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있음**
휴....하.... 왜...... 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지.......
영화를 보고 난 뒤 내 혼잣말이었다.
글을 시작하기 전 우선 나는 박찬욱 감독님의 열성팬이라는 사실을 밝혀두고 싶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뺀 모든 작품을 다 봤고, 내 인생 작품 톱3엔 <헤어질 결심>이 들어가있으며, <복수는 나의 것>처럼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박찬욱 감독만이 다룰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장면들과 노골적인 목소리에 대해 늘 엄청난 황홀함을 느꼈었다. 누군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누구냐 물으면 망설임 없이 0.1초만에 찬욱팍!!! 이라 말하고, 대학교 면접장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작가로 정서경 작가를 말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리뷰 또한 최대한 쓰지 않고 혼자만의 감상평으로 남겨두려 했다. 그 이유는 유튜브를 조금 보니, 이 영화를 좋게 본 사람들과 나쁘게 본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아... 평소라면 감상문을 바로 썼겠지만 내가 워낙 박찬욱 감독님의 팬이어서도 있고 여러 이유를 생각해서 쓰지 않으려 했으나 결국 노트북을 켰다...
아무튼 <어쩔 수 없다> 또한, 일부러 평점을 보지 않고 극장으로 갔을 만큼 큰 기대를 했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내가 판단하겠어!" 라는 마음으로 일절 보지 않았고, 어차피 박찬욱 감독님의 모든 작품들은 내게 '극호'였기 때문에 설사 내 마음에 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심지어 도입부, 네 가족이 아름다운 주택 앞에서 서로를 끌어안는 그 엄청난 미장센을 볼 때도 입틀막을 하며 진짜 너무 미친 개기대돼!!! 하며 눈물흘릴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모든 작품에서 '황홀해서 토 나올 것 같은' 심정을 느꼈던 내가 네이버 평점 6점을 ... 아무튼 그런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 영화를 내 시선으로 느낀 리뷰를 남기고자 한다. 완전히 주관적이고 철저히 나의 개인적인 시선이며, 나는 지식인도 시네필도 아니고, 재미있게 본 당신의 의견도 매우 존중한다는 것을 우선 밝히고 싶다.
나는 <어쩔 수가 없다>라는 영화의 주제보다는 시나리오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의 부족한 식견으로.. 내게 왜 이 작품의 메세지가 잘 안 와닿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시나리오에 대해 우선 제일 말하고 싶었다. 영화의 주제나 블랙코미디적인 요소, 메타포에 말하기도 전 나는 이 작품을 볼 때 이 점이 제일 명백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 영화의 주제는 전혀 어렵지 않다. 한 줄 줄거리만 보아도 우리 모두는 이 작품이 무엇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다. '취업을 위해 경쟁자 3명을 죽이려고 하는 평범한 가장의 이야기.' 해서 이 쉬운 주제에 대해 왈가왈부 이야기하기 전에, 이 쉬운 주제를 그렇다면 어떻게 재미있고 기발하며 깊게 이야기하고 있는가가 내게는 핵심이었다.
주인공 만수의 욕망은 무려 '살인'이다. 작품을 볼 때 이보다 더 보는 이를 매력적으로 끌어당기는 초목적은 없다. 살인. 살인이 목적이 된 순간 그것이 복수든 뭐든, 보는 이들은 자연스레 긴장을 하게 되고 이 주인공이 살인을 성공했으면/실패했으면 좋겠는 두 가지의 모순적인 감정에 놓이게 된다. 마치 <기생충>의 기택 가족이 김 사장네 집을 점점 좀먹을 때, 성공했으면/실패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이 작품을 보며 목적이 무려 '살인'씩이나 되는 만수의 욕망에 납득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 살인의 당위성을 명확히 찾지를 못했다.
첫번째로, 주인공의 행동이 납득되지 못했다.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불친절한 극본은 관객이 볼 때, '굳이 저래야 해? 왜 굳이 저렇게 해? 저렇게까지?'라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그 순간부터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주인공과 관객은 분리가 되기 시작하며, 관객은 주인공에 몰입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제 3자의 시선으로 관망하게 된다.
나는 일단 만수의 행동이 내내 납득되지 않았다.
