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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of war 1

# 37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Observer


폐허가 된 숲에 세워진 임시 주둔지.
막스는 야전 통신기에 연결된 홀로그램 앞에 서서 작전장교와 무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강습 해병의 강하지점 확보 후 복귀 아니었습니까?”
막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억눌린 피로와 분노가 묻어 있었다.

“물론 그랬지. 하지만 예상보다 적의 공군력이 강력해. 아직도 대기권 내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야. 위험을 무릅쓰고 해병대 본대를 상륙시킬 수 없어. 아직 자네들의 능력이 필요한 상황이네.”

“그렇다면 구축함의 궤도 폭격으로 비행장을 타격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작전장교의 목소리가 차갑게 굳었다.
“우린 멍청이가 아니야, 막스 소령. 이미 시도했지. 하지만 놈들의 비행장은 산속 깊은 지하에 구축돼 있어서 효과적인 타격을 줄 수가 없어. 게다가 이미 전선을 형성한 강습 연대를 비행장 공격을 위해 성급히 움직였다간 전선이 돌파당할 수 있는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막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머리 위에서 적 전투기의 편대가 굉음을 내며 하늘을 가로질렀다. 주둔지 곳곳에서 작업하던 해병들이 순간 움찔하며 몸을 낮췄다. 장갑차와 전차 위로 설치하던 광선 차폐막이 펄럭이며 긴장된 공기를 드러냈다. 전투기의 소리가 멀어지자, 병사들은 다시 무표정한 얼굴로 작업에 몰두했다.

통신 너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왔다.
“대기권 내 제공권을 장악하고 대규모 상륙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아. 그 말인즉슨, 자네들의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지. 곧 사령관님과 각 함장들의 작전 회의가 열릴 거다. 결론이 나면 다음 임무를 하달하겠네. 현 주둔지에서 정비하며 대기하도록. 이상.”

홀로그램 속 장교의 모습이 사라지자, 막스는 이를 악문 채 두 주먹으로 야전 책상을 내려쳤다. 무겁게 울리는 쇳소리가 텅 빈 지휘소를 메웠다.

칼리뮤를 제외한 팀원들은 허탈한 눈빛으로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이번이 마지막 작전이 될 거라 믿고 있었기에, 그 좌절은 더욱 깊게 파고들었다.

야전침대에 누워 있던 한 팀원이 깁스 낀 다리를 절뚝이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지독한 피로가 드리워져 있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런 씨발, 대기권 때문에 대기하라니 지랄 얼어 죽을… 그놈들 회의시간 디저트로 그 고귀한 입에 내 똥이나 퍼 넣어주고 싶군.”

순간 칼리뮤는 흠칫 놀라며 커다랗게 눈을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그 욕설은 그녀가 소리라는 것을 듣기 시작한 이래,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날것 그대로의 묵직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얼른 고개를 돌려 장구류를 점검하는 척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팀원들 몇 명이 피식거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야, 야! 소위님 놀라시잖아. 그 걸레 같은 입도 좀 자제해라.”
가장 경험 많은 키시 상사가 나무라듯 말했다.

“칼리뮤 소위, 너무 놀라지 마. 녀석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엔 곧 익숙해질 거야.”
부팀장 바히르 중위가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를 놀리는 듯한 농담이 오가자 팀원들 사이에 웃음이 번졌고, 칼리뮤는 여전히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우물쭈물했다.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동료들을 바라보던 막스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팀원들이 칼리뮤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 같아 기뻤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반드시 이 사람들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막스의 말대로 전장은 온통 날것의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매 순간 터져 나오는 거친 욕설, 긴장을 잊으려 억지로 내뱉는 시답잖은 농담, 그리고 그 사이사이 번지는 웃음소리. 불안과 분노, 피로와 공포가 얽혀 있는 그 원초적인 감정들이야말로,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했다.
며칠간 작은 천막 안에서 팀원들과 어깨를 맞대고 지내던 칼리뮤는, 낯설게도 그 속에서 편안함과 따뜻한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제야 팀원들의 이름 하나하나와 얼굴 하나하나가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며칠 뒤,

그날도 어김없이 모함 아수라와 통신을 마친 막스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팀원들이 돌처럼 굳어 있는 그의 표정을 보자 천막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팀원들이 모두 그를 바라보며 침묵하자, 막스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다음 임무는… 적 제2전투비행단 기지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아무 지원 없이, 저희만 가는 겁니까?”
부팀장 바히르가 조용히 물었다.

막스가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순간 천막 안에 억눌린 숨결들이 흘러나왔다.

“저희만으로 비행장을 장악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자살하라는 명령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번에는 칼리뮤가 나섰다. 항상 조용했던 그녀의 뜻밖의 발언에,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

막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장악이 아냐. 무력화다. 놈들의 지하 활주로에 폭약을 터뜨려 커다란 화구를 만들어낼 거야. 그리고 그들이 활주로를 복구하는 틈을 타 아군 해병대의 본대가 상륙하고, 대기권에 아군의 항공모함을 전개시킨다. 항공모함에서 우리의 전투기들이 이륙하기 시작하면 작전은 성공이야.”

