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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많은 츤데레 성격의 종잡을 수 없는 직장상사

N번째 근무:편의점 1편-시각장애인이야기/직무지도의 어려움

by 하루

<그림:챗GPT 10/31 출처>



특별한 근무지였다.

내가 가기 전 짧은 한 달 동안 이미 두 번? 세 번? 직무지도선생님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흔한 경우가 아니다.


여전히 코로나 때라 이름, 전화번호, 근무지장소, 담당자이름과 전화번호만 받았다.

마음 같아서는 어느 쪽을 통해서든 이번 직무훈련생의 정보와 업무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알 수는 없었다.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


민호(가명)씨는 이미 취업이 된 것으로 취업 후 적응지도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 달이 이미 지났다니 이런 경우 사업체 담당자님이 나에게도 업무를 알려줄지는 미지수다. 훈련생이 알아서 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편의점이었다.

업무는 물품 매장진열, 계산, 유리창과 바닥 등의 편의점 청소, 새로 입고된 물품 목록과 개수 확인, 냉장고 채우기 등이었다.

잘한다고 들었다. 그렇겠지?


아침 일찍 미리 출근했다.

"점장님 계실까요?"

"곧 오실 거예요. 왜죠?"

"제가 ○○○님 장애인 직무지도원이라서요"

귀찮음이 잔뜩 묻은 아르바이트생의 대답을 듣는 그때, 얼굴에 짜증이 한 가득 섞인 여자분이 후다닥 들어오셨다.

"얼음 이따위로 관리하니! 내가 뭐라 했어!"

아르바이트생의 굳은 표정 하나로 모든 것이 읽혔다.



"뭐예요!"

"아. 제가 민호님의 새로운 직무지도원이라서요. 안녕하세요."


민호님이 일을 시작하자 지켜보기 위해 곁에 가는데 그때 들은 첫 말.

난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아. 그냥 내버려두세요. 지가 알아서 하겠죠. 뭐 해? 빨리 창문 닦으라고! 식탁도 닦고!

라면국물 버리는 쓰레기통도 깨끗이 닦아! 안 움직이고 뭐햐냐고!"

민호 씨는 다그치는 소리를 듣고도 굼뜨게 움직이며 멀뚱멀뚱 서있기만 했다.


"점장님. 제가 어떤 일을 해야 되는지 우선순위를 알면 지도하기에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아뇨.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핸드폰으로 출퇴근 기록도 못하고,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이상한 말만 늘어놓고... 아... 진짜...일은 하나도 순서를 기억 못하는지. 지시할 때까지 멍때리고..."

"그럼. 제가 확인을 해보겠습니다."


핸드폰은 정말 복잡한 문제였다.

자기 핸드폰이라는데 앱을 깔 수가 없었다.

망가졌다고 한다. 구매를 하라고 했는데 집에선 기다리라 했다 말하고 다음날은 수리를 맡겼다고 하고 다음날은 부모님 명의라 하고...부모님과는 연락이 되지 않아 누나와 간신히 연락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2주가 걸렸다.


그런저런 것들이 겹쳐 점장님의 짜증은 하늘을 치솟고 있었다.

5시간 근무인데 잠시도 앉아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보통 4시간 알바여도 장애인 특성상 잠깐씩 휴게시간을 준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문의를 했다.


"점장님. 계약서에는 30분 휴게시간 보장이라 되어있는데 잠시 휴식을 취해도 될까요?"

"그런 것 없어요. 쉬긴 왜 쉬어요! 왜 앉아요!"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아 공단에 조정을 요청했다. 확대경 때문에 나왔지만 단 한마디도 점장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된 선배의 말이 맞았다. 공단은 취업률만 생각하지...

근무지 환경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그리고 직무지도선생님들의 처우도 생각지 않는다고.


포기하고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장님은 진짜 매일 1시간씩 민호님을 세워놓고 잔소리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정작 손님이 오면 매장 재고정리를 이유로 창고 안 컴퓨터실에 있거나 계산대에 있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내가 죽을 맛이었다. 공단은 끝내 어떤 조치도 없었다. 나오겠다고 말만 했다.






나도 짜증이 늘었지만 어쨌든 적응하고 있었다.

편의점 창문만 닦는데도 느릿느릿. 2시간에 걸쳐 창문전용세제를 다 뿌려가며 청소가 되는지 안되는지 발전도 의욕도 없이 하던 어느 날 점장님이 폭발했다.


"도대체 몇 시간 동안 닦는 거야. 왜 선생님이 일하게 만들어. 네가 해야 되지! 잘 안 보이면 열 번씩이라도 세면서 제대로 닦으라 했지!"


그러자 민호 씨가

"아잇... 진짜! 건들지 않으면 좋겠는데... 미치겠네!"