물론 만수가 이들을 죽이는 이유는 대략 알고 있다. 마트 일도 그 어떤 노가다도 하지 않고 굳이 사람을 죽여가면서까지 그가 제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곧 만수의 정체성이자 자존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에 대해 친절히 말해주지 않고, 그 때문에 나 포함 적지 않은 일부 관객이 "굳이 사람 죽여가면서까지 해야해?" 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연출이나 시나리오 측면에서, 만수가 왜 꼭 살인을 해야만 했는지 보다 더 명백하고 간결하게, 직관적으로 알려줬으면 하는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있다.
결정적으로, 내 시선에서는 만수가 그들을 죽이려고 하는 이유가 영화 내에선 “취업을 위해서”로만 보였지, “집 팔지 않고 권위 있는 가장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로는 보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취업하겠다고 살인을 해야하는가, 누구를 죽이면서까지 펄프맨이 되어야만 하는가, 하며 내가 의문을 가진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만수가 당장 집안의 생계보다는, 가장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모습에서 묘한 아이러니가 터져나오긴 하지만 나는 이것 자체가 영화에서 와닿지 못했다. 해서영화의 큰 메세지인 ‘만수가 필연적으로 살인하려는 이유’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못하여 살인의 납득성, 즉 개연성을 찾게 됐다는 것이다. 고작 그것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려 고군분투하는 그 모습이 황당하고 해서 고추잠자리 씬이 그 대미를 장식하긴 했지만, 팽팽한 몰입감을 선사하지 못한 바람에 작품에 빠져들려하면 자꾸 현실로 돌아와서 ‘굳이 저래야 되나?’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단 것이다.
<기생충> 또한 이야기로만 보면 저게 말이 되나하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와 유머가 탄탄하게 관객을 이끌어서 관객은 개연성 따지기도 전에 그냥 작품을 즐기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는 우화 같은 작품의 톤에 스며들어 개연성에 눈감으려 하다가도 삭제해도 되는 장면들이 자꾸 길어지는 순간들이 오면, 틈틈이 현실로 돌아와 ‘근데 굳이 저래야만 하나?’라는 현실적인 개연성의 의문을 갖게 만든다.
두 번째로, 쓸데없이 길게 느껴지는 '없어도 됐었을 장면들'의 분량이었다.
만수는 구범모(이성민 분)를 죽이려던 과정에서 그의 처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점점 살인에 망설임을 느낀다. 그러는 과정에서 구범모의 부인 아라(염혜란 분)가 바람 피우는 것을 목격, "이렇게 뼈빠지게 일했는데 부인이 바람을 펴?"라며 자신도 모르게 구범모에게 자신을 대입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만수의 부인 미리(손예진 분)와 치과의사(유연석 분)의 묘한 썸씽 에피소드가 갑자기 피어오른다. 이 과정에서 만수는 살인을 하려다 말고 갑자기 미리와 부부싸움도 하고, 미리를 따라서 댄스파티도 간다. 나는 이 장면들이 모두 지나치게 길다고 느꼈고, 이 시퀀스 통째로 아예 삭제를 해도 이 영화의 서사에 전혀 영향이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유는 첫 번째, 어차피 미리와 치과의사는 결론적으로 불륜관계가 아니어서 서사에 아무 영향이 없었고 두 번째, 미리와 치과의사가 썸이 없었어도 어차피 만수는 아라의 불륜을 본 순간 구범모의 처지를 자신과 동일시 했을 것이고 세 번째, 미리의 역할이 중요하긴 했어도 이만큼의 긴 분량을 차지하는 것이 필연적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살인이라는 제일 팽팽한 몰입감을 주는 과정에서 미리와의 삭제해도 되는 분량이 너무 긴 장면을 차지하다보니 자연스레 나는 만수의 살인이라는 목적에 긴장의 끈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아들의 도둑질 에피소드 또한 이 영화에 그만큼 긴 분량을 차지했어야 했나 싶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단순히 영화의 쾌락적, 스피드적인 속도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들과의 에피소드에서 만수는 다시금 아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내가 이 짓하는 건 우리 가정을 위해서야!'라는 내면의 심정을 보여주지만, 영화 전체의 서사를 보았을 때도 부인 미리의 에피소드가 앞서 너무 길었으니 아들과의 에피소드는 아무리 생각해도 최대한 쳐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들과의 에피소드가 이렇게까지 길게 필요했을까, 만수의 내면의 심정을 최대한 간결히 보여주고 바로 다음 살인으로 넘어가야 하지 않나, 라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다.
