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서에 예민한가요
이번 수업에서는 선생님이 감정에 관한 글을 쓰는 연습을 해보라 하셨다. 감정을 하나 정해 감각적 현상, 신체적 현상, 생각의 과정으로 나눠 연습을 하는 것이다.
수업후 집에 돌아와 연습하면서 내가 자신의 감정에 둔한 채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감정을 인식할 새도 없이 바쁘게 쫓기면서 살아왔다.
내 감정 뿐 아니라 남의 감정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들들이 엄마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때때로 지인들이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나 보다.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강신주의 '감정수업'을 찾아 읽어 보았다. 다양한 감정들을 규명하고, 이와 연관된 문학작품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글쓰기 수업은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들춰내 하나씩 표현해 보면서 내 마음 속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자기 정서에 예민해져야 한다고 하셨다. 글을 쓰기 위해 나를 들여다 보고서야 내가 얼마나 나와 남의 정서에 둔감하게 지내왔는지 깨달았다.
이번 주 과제는 내가 제일 좋아한 장소에 대해 쓰는 거였다. 내가 어느 장소를 제일 좋아하는지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감정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도 둔감한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이렇게 삶과 세계를 제대로 감각하지 못한 채 목석같이 살았을까.
마땅히 좋아하는 장소가 떠오르지 않아 매일 한숨만 쉬었다. 우리 집? 동네 공원? 책냄새 물씬 나는 도서관?(실제로는 별로 자주 다니지도 않으면서) 등을 후보군으로 고심하는데 이번에도 남편이 한 소리 해줬다.
"교회에 대해 써봐. 너 교회 가면 마음 편해지고 좋다며?"
남편의 조언을 받아들여 매일 새벽에 기도하러 가는 교회에 대한 얘기를 썼다. 문을 들어설 때마다 나를 푸근하게 받아주는 내 삶과 마음의 안식처.
수업에 들어가서 합평을 하는데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읽는 게 쑥스러웠다.
눈앞에 보이는 낯선 타인들의 시선이 두려워 목소리가 간간이 떨렸다. 오직 낭독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공기처럼 떠다녔던 강의실. 글쓰기를 배우기 위해 얼굴과 이름만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 낭독하는 가운데 서로의 삶에 공명하며 스며들었다.
저 사람들도 글을 쓰면서 난생처음 자기 속의 둔감함을 깨달았을까. 아니면 나와는 달리 예민하게 주변과 감정을 감각하며 살았음을 깨달았을까.
선생님은 나의 글 낭독이 끝나자 "동행 씨. 인용한 헨리 나우웬 문장 어떻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처럼 문장 좀 간결하게 써봐요. 그렇게 짧고 명료하게...."라고 말씀하셨다.
아, 나는 내 문장의 길이에도 무뎠구나.
글쓰기 수업은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글쓰기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내 안의 숨겨진 감정들의 정체,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리고 나의 문장의 모양까지.
수업을 통해 단순히 단어와 문장을 빚는 법만 배우는 게 아니었다. 생각과 경험, 삶의 모습까지 빚어갔다.
그 빚는 과정을 통해 나를 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