친구들이랑 놀았던 그때로 

엄마가 닭을 입에 넣어줬던 그때로 

죽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란 어린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예전 이야기가 떠오른다. 

저녁 먹을 때지만 깜깜하지 않은 여름 저녁식탁의 풍경들이 말이다. 


그런데 어른이 된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두렵다.

특히 삼복이 오는 게 너무 두렵다. 

나는 또 얼마나 주방에서 닭과 함께 삶아지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매년 겪는 일이지만 매년 두렵고 무섭다. 


아, 여름이 온다.













작가의 이전글 김치찌개는 사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