아들 에피소드 뒤였나 앞엔 고시조(차승원 분)를 이제 죽이려고 하는데, 나는 이쯤되니 영화관에서 "아. 만수의 목적이 뭐였더라?"라고 생각하게 됐다. 한창 팽팽하게 주인공에게 몰입해야 하는 영화 중반부인데, 무슨 드라마 보는 것처럼 느긋했던 것 같다. 애초에 이러한 시놉 구조도 드라마의 에피소드 형식과 유사하다. 주인공의 큰 목적은 살인, 그 과정에서 부인과의 이야기, 아들과의 이야기... 비슷하게 살인을 목적으로 하는 <복수는 나의 것>과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서브 에피소드는 나오지만, 절대 주인공의 목적을 까먹게 할 만큼 길지도, 느긋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작품들을 모두 팽팽한 몰입감을 가진 채 봤고 단 한 번도 주인공의 목적에 대해 의문이 들지도 않았다. 그것이 바로 시나리오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추가로, 최선출(박희순 분)의 산장에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시퀀스를 볼 때도 몇몇 장면에서 나는 '이 장면은 삭제해도 됐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술 마시는 장면과 대사가 지나치게 많다고 느꼈고 불멍을 하러 나간다 할 때 "이제 드디어 죽이는 구나, 드디어 긴장이 되겠다" 싶었는데 거기서도 둘은 정말 불멍을 하고 심지어 만수는 미리와 영상통화를 한다. 이렇게만 말하니 내가 무슨 영화에 도파민만 쫓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겠는데, 내가 많은 영화를 본 시네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중이 볼 때 지루하다고 생각될만한 다양한 예술 영화도 본 편이었는데도 없었어도 서사와 주제 전달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삭제해도 될 장면들'이 막판에 아주 많이 느껴졌다.
세 번째로, 조금은 방해되는 미장센과 연출과 메타포들이었다.
물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도 너무 잘 알겠고, 박찬욱 감독의 광팬이기에 그의 스타일에 나는 깊이 적응을 한 관객 중 하나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조차 여태 본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제일 메타포가 많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중심 사건(만수의 살인)에 팽팽한 몰입을 갖기가 어려웠다. 이제 드디어 살인을 저지르겠다! 긴장감을 가지려 하면 아름다운 미장센과 연출이 나오고, 저들의 대화에 집중하다가도 무수히 많은 메타포가 나오니 저건 또 뭘까 생각하게 되니 중심 사건이 되려 산만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직관적이지 않은 대사들이었다.
자연스레 같은 블랙코미디 장르에 한 가족이 나오는 <기생충>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기생충>은 플롯이 매우 단순해서도 있지만 영화를 볼 때 한 번도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라며 이해가 안 된 적은 없었다. 대사가 이해하기 쉽고 반지하나 와이파이 등등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것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일테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에서는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감독만의 세계에 빠진 듯한 대사와 장면들이 무수히 많았었다.
이를테면 마지막, 형사(오달수 분)가 찾아와 고시조와 구범모가 사실 아는 사이였다며 아라가 남편의 죽음에 대해 슬퍼하는 척 연기를 할 때, 장면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이게 지금 뭔 상황이지?'라며 그들이 하는 대사를 한참 분석하듯이 들었다. 뒤늦게 유만수가 대충 "아 그래서 이 사람이 이 사람을 죽였다고요?" 할 때가 되어서야 상황을 이해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그냥 쉽게 말할 수 있는 대사를 꼬고 꽈서 하는 대사들이 이처럼 많았던 것이다. 그냥 곧장 알기 쉬운 직관적인 대사가 아니라... 그래서 그런지 아라가 우는 연기를 하는 것도 웃겨야 하는 장면인데 극장 내에서 단 한 명도 웃지 않았다.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 또한 웃지를 못했다.
