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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뷸런스가 살아났다.

by 최림

운전 중 맞은편 방향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앰뷸런스가 보였다. 대학병원 가까운 곳이라 자주 목격하는 광경이나 유달리 마음이 아리다. 작년 여름 더위로 지쳐 절정이던 시기 엄마네 들어섰을 때 왠지 모를 불안이 몰려왔다. 오전 수업 내내 계속 불편한 마음 한가득 옥죄던 불길함이 엄습해서였다. 평소 잠귀 밝던 엄마는 대낮 자는 모습으로 흔들고 부르며 꼬집어도 깨거나 대답도 없었다. 순간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제저녁 늦게 웃으며 헤어졌는데.


119를 부르고 응급실 갈 준비를 했다. 일주일 전 다녀온 전력이 있었다. 119 요원이 도착했을 때 당뇨로 먹던 약과 평소 지병에 대해 얘기했다. 고혈당만 조심하고 대비했던 나는 저혈당쇼크라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처음 겪는 일이다. 혈관에 포도당을 급히 주사하니 눈을 뜨셨지만 연세를 생각해 병원 이송을 물어봤다. 젊을 경우 금방 상황이 좋아져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쇼크 상태였는지 의식은 찾았지만 다른 기능은 돌아오지 않았다.


구급대원들이 엄마를 들것으로 싣고 구급차에 태웠다. 언덕을 내려가면서 본부와 연락을 취했지만 낯 2시 어느 병원서도 응급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낮 응급인력이 부족하다며 평소 정규 검진 다니던 집 앞 대학병원부터 어느 곳 하나 환자를 받아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119 구급차 안에서 엄마와 대원들은 대기 상태였고 본부에선 서울시 응급실에 모두 전화 돌리며 빈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딜 갈지 정해지지 않아 앰뷸런스 안에서 거의 한 시간가량 기다렸던 거 같다. 급하면 일산 국립의료원이라도 갈 거냐고 해 전화 돌리는 중 은평구의 준종합병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우린 구급 대원이 인계하고 병원에 내려줄 때까지 앰뷸런스 안에서 숨죽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의사 파업에 내 가족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긴박한 순간이었으니까. 아직도 지나가는 앰뷸런스를 마주할 때면 그때가 떠오른다. 병원 도착 땐 의식이 있었지만 그 뒤 오랜 시간 병원서 코로나도 겪고 무의식 때문에 음식을 삼킬 수 없어 점점 야위어 갔다.


누군가에게 닥칠 수 있는 급작스러운 상황은 준비돼 있더라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엄마는 근 삼 개월 그 여름을 묵묵히 견뎌냈다. 가끔 눈 뜨는 시간도 있지만 그 어떤 반응 없이 금식으로 뼈만 앙상하게 남아 튜브로 유동식을 주입해도 차도가 없었다. 병원은 생生과 사死를 오가는 게 잘 와닿지 않았으나 한줄기 목숨이 연명되는 건 정말 기적이었다.


그 뜨겁고 아픈 여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에 접어든 햇살 좋은 시간 엄마는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직 앰뷸런스 소리만 들려도 문득 철렁하고 저 밑 지하로 떨어지는 소릴 듣는다. 입원하는 순간부터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닥친 현실은 아득했다. 살면서 후회하지 않게 열심히 병원 드나들던 그 시기가 아직도 서늘하고 시리다. 그렇게 치열하고 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 겨울, 새봄이 오더니 어느새 다시 여름이 와버렸다. 아직도 운전하다 사이렌이 들리면 가던 길을 멈추고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터주며 앰뷸런스 속에 있던 내가 보인다.


치유된 게 아니었다. 그냥 잊히진 않더라도 점점 나아질 테지만 오늘따라 마음이 많이 흔들린다. 화창하게 빛나는 햇살과 차 문으로 들어오는 열기가 더해갈수록 눈앞이 아득해진다. 하늘 아래 더 이상 내 편 없는 고아가 된 지금 여름은 아름답고 뜨거우며 온통 지난 시간을 잊은 채 살고 있다. 하지만 문득 준비 없이 사이렌 소리를 마주할 때면 그때가 떠오른다. 언제쯤 잦아들까, 엄마의 빈자리는 그렇게 자꾸만 자꾸만 소환되고 살아난다. 세월이 가면 잊힐까만 그 시간의 깊이만큼 소리가 주는 자극을 잊긴 힘들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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