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있어야 여유가 생기는 거라. 돈이 없어봐라. 밥 못 먹고 쫄쫄 굶는데, 치장하고 뭐하고 그럴 생각도 안 나는 거라. 그거 하고 싶다고 하는 거 다 배불러서 하는 소리지."
그리스와 로마 신화에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이 등장한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발목을 잡고 거꾸로 스틱스강에 담가 상처를 입지 않는 몸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발목을 잡고 담근 탓에 그에게 유일한 약점이 발목이 되어버렸다. 성인이 되어 참전한 전쟁에서 발목에 활을 맞고 전사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아킬레스건의 유래다.
누구에게나 아킬레스건이 존재한다. 태어나면서 내 발목을 잡았던 것이 보통 약점 혹은 콤플렉스가 되어 가장 숨겨둬야 하는 치부가 된다. 그리고 그 약점은 아킬레우스가 그러했듯 내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고 여기기에 굉장히 예민하다. 심지어는 건들면 위협적이고 방어적으로 변한다.
아버지는 늘 가난에 관해 얘기하셨다. 1950년대 전쟁을 기점으로 밥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난에 허덕였던 시절이 있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굶어 죽는 이들이 허다했다고 한다. 당시 영양실조가 너무나 많았기에 원기소라는 영양제가 처음 나왔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검정 고무신에서 본적이 있는 것 같다) 당장 집안 식구를 먹여 살려야 했기에 미싱공장에 취직했던 젊은 소녀와 공사판, 공장으로 들어간 젊은 청년들의 이야기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우리 누나, 친구들 이야기였다고. 80년대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며 그 이후부터 조금 살만해졌기에 너희는 정말 축복받은 때에 태어난 것이라고 늘 말씀하셨다.
아빠에게 돈이란 지독히도 자기 발목을 잡은 아킬레스건이었다. 가난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되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그. 옷이 한 벌밖에 없어 같은 옷을 한 달 내내 입고 다녔던 것이 두고두고 상처로 남았더랬다. 할머니가 돈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모습, 사글세에 살다 보니 매번 이사를 하는 모습도 두 눈에 그리고 가슴에 박히게 보았을 것이다. 다섯 남매가 함께 밥상에 앉으면 누가 봐도 모자란 양의 음식이 있었다. 눈치가 보여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그 양보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 지금도 다들 먹고 남은 것이어야 고기반찬에 손을 데신다.
그런 아빠가 공부했던 이유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그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어서가 컸다고 한다. 영어 공부를 하실 때, 단어 하나를 외우면 100원씩 적립이 된다고 생각하며 버티셨다고 했다.
“돈이 있어야 여유가 생기는 거라. 돈이 없어봐라. 밥 못 먹고 쫄쫄 굶는데, 치장하고 뭐하고 그럴 생각도 안 나는 거라. 그거 하고 싶다고 하는 거 다 배불러서 하는 소리지."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대답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나는 돈 적게 벌고 안빈낙도하며 살 거라고, 왜 스트레스받아 가며 그렇게 살아야 하냐며 말대꾸했다. 그럴 만했던 것이 자식 세대는 달랐다. 우리가 마음이 좋지 않은 것은 밥을 못 먹어서가 아니었다. 엄마가 햄버거를 사주시지 않아서였고, 옆집 순이는 교촌치킨을 먹어봤는데 나는 그걸 못 먹어봐서 서러웠다. 누구는 맥도날드에서 생일 파티하는데 누구는 어디 치킨집에서 한다더라 하는 경쟁이 붙고는 했다. 없어서 굶어 죽는 세대가 아니라, 있어도 더 잘 사는 친구와 비교하며 더 많은 것들을 요구했던 세대였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동급생을 밟고 올라가야 했던 경쟁 사회에 찌들어버린 나에게 치명적인 부위는 자존감이었다. 린치핀이 되지 못하면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란 불안감, 쓸모없는 존재, 어차피 해도 안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돈이라는 권력 구도 아래서 더 잔인하게 치고 들어왔다. 아빠는 가난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면 화를 내고, 나는 내 자존감과 자유를 무너뜨리는 대화에 분노가 터져 나온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스틱스강에 담그지만 결국 부모의 발목을 잡던 결핍들이 더 치밀하게 다음 세대로 넘어와 버렸다.
앞서 이야기한 아킬레우스, 그의 부모의 결혼식에서 사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사건이 하나 터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을 하면 당연히 걱정하는 것이 가정내의 불화이다. 신들의 세상도 그러했나보다,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 초대되지 못했다. 그에 열받은 에리스는 신들 사이로 ‘가장 아름다운 미녀에게’라 적힌 황금사과를 던져버린다.황금사과를 향한 여신들의 싸움은 결국 트로이와 스파르타 사이의 관계 악화로 이어졌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서막이었으며 이 전쟁이 아킬레우스의 무덤이 되었다. 가정의 불화가 두려웠던 이들이 불화의 여신을 초대하지 않아 벌어진 재앙을 놓고 보면 아이러니함을 감출 수가 없다. 결혼식 주인공의 아들이 어느 여신의 분노 섞인 장난에 죽게 되다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대입해보기 위해 내 울타리에 들여다 놓기 싫은 무언가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기로 했다. 가난, 실수, 계획이 틀어짐, 자유박탈, 무시, 외모비하, 학벌 콤플렉스, 애정결핍 등 엄청 많은 종류의 무언가가 떠오른다. 내게 그 딱 하나만 없다면 내 인생이 그렇게 틀어지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무언가를 하나 골라본다. 정말 그것이 없다면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가난이라는 물리적인 빈곤 앞에서 생긴 심리적 빈곤은 결국 엄청난 구멍을 만들어버렸다. 가난을 함께 이겨나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과업이었다. 그 앞에서 서로가 비교를 하며 무시를 함이 문제였던 것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김치를 가져온 친구와 내 계란 후라이 한장 같이 나눠먹을 수 있었다면 그런 사람이 한명이라도 우리 아빠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에리스를 무리에서 분리시키지 않고, 함께 불러 만찬을 즐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난이 아무리 힘이 들지언정 그로 인한 두려움이 불러낸 감정과 분리는 대물림되어서는 안 된다. 분리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상처, 또 다른 이슈들을 나비효과처럼 퍼져나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어려운 현황으로 끌고 간다. 내가 가난으로 인해 힘들었으니, 자식들은 절대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그 말이 나비효과가 되어 자식의 마음에 물리적 혹은 심리적 빈곤을 가져온다는 사실, 가난한 자식은 필요 없다는 말과 같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될 경우, 자식의 자존감은 한 없이 떨어지고 만다.
불화의 여신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 것에 분개한 것처럼 그들을 잘 어르고 달래서 오히려 내 편으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불화 앞에서 우리는 막힌 부분을 뚫고 성장을 도모했고, 멋쟁이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노력이 가난에서 벗어나 돈을 운용하는 법을 알게 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 윗대의 바통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각자의 사연이 담긴 아킬레스 건을 가지고 살아간다. 최근 '경제적 자립'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대두되는 것을 보면 윗대를 이어 우리가 이겨내야할 과업이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과업을 이룩하고 나면 다음 세대가 또 다른 국면을 맞이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들에게 무조건 적인 자립만을 외치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겨내 왔단다. 그리고 너희는 또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또 이겨낼 거야 그러니 불화의 여신을 기꺼이 우리 삶에 초대해 보는 것도 좋겠다. 그녀와 함께 사는 동안 내가 죽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 약점은 내게 보완해 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일 테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