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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of war 2

# 38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https://brunch.co.kr/@6121f01a108340c/79




Observer


팀원들은 포박된 소년병을 바위틈에 앉혀 두고, 그의 처우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우린 포로를 데리고 움직일 여유가 없습니다. 팀장님도 아시잖습니까. 이 자리에서 처리하는 게 맞습니다."
한 팀원이 차갑게 말했다.

"포로를 사살하는 건 명백한 전쟁범죄입니다."
칼리뮤가 곧장 나섰다. 그녀의 시선은 소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겁에 질려 온몸을 떨고 있는 그 모습은,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케리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게다가… 아직 애입니다. 전쟁이 뭔지도 모른 채 끌려왔을 게 분명해요."

"칼리뮤 소위, 자넨 지금 지나치게 감정적이야. 애초에 팀장님의 명령은 ‘사살’이었지, 포획이 아니었다고."
부팀장 바히르 중위가 담담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받아쳤다.

"감정적이라고요? 제가 말입니까?"
칼리뮤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러분은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때문에 가장 쉽고 편한 길만 고르려는 거 아닙니까? 오히려 이성적인 판단을 못 하는 건 여러분 쪽이에요!"

"자넨 지금 그게 이성적 태도라고 생각하나?"
바히르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다.

"그만."
막스가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의 시선은 소년에게 머물러 있었다. 무릎 꿇은 채 울먹이며 떨고 있는 어린 병사. 그 앞에서 막스는 입술을 세차게 깨물었다. 선택은 강요되었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막스가 입을 열었다.
"과정이 어쨌든 지금 이 아이는 포로다. 규정에 따라 우리는 포로에게 안전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팀장님…!"
바히르가 다시 나서려 하자, 막스는 곧바로 말을 잘랐다.
"알아, 바히르.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다. 자네도 네리안이라면 그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 테지."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그리고 칼리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난 더는 불필요한 죽음을 보고 싶지 않다."

막스는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시를 내렸다.
"저격조, 너희 둘은 여기 남아 원거리 관측 및 엄호를 맡아라. 포로도 너희가 책임지고 데리고 있어.
나머지는 군장 정리 후 3분 내로 준비. 돌입 목표는 활주로, 철수 지점은 이곳이다. 임무 종료 후 여기로 다시 집결한다."

명령이 떨어지자, 팀원들은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묵묵히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저격조는 포박된 소년의 옷깃을 거칠게 붙잡아 끌며, 더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 사격 위치를 잡았다.

짧은 침묵 속, 눈에 보이지 않게 흘러가는 파장이 있었다.
팀원들 사이에 번져가는 그 미묘한 긴장과 불편함, 그 이름은 다름 아닌 ‘감정’이었다.

칼리뮤는 안심한 듯 작게 숨을 내쉰 후, 어린 소년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이내 팀원들을 따라 비행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활주로를 품은 터널 입구 앞, 여덟 명의 그림자가 낮게 웅크리고 있었다. 금속 냄새와 먼지 섞인 공기, 멀리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긴장을 더했다.

"12시 방향, 적 두 명 접근. 왼쪽 코너로 몸을 숨기십쇼."

막스의 귓전에 잡음 섞인 단거리 무전기 음성이 스쳤다. 활주로를 관측 중인 저격조의 무전이었다.
막스는 재빠르게 팀원들에게 수신호를 보냈고, 그의 손짓에 맞춰 팀원들은 즉각 왼쪽 벽 모퉁이로 몸을 감췄다. 두 명의 적 병사가 어슬렁거리며 그들이 숨은 쪽을 스쳤고,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사라졌다.

"터널 2층 난간, 쌍안경 든 관측병. 확인 가능한가?"

이번엔 막스가 낮게 물었다. 반응은 빠르게 돌아왔다.

"표적 확인. 사격 가능."

"잠시 대기. 주변의 적이 멀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신호에 맞춰 제거하도록. 셋... 둘... 지금!"

난간 위 관측병의 가슴에서 소리 없는 섬광이 번쩍였고, 그는 균형을 잃고 난간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낮게 울렸지만, 근처를 순찰하던 병사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 가던 길을 재촉했다.

