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너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유난히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여요 “
나를 보는 어른들이 모두 했던 말들이다.
지금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철없는 그 자체의 스물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니 성숙한 태도가 아닌 그림진 그늘이 얼굴에 보였던 것 같다.
과거와 달리 남에게 바라지 않고 그저 내가 맡은 일을 잘 해낼 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미워하기보다 ‘그럴 수 있지’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많지 않은 나이에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너무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애정하는 친구를 감싸돌다가 배신을 당해보기도,
존경하던 선배를 쫓아가다 이용당해 보기도,
순수한 마음을 역이용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만나보기도, 뜬금없이 이간질의 대상이 되어 전화로 쌍욕을 들어보기도, 추억을 나눈 친구들의 자리엔 내 이야기가 안주거리로 올려졌단 소리를 전해 듣기도.
모든 걸 내주고 싶던 후배의 입에서 나왔다던 나의 험담 •••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내가 애정하는 만큼 이 사람들도 나를 애정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다름을 인정하며 날 깎아내리지 않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는 없는 걸까.
다 거르고 거르다 보니 내 옆에 남는 사람은 왜 이렇게 없는 건지.
‘내가 사회생활을 뭐 같이 해서 지금 나에게 많은 사람이 없는 거구나’
대가를 바란 행동은 아니었지만 상대가 알아주지 않을 때 난 그 사람을 정리하는 행동을 하곤 했다.
오히려 너무 정확한 선을 그으려 했던 것.
진짜친구와 가짜친구를 분간 지으려 했던 것.
그 행동자체가 난 상대에게 무언갈 바랐던 것 아닐까?
‘그래도 괜찮아!’
남이 아닌 나를 위해 행동하자,
내가 혹여나 다시 아끼는 사람에게 배신당하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안주거리 삼는 친구들이 있더라도,
내가 떳떳한 행동을 했다면, 나도 나와는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면 되고 더 내어주지 않으면 된다.
또, 내가 애정하는 만큼 상대가 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내가 좋아하면 됐다.
‘너의 마음에 내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날 찾는다면 나의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