순간 당황했다.

점장님도 민호 씨도 위기촉발전이다.

민호 씨를 데리고 나갔다.


"민호 씨. 점장님이 짜증이 많은 게 사실인데 이렇게 하염없이 눈 풀린 채 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 누가 좋아하겠어.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아니. 맨날 짜증 내잖아요. 진짜 그냥 건들지 않으면 좋겠다고요!"

"그럼. 민호 씨는 일하지 않을 생각이야? 얘기해 봐. 아님 누나랑 의논해 보고 말해요."

"아니요. 전 진짜 일을 할 거예요. 그런데 계속 그러니까. 어쩌라고요!"


결국 점장님과 면담을 했다.

민호 씨가 생각보다 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자기 딴엔 진짜 노력 중이고 내가 어떻게든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겠다고.


점장님도 한숨을 쉬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진짜 일 잘할 수 있다고 해서 뽑았는데... 하..."

편의점 직영이라 자기네 지점에만 장애인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고 했다.

예전에 장애인 분이 손님들 앞에서 성기를 드러내며 흥분하고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또 자기에게 맡기냐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제야 점장님의 짜증이 이해가 됐다.


2주를 통해 살펴본 점장님은 성격이 매우 급하고 다소 무기력 상태이며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자신만의 루틴과 고집이 있다 보니 뜻대로 따라와 주지 않으면 지금처럼 짜증을 자주 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참담하게 분을 견디지 못한 장애인분의 노출로 마무리된 것이리라 예측해 본다.

장애인분이 성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분인지 아닌지까지는 일단 열외로 두자. 그 정도까지는 만난 적이 없어서 내 생각엔 화를 분출 못 한 장애인분의 돌발행동일 가능성일 높다고 그리 생각했다. 젊은 점장님이 얼마나 당황했을지도 이해가 됐다.


점장님의 말에 공감하자 점장님도 태도가 조금씩 누그러졌다.

그래도 매일 40분씩 훈화는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점장님이 츤데레 성격이다.

까칠하지만 뜻밖의 상황에서 이해를 해줬다.


나라면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이렇게 일할 거면 퇴근하라고 말하고 싶은 날이었다.


"저. 코로나 걸린 것 같아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열도 있다 하니 조퇴가 낫지 않을까 싶어 점장님께 문의했다.

"그러니까 주말에 어디 싸돌아다니지 말고 점잖게 집에 있으라고 했잖아. 아. 씨."

"그럼 조퇴를 시킬까요?"

"됐어요. 그럼 급여가 줄어드는데 옆에 병원 있으니까 데리고 다녀오세요."


며칠 후엔 아침부터 눈이 파일 모서리에 찔려 근무가 어렵다고 한다.

전날 저녁, 집에서 굳이 파일을 들어 뭔가를 찾겠다고 눈을 한 시간 넘게 가까이 대고 그러다 찔렸다는 거다.


그럼 출근을 하지 말든지.

기어코 출근해서 두 시간 내내 눈이 아파서 일을 못하겠다고 말한다.

점장님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이러니 나도 민호 씨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안과 데리고 다녀오세요. 얼마나 번다고..."

점장님의 두 번째 배려로 안과에 갔는데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저번처럼 눈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다.


"민호 씨. 이건 점장님의 배려예요. 알죠?

종교활동 한다고 매일 돌아다니다 코로나 걸리면 안되죠. 조금은 자제하고.

굳이 눈으로 보겠다고 뾰족한 부분을 들여다보다가 다치면 출근을 못하겠다고 미리 연락을 주던지요.

직장에 와서 병원 가는데 시간을 다 쓰면 되겠어요? 앞으로는 조심해 주세요"


왜 그렇게 화장실은 또 자주 가는지. 가면 또 함흥차사.


누나와도 이 부분에 대해 상담하고 일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집에서도 관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툭툭 내뱉는 점장님의 말투가 힘들었지만 좋지 않은 경험을 듣고 난 이후에는 모든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리고 민호 씨가 이 일이 좋다니... 그저 도울 방법을 생각할 수밖에...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며 지점이 폐쇄될 때까지 잘 근무했다니, 점장님도 민호 씨도 둘 다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팁>

장애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을 못한다고, 장애인이 흥분했다고 같이 흥분하지 마세요.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조금 기다려주시고 안 되는 것은 명확하게 지시하고 가르쳐주세요. 그래야 서로가 편합니다.


감정이 올라오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누구나 감정이 달리기 시작해요. 결국 사실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싸움에 휘말리고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공단이든 복지관이든 전화해서 사정을 얘기하세요. 조율이 되면 가장 퍼펙트이지만 안 될 경우 어떻게든 훈련생과 라포를 형성하며 이해시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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