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힘든 거 아니야”라는 말, 독일까 위로일까.
2024년도 3/4이 흘렀다.
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만 나이 20대 중반이지만, 올해가 지나면 모두가 날 20대 후반으로 보겠지?’
여러분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몇 살로 돌아가고 싶나요?
0~13세 :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 사소한 친구들 관계로 스트레스받았던 기억
14~16세: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놀기만 했던 것 같아, 그래도 지금의 직업을 선택해 준 16살의 나에게 감사해
17~19세: 미용 시작하며 학교-방과 후, 학교-학원, 학교-동아리 제일 바빴던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놀기도 놀았지
20~25세: 인턴기간, 초급디자이너를 거치며 이 길이 맞나 한 백만 번쯤 고민, 결국 기술은 얻었어.
누군가 나에게 몇 살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17~19세의 나이기도한데, 사실 또 스무 살이 오고 힘든 사회 초년생 시절을 겪어야 하니 그냥 지금이 좋다고 할래.
나는 올해 초반만 해도 세상사는 것이 나한테만 어려운 미션인 줄 알았다.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그걸 알아주지 않는 상사.
나는 버틸 만큼 버텼는데, 마땅히 돌아오지 않는 성과. 나는 노력한다고 했는데, 크게 남지 않는 사람.
왜 나는 주변사람들에 비해 성과가 안 나지?
언제까지 나만 불안정해야 하고 언제쯤이면 괜찮아지는 거지?
‘20대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대에 꼭 해야 할 것’•••에 관련된 책, 유튜브 등을 섭렵한 결과, 나도 경험이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불안정한 20대에 ‘굳이?’라는 경험을 해보는 것으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해봐도 후회, 안 해봐도 후회.
그러니 무엇을 해도 약간의 미련은 남기 마련이고,
그러니 나 말고 다른 이들도 조금의 미련을 품고 살아간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고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이 말을 위로로 듣게 된다면 어떨까?
나는 이런 공감력 없는 대문자 T스러운 발언을 너무나도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근데 왜일까. 요즘엔 이 말이 나에게 위로를 준다.
캐나다에서 보냈던 반년의 시간 동안 여러 케이스의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과 정반대의 대륙. 친구도 가족도 말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의 사람들의 불안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또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친구들과 더 스스럼없이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도 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더 큰 불안을 안고 있던 사람, 잘하고 있는데 자꾸만 의심하는 친구, 나보다 어린데도 성숙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보다 보니 ‘아 나만 힘들고 불안한 것이 아니구나’, ‘아니 어쩌면 나는 성숙한 편이었을 수도’
친구가 별로 없다고 생각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가득했던 내가 ’아 나는 나랑 정말 잘 맞는 사람들 이외에는 시간을 함께하는 게 오히려 불편한 사람이구나 ‘를 깨닫고 온 시간들.
이젠 정말 세상은 나만 힘든 것이 아님을 알기에,
오히려 “그래, 다 힘들지. 그니까 나만 우울해있는 건 나약한 거야. 원래 힘드니까 즐겨보자 뭐 어쩌겠어 “
하는 마음으로 털고 일어날 수 있다.
예전의 내가 바랐던 “많이 힘들겠다, 괜찮아?”의 위로는 이제 나를 진짜 힘든 사람처럼 꾸미게 되는 말, 사실은 내가 더 힘들어지는 길이었음을.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는 무언가를 바랐기 때문이었음을. 성과를, 인정을, 사람을.
나의 만족은 밖이 아닌 나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