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사니스트가 페미니스트에게
나중에 일부 보도에서 대표의 피해호소가 전해졌다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좋지않은 일이 생겨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석연찮은 지점이 있었다. 수사도, 재판도 없이 SNS와 기자회견으로 먼저 여론을 형성해 단죄하는 방식이었다. 많은사람들이 알고 있듯 정의당과 진보진영은 이러한 페미니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피해자의 말을 믿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고, 조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면 "2차 가해자"로 낙인찍혔다.
그 모습을 보며 50개가 넘는 비난댓글이 떠올랐다. 'PC주의? 여혐아님?'이라며 나를 '혐오자'로 규정하던 그 논리와 정확히 같았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적법절차는? 이런 질문자체가 금기시되는 분위기였다.
'어디서 이런 거 본 것 같은데...'
어릴적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우리나라는 말이다, 공산당이 일으킨전쟁에 누구든 총 들고 나갔어. 나라 지키는 일인데 당연하다고 생각했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는 어른도 있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도 많이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빨갱이나 그런소리하지"였다.
빨갱이. 이 세 글자만 있으면 왠만한 반론은 잠재울 수 있었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빨갱이'가 되는 시대를 살아오신분들이 많다. 그리고 그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어른의 머리속에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그 '빨갱이' 라는 단어가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전 동료활동가와 나눴던 대화도 함께.
아마도 노동3법개정을 요구하는 피켓팅이 있던 날이었던 것 같다. 본정당(정의당) 활동가와 나란히 피켓을 들고 서있었다. 동료활동가는 다른 진보정당을 언급하며 운을 띄웠다.
"다른 진보정당 중 일부는 미국을 제국으로 본다, 제국. 각 국가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군림하는 나라라 이거지. 그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나라 진보정당도 북조선노동당(북한)과 힘을 합쳐서 그 제국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입김이 펄펄나는 칼바람에 목소리가 묻힐까봐 큰소리로 물었다.
"와.. 그런사람들이 진짜 있습니까? 조금 무서워질라캅니다. 그런데 그게 지금 저 같은 청년들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동료활동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이 바닥에선 그런 이야기들이 아직도 통해."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에는 더 심했을 거 아닌가. 민족해방이라는 절대선 앞에서 조금이라도 다른의견은 묻히는 조직문화말이다. 그 시절 민족해방론에 대한 이견은 반동(백래시)이었을 것이다. 수적인 우열을 차치하고서 본다면 우리 할아버지세대의 '반공이데올로기'와 뭐가 다른가.
친미. 빨갱이. 둘 다 낙인이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었다.
14화에서 중년당원이 회의에서 "우리 집 여편네가"라고 말했다가 뭇매를 맞은 일을 언급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분은 50대 노동자다. 평생 그렇게 말해왔을 것이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시대의 언어였을 것이다. 하지만 당내여론은 그분을 '여성혐오자'로 치환했다. 변명의 기회도, 수정의 기회도 없이 그냥 '혐오자'로 치부되고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당조직문화는 전체사회로 확장됐다. 학자, 언론, 회사로 뻗어나갔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념 앞에서 조금이라도 오탈자가 나면 '한남', '여성혐오'라는 꼬리표가 들러붙는다.
빨갱이, 친미, 혐오주의자. 세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러저러한 잡생각에 커피나 홀짝이며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그 책상 위에 읽다 말았던 샹탈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가 펼쳐져 있었다. 슬쩍 펼쳐보니 며칠 전 밑줄 그은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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