저격조의 무전이 다시 이어졌다.
"생체스캐너 상 반경 50미터 내 적 병력 없음. 작전 속행 가능합니다."

막스는 짧게 "수신"이라고 답한 뒤, 뒤에 있는 폭파조에게 손짓으로 준비를 지시했다.
그는 가슴 파우치에서 소형 지반 분석기를 꺼내 터널 벽면을 스캔했다. 폭발을 유도하기 전에 취약한 지점을 찾기 위함이었다. 분석기는 이리저리 숫자와 그래프를 띄웠고, 막스는 눈살을 찌푸리며 위치를 가리켰다.

"저기랑 저 벽면. 거기 두 곳에 폭발물을 설치하면 터널이 붕괴될 거다."

폭파조 두 명은 천공 장비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지정된 지점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머지 대원들은 숨죽인 채 주변을 감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다.




스코프와 생체 스캐너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적 움직임에 몰두해 있던 저격조 뒤편, 뾰족하게 솟아있는 바위에 묶여 있던 어린 소년병은 서서히 몸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엉덩이 부분의 바지가 부풀어 오르는 듯하더니, 그곳에서 길고 가느다란 초록빛 꼬리가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나왔다. 파충류의 것을 연상시키는 그 꼬리는 소년의 다리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니, 그의 전투화 옆에 감춰져 있던 날카로운 대검을 슬쩍 끄집어냈다.

사각사각—

칼날이 밧줄을 긁어내는 소리가 묘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저격조의 귀는 여전히 스캐너와 스코프의 잡음과 맥박 같은 신호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팀장님, 폭파조 쪽으로 적 다수 접근 중입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저격조 중 한 명이 긴장된 목소리로 무전을 송신했다.

"수신."
막스의 짧고 굵은 대답이 이어졌다.

그 순간, 그들의 뒤에서 돌멩이가 덜그럭 구르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둘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소년병의 몸은 이미 묶인 자리에서 풀려나, 바위 경사면을 굴러내려가고 있었다.

"저 새끼, 도망친다!"
스캐너를 들여다보던 병사가 장비를 내던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개 같은… 그래서 애초에 처리했어야 했다니까!"
또 다른 병사도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저격소총을 자리에 걸쳐둔 채 대검을 뽑아 들고 황급히 뒤를 쫓았다.

소년은 바위더미 아래로 몸을 던지듯 내려가더니, 폐허처럼 벌어진 계곡을 향해 미친 듯 달렸다. 저격조 둘은 날렵하게 바위를 뛰어내리며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러나 소년의 발걸음은 곧장 비행장을 향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의 시체가 널려 있는 곳에서 멈춰 섰다. 작은 가슴이 거칠게 오르내렸고, 눈가에는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불길한 빛이 스쳤다.

다음 순간, 소년은 바닥에 떨어진 소총을 빠르게 들어 올렸다.

“잠깐!”
"이런 씨발!"

저격조는 발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계곡의 적막을 깨뜨리며 몇 발의 총성이 깊은 협곡에 메아리쳤다.




타다당—! 타앙—! 타앙—!

터널 속에서 작업을 마무리하던 팀원들의 손이 멈췄다. 협곡을 울리는 총성. 모두의 시선이 동시에 밖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상황 보고!"
막스가 무전을 보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2층 난간 쪽에 난 철문이 삐걱하고 열리며, 몇 명의 병사들이 소리의 근원을 확인하기 위해 걸어 나왔다.

막스는 지체하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기자, 칙칙— 하는 억제기 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쩍였다. 총탄에 맞은 적들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그러나 막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안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윽고 활주로 안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작전중지! 작전중지! 전원 철수!"

막스가 팀원들을 향해 외쳤다. 활주로 깊숙한 곳과 2층 난간에서, 적 병력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눈에 보이는 적 병력들을 향해 플라즈마 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직 폭발물 설치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무시해! 작전 중지다!"

"팀장님! 문이!"
칼리뮤의 외침. 뒤를 돌아본 막스의 시야에, 거대한 터널 게이트가 굉음을 내며 내려오고 있었다. 퇴로가 차단됐다.

"문에 구멍 뚫어!"
막스의 지시와 함께 폭파조가 철문에 달라붙은 뒤 천공 장비를 작동시키자, 강철 문에서 불꽃이 튀었다.

