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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다시, 코스모스를 꿈꾸다

Rekindling cosmos

by 더블윤


코스모스는 과학을 낳았고,
과학은 문명을 이끌었으며,
문명은 다시 코스모스를 향해 나아간다.


인류의 불완전함은 오늘날 우리의 의식 변화를 통해 완전함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앞서 살펴본 여정을 통해, 우리는 인류가 오랜 시간 과학이라는 거대한 수레를 끌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수레는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멈출 수 없었다.
과학이 담고 있는 지식은 생존을 담보했고, 기술은 문명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지금, 그 수레는 더 이상 바깥을 향해 달리는 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지금, 수레를 밀어온 ‘우리 자신’이 변화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과학은 수차례의 혁명을 이끌어내며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왔다. 고인류에게 코스모스를 관측하는 행위가 곧 과학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문명의 토대를 놓았던 농업혁명 또한 과학이 낳은 혁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농업혁명 이전에도 호모 사피엔스는 이미 한 차례 놀라운 전환을 경험했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규정한, ‘허구를 믿는 능력의 탄생’이라 불리는 인지혁명(Cognitive Revolution)이 그것이다.


인지혁명은 인류학과 진화심리학에서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시기를 가리킨다. 그전까지 호모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 등 다른 인류 종과 기술이나 사회 구조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인지혁명 이후, 인류는 복잡한 언어와 추상적 사고, 그리고 대규모 협력 체계를 갖추게 되었고, 이는 다른 종을 압도하는 결정적 우위를 부여했다.

허구를 상상하고 말하며 상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인류는 단순한 의사소통을 넘어, 과거와 미래, 그리고 가상의 사건까지 설명하는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게 되었다. 이는 집단 내부의 정보 공유와 규범 형성을 가능하게 했고, 상징과 추상적 사고는 동굴 벽화, 조각, 장신구와 같은 예술품을 낳았다. 종교와 신화 같은 허구적 서사 역시 이 시기에 탄생해, 공동의 믿음과 상상력을 형성했다.

이 능력은 고인류가 친족을 넘어 ‘공동 신념’과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수백, 수천 명 규모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었고, 결국 더 크고 복잡한 공동체, 곧 문명의 씨앗을 틔우게 했다.




거대한 의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인지혁명이 오래전에 있었던 한차례의 사건으로 끝이 났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르네상스시기 인류는 과학혁명을 통해 또 다른 의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나는 이 시기의 의식의 전환이 인류의 '2차 인지혁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성 중심의 세계관이 중심이 되어 신 중심의 질서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변화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존재의 근거를 이성에 두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인류에게 자연은 신의 신비가 아니라 이해·예측·통제 가능한 체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 등이 ‘코스모스의 수학적 질서’를 발견했고 이는 사회와 문명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정치는 권위의 정당성이 전통에서 합리적 논증으로 이동했고, 경제는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한 상업·산업 구조 개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철학은 실증적 방법론이 윤리·정치철학까지 확산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1차 인지혁명이 “무엇이 진리인가?”를 신화와 이야기로 풀어냈다면, 2차 인지혁명은 “무엇이 사실인가?”를 실험과 수학으로 검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2차 인지혁명은 인간이 신의 언어로 쓰인 책을 읽는 시대에서, 자연의 언어로 쓰인 수학의 책을 읽는 시대로 나아간 순간이었다.




과학은 농업혁명과 네 차례의 산업혁명을 통해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과학은 2차 인지혁명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인류는 코스모스의 회복을 위해 또다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 과학이 이끌어 내야 할 혁명은, 문명이 맞이해야 할 혁명은, 5차 산업혁명이 아닐 것 같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은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류의 의식과 가치 체계가 근본적으로 전환되는, '3차 인지혁명'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단지 문명의 변화와 과학의 역사를 따라가는 기록이 아니었다.
우리가 잃어버렸던 코스모스를 다시 바라보려는 시도였고,
그 코스모스를 되찾기 위해 어디로,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과학은 인간과 문명을 바꾸었다. 문명은 한때 길을 잃고 코스모스를 잊었지만, 이제 우리는 다시 그것을 눈앞에 마주하고 있다. 그 목전에서 우리는 다시 인류의 문명과 과학을 다시 돌이켜보았다.

이제는 인간이 과학과 문명을 바꾸어야 한다.
보다 정밀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내면이 진화함으로써 과학의 다음 진화를 이끌어야 한다.
진화는 언제나 쌍방향이었다.
우리가 도구를 만들었고, 그 도구가 우리를 바꾸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의식이 깨어있지 않으면 도구는 무기가 되고, 진보는 파괴가 된다.

우리는 과학의 성장을 막고 있지 않다.
과학 또한 우리를 통제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는 서로를 이끌어야 할 차례이다.
내면의 진화가 이끌어낸 새로운 가치관과 인식이
또 다른 과학의 진화를 가능케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학은 인류를 더 나은 문명으로 인도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절벽 끝에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장은,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설계의 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설계란 단지 미래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행위를 일컫는 것이다.


우리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과학을, 문명을,
그리고 다시, 코스모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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