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연말로 향해 갈수록 서로에게 주는 상처와 피로감으로 얼룩져갔다.
이전 학년에서부터 문제행동을 보여왔다는 그 아이에 대한 정보는 그 아이를 처음 본 학기 초에는 나에게 편견처럼 들렸었다. 내가 만난 그 아이는 털털하고 활발했고 잠재력이 많아 보이는 존재였다. 열심히 공부하려 노력했고 공부한 부분에서는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세은이가 학교 생활을 스스로 힘들게 만드는 곳은 분명했다. 친구들에게 본인은 장난이라 하지만 빈정거리기도 했고 정작 친구들이 자신에게 하는 놀림이나 장난에는 예민하게 반응하곤 했다. 감정 기복이 커 보이는 모습과 다른 선생님들께 예의 없이 행동하는 모습에 학급 친구들을 서서히 세은이를 멀리하고 싶어 했고 두려워했다.
세은이와 상담하는 날이면 그 아이의 깊고 어두운 감정들을 마주해야 했고 그 감정들을 받아주고 희망을 넣어주려 노력했다. "세은아, 선생님이 보기에는 너는 충분히 능력 있고 나중에 주변을 위해서 멋진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누가 뭐라 해도 네 미래는 더 빛날 거고, 니 주변에서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할 거야." 세은이에게 너의 미래는 더 밝을 거라고 응원이자 기도를 하곤 했다. 세은이가 내 기도를 들으며 조금씩 나아져간다고 믿었다.
그 해 여름 세은이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세은이는 여름방학식을 아빠의 장례식으로 오지 못했고 방학식 워크숍이 끝난 나 또한 장례식에 다녀왔었다. 사실상 세은이를 보호하는 세은이의 고모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세은이에게 위로를 남기고 돌아왔다. 검은 상복은 입은 초등학생 아이의 모습은 어색했고 검은 상복이 그 아이에게 너무 무거워 보였다.
다시 개학을 하고 바쁜 가을을 보내고 어느 겨울 아침 시간, 세은이는 아침독서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세은이에게 아침독서 활동에 집중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세은이는 "xx"이라고 조용히 말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주변 아이들과 교탁에 앉아 있는 나에게도 들린 욕설이었다. 나는 세은이를 조용히 불러냈고 욕설에 대해 주의를 주자 세은이가 소리쳤다. "선생님이 우리 아빠예요?! 왜 자꾸 나한테 xx 해요? 그냥 내버려 둬요 진짜!" 세은이의 말이 내 마음을 찢어버렸다. 한 해 동안 세은이를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허무로 돌아간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눈물진 눈과 붉어진 세은이의 얼굴을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마음에 내 기도가 닿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졸업식을 맞이했다.
지금도 이 아이를 위한 내 기도는 남아있다. 부디 나의 마음과 기도가 아직 그 아이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위로와 격려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스스로를 열어 다독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 '누가 뭐래도 너의 미래는 행복으로 빛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