“특수임무대의 다른 팀들은 무얼 하는 겁니까?”
어느새 목소리가 잠긴 또 다른 팀원이 물었다.

막스의 대답은 짧고 무덤덤했다.
“에코팀, 델타팀은 전멸, 나머지 팀들은 우리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할 거다.”
그 말이 떨어지자, 무거운 정적이 천막을 메웠다.

팀원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번 임무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자신들이 에코팀과 델타팀의 뒤를 따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린!”
팀원들의 수심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던 막스가 갑자기 외쳤다.
그 울림에 모두가 고개를 들었다.
“이 전쟁을 끝낸다! 이 작전을 끝으로 우린 지긋지긋한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어! 나는 더는 동료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 더 이상의 절망을 보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이것으로! 전우들의 희생을 끝내고, 이 전쟁을 끝내자. 그리고… 다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짧은 연설이 끝나자, 막스의 눈빛에는 강렬한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래요. 끝내러 갑시다, 팀장님. 이번엔 정말 집에 돌아가는 겁니다.”
가장 구석에 앉아있던 키시 상사가 소총을 들며 조용히 일어섰다.

그의 말이 신호탄처럼,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습니다. 우리 손으로 이 전쟁을 끝내는 겁니다.”
“다 같이 후딱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갑시다!”
흔들리던 그들의 눈빛은 이내 결연한 불빛으로 바뀌었다.

칼리뮤 역시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장구류를 챙겼다. 처음으로 그녀의 가슴에도, ‘누군가와 함께 싸운다’는 실감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전투를 예고하듯, 천막 안에서 무거운 장비 점검 소리와 차가운 금속의 마찰음이 차례차례 울려 퍼졌다.




몇 시간 동안 또다시 울창한 숲을 쉼 없이 가로지른 끝에, 막스의 팀은 잿더미로 변한 산맥을 마주했다. 연속된 궤도폭격이 산줄기를 파괴해 놓은 결과였다. 그러나 산기슭에 난 작은 터널로 전투기들이 들락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적의 비행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신호였다.
팀원들은 잿빛 계곡을 조심스레 건너며 몸을 최대한 낮췄다. 전투복의 표면은 환경에 맞춰 색을 바꿔가며 그들의 형체를 재와 바위에 녹여냈다.

비행장 가까이에 이르자, 그들은 솟아 있는 거대한 바위더미 틈에 몸을 숨겼다. 막스는 쌍안경을 꺼내 한참 동안 비행장 주변을 살폈다.

부팀장 바히르가 조심스럽게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막스는 쌍안경을 접어 파우치에 넣으며 낮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출입구로는 침투가 불가능할 것 같아. 발각될 가능성이 크지. 활주로를 통해 침투하는 게… 가장 안전할 것 같아. 깊게 들어갈 필요도 없이 활주용 터널 출입구 부근에 폭발물을 설치해서 입구를 무너뜨릴 거야."

"저희가 가진 화학에너지 폭탄만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꽤나 견고해 보이는데..."

"충분히 천공을 낸다음 매설한다면 가능할 거다."

그때, 짧은 휘파람이 공기를 가르며 울렸다. 아군이 적을 발견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막스와 바히르는 동시에 몸을 낮추었다.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던 막스는 비행장에서 순찰을 나온 네 명의 적군이 천천히 그들이 숨어있는 바위더미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막스는 손가락으로 간결한 신호를 보냈다.

'적 네 명, 근접 제거.'

막스의 수신호를 확인한 칼리뮤와 다른 세 명이 대검을 뽑아 들었다. 바위틈의 짙은 어둠이 그들의 호흡과 의도를 완벽히 삼켜주었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칼리뮤의 심장 고동도 거세졌다.

그들의 형체가 바로 앞을 지나가는 순간, 그림자처럼 튀어나간 팀원들이 적의 입을 틀어막고, 날카로운 칼끝으로 심장과 경동맥을 찔렀다. 울음소리조차 없는 짧은 비명이 공기 속에서 사라졌다.
칼리뮤도 몸을 날려 가장 작은 체구의 적을 붙잡았다. 팔로 목을 감아 눌러 붙이며 심장을 겨누었다. 그러나 발밑 돌더미가 무너져 내리며 그녀와 적은 함께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등을 바위에 세차게 부딪힌 충격에도 칼리뮤는 곧 정신을 차렸다. 바닥에 떨어진 대검을 움켜쥐고, 다시 적의 몸 위로 올라타 칼끝을 높이 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 두건이 벗겨진 적과 눈이 마주쳤다.

다른 적병과 달리 송곳니조차 다 자라지 않은 앳된 얼굴.
아직 고르게 퍼지지 않은 좁쌀 같은 피부 무늬.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들과 똑같은 보랏빛 눈동자.
그녀의 아래 깔린 소년은 공포에 질린 채 눈물을 흘리며 손바닥을 내밀고 있었다.

칼리뮤의 팔이 허공에서 얼어붙었다.
뒤따라 미끄러져 내려온 동료가 바닥에 쓰러진 소년을 보곤 낮게 중얼거렸다.

"… 아직 어린애잖아."

칼리뮤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손에 쥔 대검을 옆으로 내던지더니, 대신 강하게 움켜쥔 주먹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어린 적병의 머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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