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알림 13통>
책상 서랍에서 꺼낸 휴대폰 화면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재 목록을 보니 내사랑♥ 다섯 통, 02로 시작하는 같은 번호에서 여덟 통이나 전화가 와있었다.
재빨리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남편이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어디야?”
“어디긴, 학교지.”
“아파트에 완전 난리 났다던데? 나 지금 일하는 중이라, 경비 아저씨한테 빨리 전화해 봐!”
아, 02로 시작되는 번호는 아파트 경비실이구나. 근데? 난리가 났다고?
갑자기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아침에 잠깐 켠 커피포트가 합선된 건가?
싱크대 호스가 다시 터져서 아랫집에 물난리라도 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뚜우 뚜우 정확히 신호가 두 번 울리고,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상대방이 잽싸게 전화를 받았다.
“저 704호인데요, 부재중 전화가…….”
“새댁! 혹시 집이야? 앞 동에서 경찰에 신고한다고 아주 난리가 났어. 웬 여자가 빨가벗고 베란다에서 춤을 춘다는데, 새댁 아니지? 딱 말하는 위치가 새댁집인데 옷을 벗고 있다니 거참, 희한하네.”
“아저씨, 저 아니에요. 아침에 커튼도 안 걷고 출근했는데……, 저 지금 퇴근하니까 얼른 집으로 가볼게요. 금방 도착해요”
두 달 전 이사 온 나의 신혼집은 한 층에 여덟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복도식 주공 아파트다.
80년대에 지어졌지만 동 간격이 매우 좁다. 대낮에도 마음만 먹으면 앞집 거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무슨 방송을 보는지 조차 알 지경이다. 밤에는 더 훤히 들여다보이니 커튼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빨리 걸으면 15분쯤 걸리지만 나는 교문을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뒷자리에 앉는 순간, ‘아 설마!’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아 오늘이 그날인가?’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동 입구를 향해 냅다 뛰었다.
경비실 창문으로 나와 눈이 마주친 아저씨는 어서 올라가 보라며 두 손을 휘휘 저었다.
삑. 삑. 삑. 삑. 현관문을 열자마자 <내게 강~같은 평화 내게 강~같은 평화 넘치네. 할렐루야>
엉덩이가 다 늘어난 살구색 팬티와 연갈색 브레이지어를 쌍둥이처럼 맞춰 입은 두 여자가 핸드폰이 목 놓아 부르는 찬송가에 맞추어 온몸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한 명은 소파를 밟고 올라가 낑낑대며 거실 창을 닦고, 다른 한 명은 목을 뒤로 꺾은채 걸레가 달린 긴 밀대로 천장을 연신 쑤셔대는 중이다.
“하아……. 진짜 이 아줌마들! 내가 미쳐! 강 같은 평화 좋아하시네! 밖은 지금 전쟁이 났는데! 엄마! 이모!”
그렇다. 이 둘은 나의 엄마와 이모다.
나에게는 이모가 둘인데 이 세 자매에게는 소름 끼치게 닮은 점이 있다. 바로 결벽증이 있다는 거.
일본에 사는 정자이모는 한국에 올 때마다 자기가 먹을 모든 먹거리를 직접 싸 온다.
스스로 고르지 않은 것들은 다 못 믿는지 마실 물조차 싸 오는 모습이 어린 내 눈에도 신기했다. 그나마 코로나 이후에는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아서 그 유난스러운 모습을 못 본 지 오래다.
우리 엄마 이광자 씨는 하루 종일 무언가를 닦아댄다. 내가 어릴 때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모두들 혹시 어제 이사 왔냐고 물었다. 우리 집의 모습은 마치 가구 전시장 같다. 티비장이며 소파 위 주방 선반에 단 하나의 장식품이나 물건이 올라온 게 없었다. 작은 물건에 먼지가 쌓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 엄마만의 방법이다. 게다가 엄마의 요리 속 재료들은 대부분 흐물거린다. 멸치는 대여섯 번은 목욕을 하고 후들대는 상태로 프라이팬에 올라가기 때문에 우리 집 멸치볶음은 늘 젖은 상태로 반 토막 나있었다.
