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맞지 않아도 될 줄 알았던 백신을 부스터샷이라는 이름으로 또 맞았다. 같은 건물에 안과가 있어서 나선 김에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점에 들러 돋보기도 하나 샀다. 오후 내내 게으름을 피며 다이어트에 대한 죄의식 없이 먹고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다. 얼마 전 마트에서 사온 대용량 미니웨하스를 양껏 집어서 한봉지씩 껍질을 벗겨서 먹는다. 오늘은 백신 맞고 쉬어야 하는 날이니까 마음껏 먹어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한다.
어릴 적 먹던 기억대로 웨하스를 한겹 입으로 벗기려다 실패해서 탁자에 과자가루가 떨어진다. 요즘 웨하스는 한겹씩 벗겨지질 않는가보다. 한 입에 들어갈 크기로 낱개포장돼 있는 포장지는 한손으로 잡고 죽 뜯으면 끝까지 봉지가 열리도록 편리하게도 만들었다. 크림 맛은 어릴 적 그 맛과 다르게 달달하면서도 적당히 고소하고 또 버터맛과 치즈맛이 함께 느껴지는 고급진 맛이다.
딸기맛, 바닐라맛 웨하스 한봉지를 사서 껍질을 벗기면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길다란 웨하스가 나란히 한 판으로 붙어 있다. 이걸 한 개 떼어서 처음 한 입은 살짝 베어서 맛을 본다. 다음 번엔 앞니로 살짝 맨 위쪽의 과자를 떼어내면 얇고 바삭한 과자 한겹만 떨어져나온다. 고소한 과자를 맛본 후에 또 한겹을 떼어내면 위 아래에 모두 크림이 묻은 달콤한 과자 차례다. 최고의 달콤함을 맛본 후에 맨 아래 남은 크림이 살짝 묻은 과자를 베어문다. 첫 번째 의식이 끝난 후에 두 번째 웨하스부터는 빨라진 속도로 한겹씩 떼어낼 수 있게 된다. 대여섯개 쯤 먹으면 웨하스 봉지가 반쯤 홀쭉해진다. 남은 반은 홀쭉해진 봉지의 윗부분을 반으로 접어 다시 은밀한 곳에 넣어둔다. 웨하스는 반봉지 정도면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까.
어느새 탁자 위에 미니웨하스 빈 봉지가 수북해졌다. 내 배도 수북하다. 주사맞은 팔에 느껴지는 통증이 조금 사그라든 것 같기도 하다. 오늘밤 통증 없이 푹 잘수 있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