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가 세운 권력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 걸까

탱크를 막아선 사람들

by 백재민 작가

1911년, 독일사회학자 로베르트 미헬스가 한권의 책을 냈다. 책 이름은 [정당론]. 이 책에서 미헬스는 "조직을 강조하는 자는 소수의 지배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조직이든 아무리 민주적으로 시작해도, 결국 소수의 지배로 귀결된다는 논리를 편다. 이를 '과두제의 철칙'이라 이름붙힌다.

로베르트 미헬스

미헬스는 젊은시절 독일사회민주당(SPD)에 입당했다. 그러면서 독일사민당내부를 관찰하며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정당이 내부적으로는 전혀 민주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 지도부는 권위적인 태도로 고착됐고 평당원의 의견은 부차적인 요소로 취급됐다. 대의원대회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실제결정은 소수로 이루어진 정당간부들이 사전에 정했다.


왜 그랬을까? 미헬스의 분석은 이렇다. 조직이 커지면 모든사람이 모든결정에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대표를 뽑는다. 100명이 회의하는 것보다 10명이 회의하는 게 빠르니까. 이건 효율을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의민주제의 모습이기도하다.


대표로 뽑힌 사람들은 조직운영에 전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직운영의 전문가가 된다. 정당규약을 숙지하고, 인맥을 구축하고, 정당 의사결정과정 전반에 있어 전문가가 된다. 반면 평당원은 일상에 바쁘다. 회의록을 읽을시간도 없고 복잡한 규약을 공부할 여유도 없다. 자연스럽게 전문가에게 의존하게 된다.


전문가집단은 정보를 독점한다. "이건 복잡한 문제라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하면 평당원은 "그렇구나" 하고 수긍한다. 의사결정과정도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안건을 상정하려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은 소위 그 정당전문가들, 그러니까 정당관료만 파악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변질된다. 결국 전문가 집단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그리고 그렇게 전문가가 된 정당관료집단은 "정당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며 헌신했으니 보상을 달라"고 요구한다. 밑에서 새로운 인물이 떠오르면 견제하고, 자신들이 상정해놓은 조건을 건드리는 내부비판은 "분열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찍어누른다. 결과적으로 민주적인 절차는 형식만 남고 실제의사결정은 소수관료의 통제아래 놓인다. 그에 따라 정당조직의 목표도 바뀐다. 이념과 정책에 기반해서 "사회를 바꾸자"에서 현상유지에 몰두한다. 혁신과는 거리가 먼 정당이 되는 것이다. 정당활동하며 겪은 바 국민의힘이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있다.


또한 나 역시 미헬스가 묘사한 과정에 공감했다. 나는 전문가집단에 속하며 회의록 작성을 부탁하고 규약을 숙지했으며 의사결정과정을 어느정도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독단적으로 행동했다. 정당 조직가로서 할당받은 지역에 지역위원장을 두고 지역의 당원숫자에 따라 예산을 배분하고 각 지역위원장이 작성한 사업계획서에 결재도장을 찍는 일 대신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내가 결정한 사업에 자원을 몰빵했다.


그 결과 새로운사람이 들어와 다른의견을 내면, "그건 지금 우리의 상황과 맞지않는다"거나 "절차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비웃었다. 그 당시에는 "열악한 여건속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럴의도가 없었으나 결론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사유화한 셈이다. 여기서부터가 당관료가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함정이다. 나는 내가 나의정당을 위해 일한다고 믿었다. 절차를 사유화하는 일이 담당하는 정당조직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국엔 어떻게 됐나. 의도가 아무리 선량한들 결국 이 역시 나의 편의를 위한 처사였다. 당연하게도 이는 평당원의 정치참여를 저해한다.


그럼 586세대는 어땠을까. 그들도 같은과정을 거친 게 아닐까. 1987년 민주화 당시 그들은 순수했다. 독재를 끝내자,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를 건설하자, 모두가 평등한사회를 건설하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거리에서 최루탄 냄새 맡아가며 싸웠다.

영화 1987의 한장면

그런 586은 1990년대, 정치권에 입문한다. 처음에는 변두리에서 작은직함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했다. 따라서 기존 중진정치인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젊은친구들이 열정은 출중한데 아직 경험이 부족해. 젊은 것들이 겸손해야지"하는 소리를 들었을거다. 그런 현실의 장벽에 부딫혀가며 언젠가 우리가 정치의 중심이 되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실제로 여러 586정치인의 회고록이나 인터뷰를보면 이런 대목이 자주 나온다. 바야흐로 2000년대, 세기말에서 세기초로 접어들며 586은 권력의 중심에 섰다. 국회의원이 됐고, 장관이 됐고, 청와대 비서관이 됐다. 드디어 자신들의 의지대로 무언가 해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나. 세상을 바꾸자던 사람들이 세상이 아니라 그들 자신을 바꾼듯 무언가 이질감이 나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 586들은 뭘했나. 그들의 자녀는 강남아파트에 살게됐다. 자녀는 특목고를 거쳐 명문대에 진학했다. 그에 반해 우리가 사는세상은 여전히 팍팍하다. 2023년 여름, 하청에서 일하는 선배를 만났다. 선배는 팍팍한 하청노동에도 '노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586이 건설해놓은 세상에서, 노동자는 여전히 노조하기를 두려워한다.


김대중, 노무현정부를 거쳐 2017년, 더불어민주당은 마침내 정권을 재탈환한다. 촛불을 든 시민혁명의 결과였다. "이번엔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나도록 달라진건 없었다. 재벌은 여전히 강하고, 부동산은 폭등했고, 비정규직은 늘었다. 시민사회는 586과 진보진영에 실망하다 못해 배신감을 느낀다. 그 배신감에 대한 586의 변명이 뻔뻔하다. "우리도 노력했어. 하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더라."는 변명이었다. 결국 경계하던 '독재'를 되살려낼 인물에게 정권을 넘겨주고 말았다.


미헬스의 이론이 여기에 잘 들어맞는다. 변혁을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보수적이게된다는 법칙? 말이다. 권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던 일부가 그 세상에 포섭되면서 그 세상을 유지하는 일에 일조한다. 인간의 본성 때문일까 아니면 권력의 속성탓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시계를 조금더 뒤로 돌려보자.


1956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대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손에는 헝가리국기를 들고, 입으로는 절절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소련군은 헝가리에서 물러가라!", "자유를 달라!", "민주적인 사회주의를 원한다!" 그렇게 소련의 위성국 헝가리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이들은 헝가리가 서방세계에 포함되길 원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사회주의자를 자처했다. 다만 소련에서 스탈린체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억눌러왔던 소련식 일당독재를 문제삼았다. 당시 헝가리는 소련의 위성국이었다. 1949년부터 집권한 라코시 마차시 정권은 스탈린체제의 충실한 복사판이었다. 소련의 사례를 잘 반영한 비밀경찰이 사복차림으로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정치범수용소가 곳곳에 들어섰다. 인구 950만 명 중 15만 명이 정치범으로 수감됐다. 100명 중 1명 이상이 정치적인 이유로 감옥에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백재민 작가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16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