그리고 그 둘을 뛰어넘는 청자이모는 우리 집안 결벽증에 끝판 왕이다. 이모 집에 놀러 가면 현관 입구부터 욕실까지 복도에 수건을 쭉 깔아준다. 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현관에서 겉옷과 양말을 벗어야 한다. 이모는 그 옷들을 받아 창밖으로 먼지를 탈탈 털고 끝 방 옷걸이에 걸었다. 헐벗긴 사람들은 욕실까지 깔린 수건 길을 총총 밟고 손과 발을 닦은 후 이모가 주는 실내복을 입어야 집에서 먹고 놀 수 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래왔으니 지금도 바뀔 리가 만무하다.
이런 습성을 가진 이 자매는 나의 아주. 지극히. 평범한. 신혼집을 틈틈이 노리고 있었다. 통화할 때마다 우리가 가서 청소해 줄게 비밀번호 알려줘라고 사정을 했었다. 며칠 전 반찬을 두고 간다던 엄마에게 집 비밀번호를 아무 생각 없이 보냈었는데 그 일이 이렇게 커져버렸다. 잽싸게 거실 구석으로 몸을 날려 커튼을 확 치고 핸드폰 찬송가를 툭 꺼버렸다. 그제야 두 여자가 허우적대던 몸짓을 멈췄다.
“아니, 왜 빨개를 벗고 그래? 지금 경찰에 신고한다잖아 앞 동에서.”
“계집애! 지 옷 꺼내 입으면 또 입었다고 뭐라 할 거면서, 이렇게 대청소가 될지 몰랐지! 걸레 빨다 비눗물 튈까 봐 벗고 일한거지! 집안 꼴이 이게 뭐니.”
“야야, 당장 신고하라고 그래. 경찰이 와서 이 드러운 꼴을 보면 널 잡아가겠다.”
“욕조에 때가 덕지덕지, 변기도 락스로 박박 닦아야지! 언니, 쟤는 누구 닮았나 몰라.”
“그러게 말이야. 너 왔다 갔다 먼지 날리지 말고, 딱 한 군데 앉아있어. 우리 금방 끝나.”
금방 끝나지 않았다. 나의 존재는 신경 쓰지도 않고 두 여자는 성에 찰 때까지 계속해서 청소를 했다. 여의도순복음 교회 권사님인 이모는 마지막까지 더러움의 씨앗아 물러갈 지어다 아멘! 을 외치며 우리 집 현관을 나섰다. 나는 엄마와 이모를 데리고 근처 중국집으로 갔다. 짜장면과 탕수육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서 내가 절대 원하지 않던 일이었지만 이내 미안한 마음이 스멀거렸다.
“도대체 둘 다 왜 이렇게 쓸고 닦아대? 그거 병이야 병! 이름도 있잖아. 결벽증!”
“야,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여섯 명이서 단칸방에 살았는데, 치우고라도 살았어야지. 그래서 그런다. 왜!”
“맞아 언니, 그래도 엄마가 우리에게 물려준 건 하나 있었네. 깔끔한 거.”
“아 몰라, 나한테 내일 아프다고 연락들 하지 마셔! 갈 때 파스 사 줄 테니 오늘 붙이고 자!
하얀 수의를 입고 깨끗한 얼굴로 우리 곁을 떠난 외할머니. 정신을 놓은 순간에도 기저귀를 갈아 달래던 할머니의 슬픈 눈과 할머니가 끔찍하게도 아끼던 두 딸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모는 짜장면을 입에 한가득 넣으려다 눈물이 덩그러니 맺힌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얘는 또 밥상머리에서 왜 울고 지랄이여, 넌 복 나가는 짓만 골라하냐? 집도 깨끗하게 좀 하고 살아. 복 들어오게.”
“치! 교회 다니는 사람이 미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