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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ech

# 42

by 더블윤

이 글은 연재 중인 장편 SF소설입니다.
첫 화부터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Girl's


"혁명이요?"
노라가 놀라며 말했다.

리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엔 이전의 분노와 슬픔에 찬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구의 자녀'와 같은 일을 하시려고요?"
노라가 다시 묻자, 리암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놈들과 우리를 비교하지 말거라. 그들은 그저 총과 칼로 이 세상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드려고 하는 놈들이야. GU나 그들이나 결국엔 똑같은 녀석들이란 얘기지.
반면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그저, 삶이고 희망이고 회복이란다. 이곳에서도 삶이란 것이 존재하고 우린 그저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거야. 아니... 사실 우리는 어찌 되든 상관없어.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 만이라도 자신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주고 싶어..."

리암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곳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고 있는지 알고 있니? 얼마나 많은 삶들이 이곳에 버려졌는지를 말이야. 이곳엔 나 같은 범죄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야. 나는 내가 저지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라 말해도 되겠지만... 저들은 그저... 효율을 핑계로 버려진 삶들이지..."

그가 노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는 그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비루한 곳이라도, 그곳에 삶이 있고 여러 감정들이 있어. 그 삶과 모든 감정들은 무시받아 마땅한 것일까?"

리암의 말에서 나는 예전에 노라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곳에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웃으며 각자의 삶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어요. 여기에서의 삶이 만족스럽냐 그렇지 않냐는 내게 중요하지 않아요. 작은 세상에 산다고 해서 그 삶에 웃음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작지만 삶이 있고 웃음이 있는 세상, 분명 노라는 그 세상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노라는 답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지금 아저씨를 움직이는 것은... 복수심인가요?"
노라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리암이 대답이 없자 노라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복수심 때문이라면... 그만두세요 아저씨. 아저씨의 복수심이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어요. 이건...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고, 저는... 아저씨가 또 다른 죽음과 슬픔을 불러오진 않을지 걱정이 돼요."

노라는 리암이 자신을 향해 칼을 들이밀었던 일을 염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노라의 생각은 확고했다. 폭력으론 결코 세상을 바로잡을 수 없다.

하지만 리암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다가 노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흐름을 막을 순 없어, 노라. 그리고 걱정 말거라... 이건 나만의 감정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닌, 모두의 염원이 담긴 일이니까. 너는 이 기회를 이용하기만 하면 돼."
리암은 그 말을 끝으로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밤이 될 때까지 노라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이따금씩 창밖을 바라보며 하나둘씩 거리로 나오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평소와 같으면 모두가 잠들어 있을 야심한 밤. 리암과 몇 명의 무리가 식료품 상점의 옥상에 올라섰다. 텅 비어있던 건물 주변의 골목이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나와 노라는 인파에 갇히지 않기 위해 후드를 눌러쓴 채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건물 위의 옥상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확성기를 손에 든 리암이 사람들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올라섰다. 그리고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오르비트 전역의 동지들이여!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위대한 시작의 발걸음을 떼고자 합니다.

저는 리암입니다. 이 기지의 가장 밑바닥, 빛도 닿지 않는 모듈에서 당신들과 함께 살아온 사람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잊은 채, 숨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고, 침묵을 나누며 버텨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참혹한 통제의 그늘아래 무언가를 잃었고, 누군가를 잃었습니다. 질서의 이름아래 침묵을 강요받고 자유를 빼앗긴 채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의 존재는 하나의 기계 부품으로 취급되어 쓸모를 다하면 버려지는 하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는 힘을 잃은 채, 하루의 허기를 채우기에 급급한 삶을 지속해 왔습니다.

그러나! 떠올려 봅시다, 여러분!
먼 옛날의 인류는 꿈을 꾸며 살아왔습니다.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었고, 노력하는 자는 누구나 그 기회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름은 존중되었고, 공공의 선을 이루기 위한 목소리들이 드높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존재의 가치는 쓸모가 아닌, 살아 숨 쉬는 그 자체로 소중했던 시기가 우리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 침묵을 깨고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자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군가에 의해 살아지는 삶을 거부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우리가 선택하며, 이제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고자 합니다!

저물어가는 빛 속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존재가 아니라, 떠오르는 빛을 보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는 존재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반복되는 생존의 고통이 아니라, 치유를 통해 회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기억해 내십시오! 이 기지는 우리의 손으로 지어진 곳입니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땀으로 이 터전을 일구어 냈지만, 우리의 아이들은 이 공간에서 다가오는 내일을 꿈꿀 수도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기지의 법에는 우리의 이름이 없다.
배급표에 빠져있는 우리의 삶엔, 우리의 목숨을 기억하는 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유령이 아니며, 도구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겸허한 마음을 담아 선언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오르비트의 헌장을 폐기하며,
우리는 GU의 통제를 거부하고,
이곳에 사는 자들의 이름으로 새로운 질서를 세울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는 피로 쓴 법이 아니며!
그것은 억압의 반대말이 아니고!
그것은 존엄의 회복이며!
그저 인간답게 존재하겠다는 선언입니다!

나는, 우리는 영웅이 아닙니다!
하지만, 더는! 겁쟁이로 살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와 같은 이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걷고, 말하고, 요구하고, 마침내 선택합니다!

동지들이여!

우리가 조용했던 건 겁이 났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말할 언어가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젠 그 언어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외칩니다!
살아지는 삶이 아닌, 살아가는 삶을 살기 위해.
저물어가는 빛이 아닌, 떠오르는 빛을 보는, 희망으로 살기 위해.
회귀하는 회복이 아닌, 치유하는 회복을 위해.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의 존재를 선언합니다!

여기, 오르비트에서!

이 우주의 가장 밑바닥에서!

우리는 하나의 인간임을!

큰 발걸음과 함께 시작합시다!

더 이상의 고통도! 더 이상의 눈물도! 더 이상의 폭력과 전쟁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우리 손으로 다시 한번 만들어갑시다!”






리암의 우렁찬 연설이 끝이 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몇몇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윽고 혈기왕성한 남성들이 공중을 향해 주먹을 치켜올리며 사람들을 향해 무언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행정구역으로 가서, 우리의 의지를 보여줍시다!"라고 외치며 그들을 이끌고 빈민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골목을 가득 매웠던 사람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비폭력을 지향하는 그들의 외침이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리암 아저씨말대로 하죠, 칼리뮤... 우린 이 기회를 이용해야만 해요..."
노라의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가 우리의 앞길을 제시했다.
그의 말은 정답이 아닌 선택이었다. 나는 그 차이를 깨닫고 있었고, 그렇기에 그가 느끼고 있을 법한 복잡한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요. 우린, 우리의 길을 나아가도록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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