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째근무:편의점2편-시각장애인이야기/직무지도의 어려움
<그림:챗GPT 10/31 출처>
여러모로 힘든 근무지였다.
점장님도 힘들고 민호씨(가명)도 밝지만 힘들었다.
처음엔 발달장애인으로 알고 갔는데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 안보이는 것은 아니고 저시력(Low Vision)이었다.
전맹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이고 저시력은 사람에 따라 다 다른데
민호씨는 색 구분은 되고 버스는 탈 수 있었다. 형태 인식은 가능하나 일반적인 글자는 눈을 사물에 거의 붙여서 보아야만 보였다.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확대경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상품의 큰 글자를 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핸드폰은 어떻게든 봤다.
글자가 큰 데도 보이지 않아 장애인공단에 문의해서 점장님을 통해 시각장애에 도움이 되는 확대경을 신청했다. 확대경이 오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 와중에 입고된 물품들을 명세서와 대조하며 확인해야 했다. 점장님은 도와주지 말라고 지시하는데 민호씨는 전혀 글자를 못 봐서 쩔쩔매고 중간에 끼어서 눈칫꺼 해야하느라 힘들었다.
그렇게 3일을 버티다 진짜 얼마큼 저시력인지, 점장님은 입고된 물품들을 사방에 깔아놓고 어느 정도 시간까지 기다려주실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민호씨. 얼마큼 글자가 안보이는지 알아야 내가 도와주든 점장님을 설득시키든 하지. 얼마큼 안보여? 저기 간판의 큰 글자는 보여요? 여기 맥주캔의 글자는 보여요?"
"아뇨.안보이는데요.그럼 물품확인을 어떻게 해요. 혹시 이 정도 가까우면 보이나요?"
"전혀요. 그럼 이 정도 위치에서 색깔은 구별이 될까요?"
"다 되는 건 아니고 검정, 흰색, 빨간색, 파란색 같은 것은 이 정도 위치면 구별이 되요."
"알았어요. 점장님과 의논해보죠."
"점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민호씨 입고된 물품을 제가 확인하면 안될까요? 제가 끝나고 근로지원인이 오시기로 되어있다는데 제가 해도 되지않을까 싶어서요. 민호씨가 이 정도의 글씨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네요. 색깔만 약간 구분가능하구요."
"처음에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뽑았어요. 그리고 선생님 일이 아니라 민호씨가 해야죠. 저도 황당한게 처음에 면접볼 때 계산도 바코드 잘 찍고 잘 이해하는 것 같아 뽑았거든요.그런데 지금 한달이 넘었는데 말도 못 알아듣고 창문도 제대로 못 닦고 저도 힘들어요. 취업했으면 본인이 어떻게든 해야죠. 근로지원인이가 하는 사람이 일을 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자기가 해야죠. 자기가! 그리고 왜 말이 안통하는지 모르겠어요. 시각에 문제가 조금 있다 들었지 대화도 안되고.하...진짜 화난다구요."
"네.점장님 말씀도 이해가 되요. 저도 시각장애인분은 처음이고 최근에서야 민호님 부모님이 발달장애인 자격을 취소했다고 하셨더라구요. 그것도 민호씨와 대화하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경계성인지 발달장애인지 저도 개인정보라 정확히는 몰라요. 그런데 점장님 말처럼 인지부분에 있어 경계성 장애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자주 대화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여러 번 설명 중이거든요. 그런데 시각이 이력서에 제출한 내용보다 더 많이 나빠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이 정도 위치에서도 색 구분만 가능하다 하니 확대경이 올때까지는 제가 조금 도우면서 하면 안될까요?"
"하......그렇게 하세요." 한숨을 내쉬는데 앞으로가 막막하게 느껴졌다.
이후 확대경이 올 때까지 내가 더 신경쓰고 교육시키기로 했다.
"민호씨. 색구분은 조금 된다하니 글자보다는 맥주는 색이 또렷한 것이 많으니 색으로 상품을 외우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호씨는 상품에 눈을 0.5cm 가까이 두고 일일이 확인하려는 습관이 있었다. 마음은 이해가 됐지만 하루종일 상품을 꼼지락거리며 보려 하였다. 라면봉지나 과자봉지가 형태가 망가져도 문제인데 자꾸 조물딱거리며 글자를 확인하려 들었다.
