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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오 Jul 03. 2024

다시 만나고 싶은 검은 전갈


별처럼 빛나는 큐빅이 가득 수놓아진 니트로 눈앞이 황홀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니 딱붙는 블랙 슬랙스 뒤로 엉덩이가 허리 위까지 붙어있는 늘씬한 몸매가 보였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반가워요. 그리고 너무 환영해요.


그녀의 두 팔에 안기며 환한 미소를 받고야 두근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강렬했고 이후 이어지는 가족 간 상견례에서 집에 돌아온 우리 엄마는 

이 중요한 날에 예비사돈 궁둥이만 쳐다봤다고 아빠에게 씩씩대며 욕을 했었다.     

우리 시어머니의 직업은 요가 강사였다. 

가뜩이나 데면데면한 사이인데 요가 선생님이라니. 신혼 시작부터 어머니가 너무 어려웠다.

 나는 운동을 즐기지 않았을 뿐더러 어머니와 나의 여러 가지 취향은 우리 둘의 엉덩이의 높이만큼이나 

 차이 났었다.     


결혼 후 첫 명절, 시댁에서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을 가다가 

거실에 있는 커다란 전갈 한 마리를 보고 소스라쳤지만 비명을 참았다. 

새벽마다 수련하시던 어머니였다.     


결혼 1년 후 아이를 낳고, 사립학교에 근무하던 나는 빠른 복직을 해야 했다. 

어머니는 58세로 아직도 요가 현직에 있으면서도 손주를 돌봐주신다며 새벽수업을 마치고 한 시간 거리를 와주셨다. 신생아 육아를 위해 아침에는 우리 엄마가 저녁에는 시어머니가, 세 여자는 정말 스펙터클한 나날을 보냈었다. 어머니와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그리고 함께 아이를 키우며 많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 자식은 절대 남과 비교하면 안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잘하는 게 한 가지는 있어. 혹시 아이를 키우다 비교의 마음이 일렁이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아이를 처음 만난 기쁨을 생각하렴.


시어머니는 평범한 아들을 학군지에서 키우면서 남들처럼 때리며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에게 자식을 보내지도 못하고, 나도 모르게 비교하고 괴로워하는 자신을 수양하느라 요가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정신 수양과 취미로 시작한 요가가 평생 회사만 다니던 남편이 시작한 사업이 기울며 생계가 되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마흔 초반의 나이에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중풍이 시작된 시아버지를 15년 모시며 어머니의 자신의 시간은 멈췄다.


- 때마침 내가 요가를 좋아했고, 잘하기도 해서 얼마나 다행이야. 위기가 기회였고 슬픈 일은 다 긍정으로 이겨냈어.


어머니와 가까워진 후 시댁에서 명절마다 보던 화려한 요가 복들이 내 눈에는 빨래 건조대 위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만날 때마다 가르치는 일은 온 몸의 기가 다 빠진다며 마음을 공감해 주시며 토닥이셨다. 

어머니의 수업은 몸과 입을 모두 사용하여 더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항상 남에게 친절하고 타인의 입장을 공감해주던 훌륭한 성품 덕에 우리 남편도 바르고 훌륭하게 잘 자란 것 같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며 걸음이 늦었을 때도, 기저귀를 늦게 가릴 때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한글을 줄줄 읽지 못해서 그림책을 오래 보았더니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힘이 좋아짐을 느꼈다.  

사춘기 소년이 된 지금도 아이의 모든 순간을 즐기며 기다리니 자주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좋은 가르침을 주신 우리 어머니는 지금은 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계신다. 

하지만어머니의 긍정적인 삶들이 용기가 되어, 다시 건강하게 돌아오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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