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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해방일지

아버지, 저 잘하고 있나요

by 그대로 동행

정독도서관에서 격주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 엄마의 표정이 유난히 환해졌다. 딸을 격려하는 의미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정작 엄마가 기뻐하신 지점은 나의 뒷말이었다.

“수업 끝나고 우리 만날까요? 엄마 집 가까우니까 만나서 좋은데 같이 가요.”

딸과의 약속에 설레어하는 엄마는 가슴이 달뜬 소녀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딸과의 데이트를 위해 편안한 차림으로 나온 엄마와 안국동의 대형 한옥 카페에 갔다. 카페 가득 채운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우리만 섬처럼 떨어져 앉아 오붓한 시간을 나눴다.


내가 사 온 빵이 마음에 안 든다고 퉁박을 놓는 걸 보니, 역시 우리 엄마다. 이렇게 화통하게 당신 원하는 걸 말하는 솔직 담백한 여장부, 그게 바로 엄마의 모습이다.


나는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맏딸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며, 의지하는 엄마 모습이 좋다. 엄마가 더 이상 씩씩한 척하지 않고, 아픈 걸 숨기지 않고,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원하는 걸 요구하며 살면 좋겠다.

카페를 나온 뒤, 엄마가 원해서 인사동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인사동은 예전에 비해 많이 알록달록하고 현대화되었다. 여기저기 점포등을 구경하다 옷가게에 이르렀다. 현란한 원색의 옷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가던 길을 멈춰 그 옷들에 시선을 고정했다. 평생 당신이 입어본 적 없던 스타일인데 웬일일까. 아버지를 대신해 경제적 책임을 짊어졌던 엄마는 평생 뉴트럴 색상의 미니멀한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꽃장식이나 패턴, 체크 등의 옷은 일절 입지 않으셨던 엄마이기에 그런 모습이 낯설었다. 가까이 다가가 “엄마, 예쁘면 사드릴까요?”하자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아니, 나 이런 거 안 입는 거 알잖아. 이뻐서 그냥 만져보는 거야.”


어쩌면 엄마도 저렇게 반짝이는 옷들을 입고 싶어 하지 않으셨을까. 단지 세상으로 나가 투사처럼 일을 해야만 했기에 당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사셨던 건 아닐까.



나는 당신이 내려놓아야만 했던 반짝이는 것들을 다시 안겨드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얼마 남지 않은 엄마의 시간이 그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지게 하고 싶어졌다.

그날 밤, 우리는 어둑해진 인사동 골목길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가슴속 쌓아왔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엄마.


식사 후, 전통찻집에서 떡과 전통차를 앞에 놓고 모처럼의 데이트를 함께 축하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오늘 하루 잘 놀았다는 엄마가 눈을 빛내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실은 인사동에서 정기적으로 만나 식사를 하는 친구들 모임이 있었어. 내 모교인 덕성여고 동창들과 매월 학교 부근인 인사동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셨었지. 우리 모임이 네 명이었는데 최근 수년새에 나만 남고 모두 하늘나라로 갔어. 이제 나는 누구와 인사동을 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마침 네가 그 부근에 온다고 하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너와 다니면서 예전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더라. ”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나는 내 눈자위가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랬구나. 엄마는 그 거리에서 세상을 떠난 친구들과의 추억을 더듬고 계셨구나.


그 고운 옷들, 손수건들, 모두 그때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구경하고 나누던 것들이었나보다.


나는 그제야 몸이 안 좋다면서도 한사코 안국동까지 걸어오셨던 땀에 흠뻑 젖은 엄마의 걸음을, 당신 입가에 아이처럼 번졌던 웃음을, 때때로 고개 숙이고 상념에 잠겼던 순간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생의 끝자락에서 나에게 엄마에 대한 염려를 털어놓곤 하셨다. 홀로 남을 엄마가 외롭지 않도록 잘 보살펴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나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상기하며, 엄마 곁을 지키려 온 힘을 다했다. 아버지의 걱정과 달리 엄마는 씩씩하게 살아내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팔십 대 늙은 엄마 곁은 내가 지키지만, 내가 늙은 때는 누가 곁을 지켜줄까.


딸이 없어 지킬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 하자 남편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고 만족해. 어쩌겠어. 당신 인생이 그런 걸.”라고 말한다.


이럴 땐, 빈말이라도 ‘내가 있잖아’라고 말해주면 안 되나? 이러니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하나보다.


남의 편일지언정 건강하게 오랫동안 곁에 머물러 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끼리라도 추억의 장소를 다니고, 서로의 늙어감을 위로하지 않겠나.

딸이 없는 나는 여기까지 일지언정, 엄마의 해방일지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삶의 고단한 짐에서 마침내 해방된 엄마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마음껏 누리시도록 나는 그 해방일지에 동행하기로 한다.


우리는 여전히 토닥이고, 삐치고, 때때로 상대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현실 모녀이지만, 엄마가 원하시는 한 인사동을 갈 것이다.

당신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을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우리의 남은 계절들을 여한 없이 누리고 함께 축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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