"아뇨.민호씨. 이러면 이 제품을 누가 사가요. 차라리 이 제품 라인은 붉은색이 많으니 ○라면 이런 식으로 외우세요. 보세요. 두 개 제품 색깔이 달라보이나요?"
"네"
"좋아요. 그러니까 비슷한 색상 외에는 이 라인의 제품은 무엇이다. 이런 식으로 외워요. 그리고 영어는 아나요?"
"몰라요."
"좋아요. 상관없어요. 비슷한 색상인데 글자 큰 것은 보인다니 이렇게 생긴 대문자는 ○○맥주로 외워주세요"
일하는 중간중간 계속 테스트해가며 교육을 시켰다. 한달 정도 되니 잘 팔리는 맥주와 라면, 과자는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색깔로 구분이 가능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질 사건은 터졌다.
마스크를 찾던 손님이 화가 잔뜩 나있었다. 코로나 초창기는 아니지만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던 시절이고 이미 들어오기 전부터 뭔가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던 손님이였다. 마스크가 몇 개 걸려있지 않았는데 유독 가격표가 없는 마스크를 고르고 있었다.
점장님께 가격표를 문의했지만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귀찮다는 식이라 더이상 어쩔 수가 없었다. 설마 저걸 고르겠어. 나도 어쩔 수 없지 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어서 손님이 아무 것도 안 사고 제발 나가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굳이 이 상황에 민호씨가 친절하게 다가갔다.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아니, 여기봐! 여기! 가격이 없잖아. 얼마냐고!"
민호씨가 점장님께 다녀왔다. 그런데 여전히 점장님은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다.
가격표를 확인하는 방법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코드를 찍어보면 될 것을. 당시엔 편의점 직무지도가 처음인지라.
민호씨는 가격표가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엉뚱하게 다시
"제가 볼께요!" 하면서 가격표 명찰을 확인하려 들었다.
손님은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였다. 씩씩거리며,
"아니, 그러니까 얼마냐고!"
나는 속으로
'아니 그러니까 왜 굳이 가격표 없는 마스크를 구매하려 하시냐고요', '아 그리고 점장님은 왜 이 상황에 안 나오시냐구요. 물어봤잖아요. 제가!'
끝까지 점장님은 모른 척 하고 손님은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하고 민호씨는 여전히 명찰을 확인하려 눈을 가까이 대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고...
"민호씨, 저 쪽에 가 주실래요. 다른 상품들 정리 좀 하고 계세요"
"선생님. 죄송하지만 저희가 지금 점장님이 안 계시고 가격표도 안 적혀있어서 게다가 일한지가 얼마되지 않아 가격이 얼마인지를 몰라요. 괜찮으시다면 다른 물건으로 구매를 해주시면 안될까요?"
"아니 뭔데. 저기 저 사람은 편의점 직원 옷을 입고 있잖아. 그런데 뭔데 저 사람한테 당신은 존댓말 써가면서 가격은 모르겠으니 다른 것을 사라하고, 당신은 뭔데! 학씨~~~!"
"아니. 선생님. 진정하시구요. 저는 장애인직무지도원이고 저 분을 지금 담당하는 중이라서요."
"그니까 그건 또 뭔데 그러냐구. 확씨~~~ 장애인 같지도 않은데, 뭔 장애? 뭔 직무지도? 뭐냐고 대체? 그니까 가격이 얼마냐고!"
망설이다 결국엔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저분이 시각장애인입니다. 여기 근무하는 것도 맞고 선생님 말씀 다 맞는데요. 저희가 여기서 일한지가 얼마되지 않구요. 저분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닌데 근무할 수 있도록 제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입니다. 선생님"
정말 다행히 그 한마디에 그 분이 갑자기 정색을 하더니
"아, 죄송합니다" 하고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솔직히 그 순간 '다행이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계속 화를 내고 있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은...
상황이 마무리되자 점장님은 나오셨고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저 자기 일을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민호씨에게 갔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았다.