이러한 장면들이 한두 개면 흐린눈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을 텐데, 문제는 이러한 장면과 대사가 너무 많아서 그냥 직관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처음엔 내가 멍청한 건가? 이런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나는 여전히 최선출이 얼마나 중요한 인물이었는지, 왜 중반부까지 연출을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 것처럼 했는지 스토리적으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초반부 만수가 경쟁자를 찾기 위해 신문지에 광고를 내는 시퀀스도 처음엔 바로 이해를 하지 못했다. 이처럼 박찬욱 감독 특유의 내가 '황홀해하는' 연출이 과하게 남발되니 오히려 이야기를 곧장 이해하지를 못해서, 영화를 다 본 뒤에야 "아 그게 그런 장면이었구나"하며 이해하게 되는 웃픈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그렇다고 평점 3점 이하의 졸작은 당연히,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현대사회에서, 종이를 만들기 위해선 나무를 어쩔 수 없이 잘라야만 하는 제지회사처럼, 만수 또한 살기 위해선 경쟁자를 어쩔 수 없이 쳐내야만 한다는, 갈수록 서바이벌 구도가 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구조를 통렬히 비판한 좋은 작품이다. 남편의 부정행위를 봤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아야 했던 부인도, 아들도, 사과나무 아래 썩어가는 그들의 성공의 부산물들도,우리 사회가 간절히 현재 필요로 하는 이야기임은 분명하다. 시각적으로도 청각적으로도 매력적인 장면들의 향연이기도 했다. 꼭 다시 이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하다. 씁쓸한 여운이 남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슷하게 정말 '어쩔 수 없이' 유괴를 하고 살인을 해야만 했던 <복수는 나의 것>의 류에 비해, <어쩔 수가 없다>의 만수의 살인에서는 어찌하여 많은 관객들이 의문을 갖고 개연성을 따지게 되는지는 토의해봐야 할 명백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누릴 것을 적당히 누리는 만수가 고작 취업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권위 있는 가장의 품격,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서이고 이건 어쩔 수 없다며 자기합리화를 한다는 장면 자체에서 씁쓸한 웃음이 터져 나와야 하는데, 그 또한 나는 효과적으로 전달했는가엔 의문이 든다. 그러니 많은 관객이 이러한 감독의 의도 자체를 알 수가 없고, 결론적으로 만수의 살인에 납득을 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한 가장을 유지하기 위한 만수의 살인 자체가 이 작품의 핵심적 블랙코메디 풍자인데, 그것이 잘 전달되지 못하니 관객은 우선 이야기를 이해하고자 그 살인의 동기부터 찾게 된다는 것인데 영화에선 그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작품은 거국적인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을 떠나, 우선 시나리오의 기본인 "관객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조용하고 조금 지루할 수 있는’ 걸작이어도 이 기본기를 놓친 작품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에야 만수가 왜 그렇게까지 그들을 죽여야 했는지 나는 홀로 이해했지만, 영화 자체에서 그 살인의 당위성을 명백히 말해준 듯한 느낌은 받지 못했기에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해서 나는 이 영화에 낮은 평점을 주는 대중들을 보고 "도파민에 쩔어 어려운 걸 이해하지도 않으려 하는 대중"이라는 평을 내리는 일부 관객들의 모습이 조금은 통탄스럽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많은 관객이 이 영화에 박한 평점을 준 이유는 절대 이 영화가 '어려워서'가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메타포가 많아 해석할 여지는 많지만 절대 주제가 어려운 작품이 아니다. 다만, 대사가 조금 불친절해서 직관적으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로 알 수 없었을 뿐이고, 거기에 주인공의 초목적과 그 살인의 배경 자체가 흐릿하게 보이니 자연스레 개연성에 의문이 생기는 것 뿐이다. 나는 소위 말하는, 비상업적인 영화들도 재미있게 봤고 단 한 번도 낮은 평점을 준 적도 없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대부> <그을린 사랑> 등등 누군가의 눈엔 재미없을지라도 하나같이 명작들이고, 나는 이 작품들을 볼 때 단 한 번도 주인공의 목적에 의문을 가진 적 없으며 팽팽히 주인공을 따라서 작품을 보았다. 그러나 <어쩔 수가 없다>는 그것에 충실했다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헤어질 결심>과 <아가씨>를 n번 봤을 만큼 열렬한 박찬욱 광팬인 나였기에 오히려 이 시나리오가 최선이었을지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아쉽고 아쉽다... 조금만 거두고 잘라냈다면 너무나 완벽한 걸작이었을 것 같아서, 내 기준에선 이러한 점이 아쉬워서 이렇게 긴 감상평을 남기게 되었다.
끝으로, 다시금 말하지만 재미있게 보신 모든 분들을 당연히 존중합니다. 제 개인적인 리뷰일 뿐이니 혹여 의견이 다르더라도 그러려니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박찬욱 감독님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언젠가 꼭 뵙고 싶은, 존경하는 롤모델임은 분명하다. 다음 작품도 여지없이 나는 보러 갈 것이고, <어쩔 수가 없다> 또한 ott에 나오면 바로 두 번째 관람을 할 예정이다. 이 작품도 열성팬인 나의 기대에는 못미쳤다 뿐이지 수작이라 생각하며, 결론적으로 언제고 내 맘엔 찬욱팍 감독님의 작품관이 황홀경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담뿍 채워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