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첫사랑처럼
모든 건 너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_#70
#일흔 번째 밤_마치 첫사랑처럼
"율아, 이 공룡 이름 기억나?"
"아니요, 모르겠어요."
"정말? 예전에는 공룡 이름 다 알았잖아. 테리지노 사우르스."
"아, 기억나요."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프다는 말을 이런 때 써도 되는 걸까. 아이의 '기억나요'라는 말에 난 깊고 깊은 감정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섭섭함과 슬픔과 공허함 그리고 언어의 집을 찾지 못한 날것의 감정들이 한 잔의 물에 뿌려진 물감처럼 번지고 엉킨다.
갱년기인가? 남자는 갱년기가 없으니 테스토스테론 결핍 증후군이라고 해야 하나. 뭐든 어쩌랴 그저 아이의 시간보다 나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을 뿐.
"오랜만에 고성 공룡엑스포 한 번 갈까?"
"..."
"가는 건 좋은데. 그냥 집에 있을래요."
"왜? 가기 싫어? 예전에는 '파키케팔로사우르스 박치기 공룡이라는 뜻' 그러면서 놀았잖아."
아이는 공룡을 좋아했다. 그리고 나는 공룡박사가 되겠다는 아이를 좋아했다. 아이의 미래에 나의 미래를 덧대어 보며 흐뭇한 미소에 취하곤 했다.
아이와 함께 <슐라이히>에서 나온 공룡 피규어를 모으고, 공룡을 테마로 한 장소를 찾아다녔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고산골 공룡공원'에서 시작해 경남 고성과 전남 해남에 있는 공룡 박물관, 제주도에 있는 공룡랜드,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많은 자연사박물관. 일본에 갔을 땐 공룡 화석이 많은 도쿄 국립과학박물관을 찾기도 했다.
"싫지는 않은데, 멀어서요... 오늘은 집에서 공부하고, TV 보면서 쉴래요."
"그래, 알았어. 그러자."
나는 아직도 공룡의 이름을 기억한다.
덩치가 아주 큰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르스와 아파토사우르스
꼬리곤봉이 매력적인 안킬로사우르스
육식공룡 삼대장인 티라노사우르스와 기가노토사우르스와 타르보사우르스
하늘을 나는 프테라노돈과 케찰코아틀루스
...
열세 살 아이는 공룡을 잊었다. 지금은 나 홀로 떠나버린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로 잊어버리기엔 이름을 찾지 못한 몽글몽글한 느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는 자라고 우리의 교집합은 작아져만 간다. 아이의 꿈에 덧대어진 나의 미래를 거두어야 할 때다.
"아빠, 공룡엑스포 가요. 오랜만에 보고 싶어요."
"그래! 어서 준비해서 가자."
아직 시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