"민호씨. 아까는 많이 당황했지? 괜찮아?"
"선생님이 뭔데 저를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해요! 제가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아세요?"
아 뭐지. 이 상황은? 화가 났다.
어떻게 일을 수습했는데.
"왜 시각장애인이라 말하면 안되나요? 그럼. 그 상황에서 점장님은 아무 말씀 없고 손님은 화가 나서 폭발하기 일보직전이고 우리는 가격도 모르고. 그럼. 계속 그렇게 있을 꺼예요. 손님들은 계속 들어오고 그러는데!
전 말하기 쉬운 줄 알았어요. 아니예요! 그리고 왜요? 시각장애인은 부끄러운 거예요? 살다가 사람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거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잖아요. 그 상황에 손님은 오히려 이해되지 않으니 더 화가 나겠죠. 뭐가 부끄러워요! 네!"
솔직히 그 날은 점장님에게도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점장님이 츤데레 성격인 것을 알기까지는 한참이 걸렸고 장애인에 대한 안좋은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그런 것도 있고 개인적 성향이 그렇기도 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민호씨가 여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했다.
내가 점장님께 화내고 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편하게 해드려서 둘의 관계가 원만하고 일하기 좋은 근무지가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참았다'. 직무지도 선생님이 두번인가 세번인가 바뀌었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다. 공단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끝내 나오지 않으셨다. 그러니 뭐 어떡해. 어떻게든 웃으며 잘 해봐야지.
사람들은 직무지도원들이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그것만 기억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지 않은 변수가 의외로 많다.
그리고 우습게도 내가 '일 복만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돈 복이 많아야지.'
궁금해졌다.
"민호씨. 왜 이력서에 글씨가 거의 안 보인다고 쓰지 왜 그랬어요?"
"취업이 되지 않을까봐요"
"그래도 다음엔 거짓말로 이력서를 쓰지 말아요. 다들 힘들잖아요. 점장님도 민호씨도 저도.
생각보다 찾아보면 괜찮은 곳도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일할 때 민호씨가 힘들어요."
한달이 지나고나서야 점장님도 민호씨도 안정감을 찾기 시작했다. 서로에게도 익숙해졌고 일에도 능숙해져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나는 끝까지 직무지도 해주겠노라 말했는데 긴장이 풀리자 극심한 위출혈과 경련이 와서 2주를 남겨놓고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장애인이라 말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사실 나는 그날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장애인임을 밝혀야 했으나
누군가의 상처를 파헤치는 것 같아서 안 좋았고 장애가 그렇게 부끄러운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말은 어떤 상황에서도 쓰면 안되는 것인가 고민했다.
장애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비장애인처럼 보이고 싶다는 갈망은 이해가 됐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장애가 부끄럽고 감추어야 되는 일인지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그런 것이겠지.
누군가는 장애가 있든 없든 신경쓰지 않지만 누군가는 그 사람의 약점으로 이용할 수도 있는 것처럼.
늘 병을 달고 살았던 나는 누군가
'어디 아프세요? 왜 이렇게 요즘 안좋아 보여요?" 라는 사람들의 이런 말이 무서웠다.
가깝고 나를 잘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괜찮았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나를 깍는데 이용했다. 내가 열심히 일을 해도 한순간에 "제 원래 맨날 아파. 어디에 쓰기는 하겠어"
"헐. 씨발! 내가 지금 너 일까지 해줬는데 뭐라고?" 확 머리채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럼 경험을 했었을지도 모르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
장애가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누구에게든 늘 쉽지 않다.
더구나 민호씨는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말의 진위여부는 모르지만
내 자신의 상처를 남보다 내가 먼저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은 사실 다른 장애인을 이해하는 것보다 백배천배 더 어렵다.
민호씨 부모님이 인지문제에 있어서 발달장애를 최근에 다시 정정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확대경은 3주후 공단에서 보내줬으나 끝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민호씨는 확대경을 이용해 보는 것을 불편해 했고 사용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막상 나도 이용해보니 성능이 시원하지 않았고 그걸 보는 시간에 색깔로 상품을 외워서 진열하는 것이 더 빠를 듯했다.
편의점에서의 근무는 진짜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