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공통점은 있다
학교를 다니느라 서울 외할머니 집에서 머무르는 아들이 가끔씩 한 마디 했다.
"엄마, 외할머니와 할머니가 얼마나 다른지 아세요? 제가 경험해 보니까 완전 반대예요."
아이의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다. 우리 엄마와 시어머니는 완전 극과 극.
극 E와 극 I이다.
친정엄마는 해방 직후 10남매의 막내로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셨다. 나이차가 상당한 형제, 자매들 밑의 천덕꾸러기 막내로 소외돼 산 것도 서러운데, 불과 5살 때 6.25 전쟁통에 아버지가 공산당의 총에 맞고 돌아가셨다.
아버지 없는 집의 막내로 살아남기 위해 엄마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강해져야만 했다. 의리와 인정이 충만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던 꼬마는 위의 9명의 오빠, 언니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그때부터 나름의 생존법을 모색했다.
여고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만난 아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아빠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인자하고 좋은 분이셔서 그저 좋았다고 했다. 아빠의 다리가 불편해도 엄마가 열심히 기도하고 섬기면 나을 줄 알았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내리 딸 셋을 낳은 데다 다리가 불편한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신 이후 엄마는 실질적인 가장으로 다섯 명의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집안에 힘쓰고, 무거운 짐을 들거나 수리를 맡길만한 남자가 없어 엄마가 억척스레 다 하느라 수십 년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살아오셨다. 여자가 사회생활하는 게 지금같이 쉽지 않고 온갖 차별이 득세하던 그 시절에 엄마가 흘린 눈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도 남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셨어서 축적된 경험치가 커서인지 웬만한 일에는 끄덕하지 않는 담대함과 호기로움을 지니셨다.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며, 누구하고나 금세 친해지는 놀라운 친화력을 보유하셨다.
반면 시어머니는 배다른 자매들을 포함한 6남매의 장녀로 살아오셨다. 어린 때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챙기고 돌보셨다.
전쟁통의 어려운 가정형편상 학교를 오래 다니지 못하셨지만 가족을 돌보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셨다. 남편은 몸이 유약하지만 가정을 위해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다.
어머님은 다행히 그런 아버님과 온갖 장사 등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오셨다. 그래도 어머님에게는 남편이 항상 앞장서서 책임지고 생계를 이끌어 주는 방패막이 돼 주었기에 든든하셨을 것이다.
4남매는 부모님의 그런 고생을 이해하고 장성해서 모두 공기업 임원, 대기업 간부 등으로 훌륭하게 성장했다. 이제는 부모님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준다.
무엇보다 어머님은 의지가 되고 힘쓰는 아들 둘, 자상하게 함께 해주는 딸 둘을 두셔서 때마다 의지 하며 살아오셨다.
어머님은 말수가 적고 낯을 가리신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하시지만 막상 친해지면 깊은 정을 나누신다. 또 잔소리를 일절 안 하시고 웬만한 일은 속으로 삭이시는 스타일이다.
전형적인 I와 E 스타일의 극과 극 어머님들.
이 극명한 차이에도 두 분에게는 완전한 일치를 보이는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자식에 대한 무한 헌신과 사랑이다.
4남매를 몸이 허약한 남편을 도와 생업 전선에서, 가정에서 당신의 온 힘을 다해 양육해 오신 시어머님.
몸이 불편한 남편을 대신해 생계전선과 가정에서 세 자매를 전 삶을 불태워 양육해 오신 엄마.
이 두 분이 수십 년 동안 흘려 오신 눈물과 헌신으로 자녀들이 모두 아름답고 신실한 가정을 이뤄 살아가고 있다.
극 I와 E 성향의 두 어머니는 기회가 있어 어쩌다 한 번 뵈면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머님은 웃으면서 주로 들으시고, 우리 엄마가 주로 목소리 높여 활발하게 말씀하신다.
가끔 큰아이가 속 썩여서 가슴을 칠 때, 시어머니는
"내버려두어라. 뭐라 말하지 말아라. 그저 저 좋을 대로 하게 해라. 어쩌겠니?"라고 조용히 나를 진정시키셨다.
반명 우리 엄마는
"애들은 말을 해야 알아들어. 나라도 가르치게 좀 데려와봐. " 하시면서 직접 팔을 걷어붙이셨다.
그런 때는 어느 어머님의 말을 들어야 하나 혼란스러워 고개만 갸웃거렸다.
사랑하는 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날 지언정 두 분의 사랑은 한결같이 깊고 진함을 안다.
그럼, 나는 어떤 어머니일까?
이담에 며느리를 맞으면 일절 잔소리를 하지 않고 며느리에게 일임하는 우리 어머님처럼 하고,
자식에게는 당신의 온 힘을 다해서 지원해 주고, 때로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 우리 엄마처럼 하고 싶은데....
그래.
아들에게는 우리 엄마처럼
며느리에게는 우리 시어머님처럼 대해주자.
그런데 장가는 언제쯤 갈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