막스는 다급하게 무전기를 꺼내 채널을 바꿔 아수라의 지휘통제실로 연결했다.

"여기는 브라보팀! 현재 적 비행장 활주로에 고립되었다! 긴급지원요청! 긴급지원요청! "

"비행장 무력화에 성공했나?"
아수라에서 돌아온 무전기소리와 함께 적의 총성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활주로 터널이 폐쇄되어 적 항공기는 당분간 이륙하지 못한다! 상륙작전 가능함을 알림!"

"그래서 활주로 확보엔 성공한 건가, 브라보?"

"이런 씨발! 잔말 말고 상륙작전 개시해!"
그 말을 끝으로 막스는 자신의 소총을 들고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터널을 지지하는 양옆의 기둥들들 제외하면 그들을 가려줄 엄폐물이 거의 없었기에 다가오는 적들을 향해 대응사격을 하기에도 쉽지 않았다.

"수류탄!"
적군이 던진 수류탄이 팀원들의 근처에 떨어졌다.

"바히르! SWG(ShockWave Generator)!"

막스가 외치자 바히르가 품에서 파란색의 권총같이 생긴 장비를 뽑아 들었다. 그가 권총 옆의 손잡이를 돌리자 접철식 개머리판이 튀어나왔고, 그것을 어깨에 견착 한 바히르는 조정간을 'AP(AirPulse, 지향공기충격 모드)'로 전환한 후 바닥에 있는 수류탄과 함께 터널 안쪽을 겨누었다.

"AP!"
주변에 경고를 보낸 바히르가 방아쇠를 당겼다.

펑—! 하고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공기 덩어리가 전방을 밀쳐냈다. 공기의 압력에 따라 각종 잔해들이 힘없이 굴러갔고, 바닥에 있던 수류탄은 가벼운 공처럼 터널안쪽으로 날아가 버리다가 공중에서 터져버렸다. 터널을 타고 매섭게 흘러가는 충격파에 의해 적군 몇 명은 그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사격재개!"
막스의 외침과 함께 잠시 구조물을 붙잡고 몸을 숨기고 있던 팀원들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혼란에 빠진 적군을 향해 플라즈마 빔이 빗발쳤고, 그들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이내 적군의 총알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적의 기관총 세례가 터널 기둥을 갈기며 불꽃과 파편을 튀겼다. 파편이 팀원들의 얼굴을 스치고, 벽이 갈라졌다.

"팀장님! 이대로 가다간 전멸입니다!"
바히르가 외쳤다.

"구멍은!?"
막스가 천공 장비로 터널입구에 구멍을 뚫고 있는 폭파조에게 물었다.

"1분만 더 버텨주십시오!"
폭파조가 이를 악물고 천공 장비를 고정했다. 그러나,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이 그의 등을 꿰뚫자, 그는 단말마와 함께 무너졌다.

"엄호해! 폭파조를 지켜!"

막스의 외침에 팀원들이 필사적으로 대응 사격을 이어갔다.
그때, 또다시 수류탄이 굴러왔다.

"SWG!"
"충전 중!"
"젠장! 엄호해!"

키시 상사가 뛰쳐나왔다. 그는 곧장 수류탄을 움켜쥐어 다시 터널 안으로 던졌다. 폭발음이 굉음을 내며 터져 올랐다. 그러나 그가 엄폐물로 돌아서려는 순간—

탕—!

날카로운 총성과 함께 그의 허벅지에서 피가 튀었고, 키시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상사님...! 야이 개자식들아!"
팀원 중 가장 어렸던 병사가 전방을 향해 플라즈마 기관총 사격을 쏟아부은 후 키시 상사를 향해 달려갔다.

"제가 구해드릴게요!"
그 순간—

탕—!

젊은 병사의 헬멧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몸이 키시의 위로 쓰러졌다. 키시 상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돌려 터널 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키시의 헬멧도 붉은 섬광에 퉁겨 나갔다. 두 사람의 시신이 포개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사격이 정확해... 저격수다! 고개 내밀지 마!"
막스가 포효했다.

총알은 더 이상 ‘소리’가 아니었다. 날아드는 죽음 그 자체였다.

터널 안은 이제, 피와 불꽃, 그리고 절망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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